[에세이] 이제는 내란의 우두머리를 포박할 시간
밤은 단순히 빛이 사라진 시간이 아니다. 그것은 권력이 그늘 속에서 숨을 고르고, 그림자가 자신의 길이를 자랑하며 거짓된 안식을 퍼뜨리는 시간이다. 비상계엄! 이 선포는 법의 언어로 포장된 억압의 칼날이었다.
윤석열은 칼날을 휘둘렀고, 민주주의의 숨을 잠시나마 멈추게 했다. 그러나 어둠 속에서도 빛은 절대로 죽지 않는다. 법이란 빛의 실체이며, 정의는 빛을 밝히는 손길이다.
비상계엄은 국가의 주권을 잠식하는 강제적 선언이었다. 그것은 국민의 이름을 빌려 국민을 억압했고, 질서라는 명분 아래 혼란을 유발했다. 법은 그 순간 껍데기만 남았고, 권력은 그 껍데기를 자신만의 방패로 삼았다.
“누구를 위한 계엄인가?”라는 질문은, 이제 하나의 수사학적 표현이 아니라 시대를 가르는 검증의 기준이 되었다. 법과 권력, 정의와 억압의 경계에서 우리는 그 답을 찾아야 한다.
윤석열의 선택은 단순한 정책적 판단이 아니었다. 그것은 국가의 바탕을 흔드는 도박이었고, 법 위에 자신을 올려놓으려는 권력의 맹목이었다. 그는 헌법을 그의 도구로 사용했지만, 역설적으로 그 헌법에 따라 심판받아야 할 운명에 처했다.
법이 누구의 것인가에 대한 물음은, 이제 윤석열의 신병 확보라는 행동으로 응답해야 한다. 정의는 법의 체계 안에서 실현될 때 가장 강력하며, 그 체계가 흔들린다면 법치주의는 더 이상 존재할 수 없다.
국가수사본부가 윤석열의 신병을 확보해야 하는 이유는 단순한 법적 절차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복원하고, 역사를 바로 세우며, 법의 권위를 회복하기 위한 필수적인 과정이다.
증거는 그 자체로 말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지켜내고 밝혀내야 할 대상이다. 윤석열의 발자국은 이미 수많은 의혹의 흔적을 남겼고, 어둠 속으로 완전히 사라지기 전에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그의 계엄령은 공포와 억압의 다른 이름이었다. 그 속에서 자유는 족쇄를 찼고, 목소리는 침묵을 강요받았다. 우리는 이 침묵의 대가가 무엇이었는지를 묻고, 그 대가를 되돌려야 한다.
민주주의는 단순한 구호가 아니라 매일 쌓아 올려야 하는 누적된 신뢰이며, 그것을 배반한 자는 법의 엄중함을 마주해야 한다.
도주의 가능성은 단순히 육체적 탈주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진실을 피하려는 시도, 법의 판단을 피해 권력의 잔재 속으로 숨어들려는 행위다.
우리는 그가 더 이상 진실의 영역 밖에 서지 못하도록, 그를 법 앞에 단호히 세워야 한다. 이는 단순히 윤석열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앞으로 어떤 국가를 만들 것인가에 대한 선언이다.
시간은 진실을 무디게, 또는 역사를 흐릿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러나 모든 기억 속에서 법의 본질은 변하지 않는다. 법은 단순히 규칙이 아니라, 인간의 존엄과 사회적 신뢰를 보호하기 위한 약속이다.
이 약속이 계엄령이라는 이름으로 짓밟혔을 때, 우리는 약속의 의미를 다시 세워야 한다.
윤석열의 계엄령은 이제 어둠 속에서 평가받지 않는다. 그것은 빛 앞에서, 법 앞에서, 그리고 국민 앞에서 다시 한번 드러나야 한다. 국가수사본부의 역할은 그 빛을 더욱 강렬하게 밝히는 것이다. 그 빛은 정의를 넘어 민주주의의 신뢰를 회복시키는 불꽃이어야 한다.
이제 우리는 선택의 갈림길에 서 있다. 법이 권력의 도구로 전락할 것인가, 아니면 권력을 굴복시키는 최후의 수단으로 남을 것인가?
윤석열의 신병 확보는 이 질문에 대한 응답이며, 대한민국 법치주의가 여전히 살아 있음을 증명하는 선언이다.
정의는 머뭇거림 속에서 죽고, 행동 속에서 빛난다. 우리는 그 빛의 시작점에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