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세이] 그러나, 탄핵과 해산의 도도할 길
탄핵 표결에는
12월 7일, 탄핵 표결 무산은 역사의 거친 바람 속에 떠도는 깃털 한 조각이었다. 흩날리는 깃털은 허탈한 듯 보였으나, 그것이 품은 무게는 절대 가볍지 않았다.
광장의 바닥과 화면 속에 모인 수십만의 숨결, 정의를 염원하던 국민의 눈빛이 그 깃털 끝에 매달려 있었다. 바람이 잦아든 순간, 깃털은 땅으로 내려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엔 깊은 실망과 분노와 또 다른 약속이 치밀하게 새겨졌다.
이제 깃털은 한 시대의 상징이 되었다. 그것은 기다림이었다. 불의의 힘을 떨쳐내고, 새로운 정의를 세우려는 약속이었다. 하지만 국민의힘은 깃털을 받아들일 용기를 거부했다.
표결을 통해 책임을 마주하는 대신, 그들은 자리를 비웠다. 빈자리는 선택이 없지만, 비겁함으로 메아리쳤다. 그것은 도주였다. 한 시대가 묻는, 질문에서 비겁한 회피이자 자기 망상이었다.
표결은 숫자의 문제가 아니었다. 그것은 의회의 의무요, 국민이 던진 명령이었다. 탄핵에 반대한다는 당론을 내세웠던 그들이 정작 표결의 자리를 떠난 것은, 무거운 짐을 내려놓으려다 자가 고유의 짐마저 외면하는 모순이었다.
그들은 헌법의 책무를 기둥 삼아야 할 자리에, 불의한 권력의 기둥에 기대었다. 그러나 기둥은 시대의 요구를 지탱할 수 없고, 오히려 더 깊은 균열을 만들게 될 것이다.
그들의 불참은 부재가 아니었다. 그것은 배반이었다. 책임을 회피하며 의무를 저버린 그 자리는 흙먼지처럼 사라질 것 같지만, 절대 가볍지 않은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무너진 정의의 탑 아래, 그들이 비운 자리는 이제 묵직한 물음으로 채워져 있다. 그들은 무엇을 지키려 했는가? 자신만을 위한 방패였는가, 아니면 무너진 탑의 잔해였는가?
모든 것이 명증해진 지금,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부서진 기둥을 몰아내고 무엇을 새로 세울 것인가? 그 답을 찾는 일은 오늘의 실패가 몫을 제기하며, 내일의 희망을 쌓아가는 우리의 손끝에서 시작된다.
바람은 멈추지 않는다. 깃털은 비록 한 번은 떨어졌지만, 바람은 그 깃털을 감싸안으며 새로운 길을 찾는다. 광장에 모였던 사람들의 목소리와 화면 속에서 응시하던 국민의 외침은 하나의 강물이 되어 흐르기 시작했다.
국민의힘이 세운 제방은 이 강물을 막을 수 없다. 그들의 선택은 단지 탑을 지탱하려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약점을 더 분명히 드러냈을 뿐이다.
깃털은 가벼워 보이지만, 그것이 품은 희망의 무게는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 한 시대의 바람은 깃털을 들어 올리며 묻는다. "책임이란 무엇인가? 정의는 어디에 있는가?" 이 물음은 단지 그날 자리를 비운 이들에게만 던져진 것이 아니다. 그것은 광장의 모든 이들에게, 그리고 지금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남겨진 숙제다.
깃털이 내란 부역자 정당을
깃털은 떨어질지언정 끝없이 흩날린다. 바람이 이를 멈추지 못하듯, 시민의 열망도 멈추지 않는다. 국민의힘이 비운 자리는 더 큰 분노와 더 깊은 염원으로 채워질 것이다. 그날의 실망은 단지 좌절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다시금 깃발을 들어 올리는 힘이 될 것이다.
우리는 묻는다. 그날 무산된 표결이 남긴 빈자리에서, 무엇을 다시 세울 것인가? 깃털은 가벼웠지만, 그 속에는 시대가 품은 진실과 미래가 감춰져 있었다. 이제, 그 깃털이 흩날린 자리에서 정의의 깃발을 높이 올릴 차례다. 우리의 손끝에서 바람은 다시 불 것이고, 그 바람은 언젠가 이 땅에 새로운 약속을 세울 것이다.
그들의 불참은 단지 부재로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더 큰 소음으로 남아, 마치 연주가 멈춘 오케스트라의 어긋난 공백처럼 시민들에게 비정상적인 부조화를 선사했다.
책임의 자리에서 물러선 그들의 회피는, 권력의 심각한 오판과 무책임을 더욱 도드라지게 했다. 탄핵 표결은 헌법적 책무였고, 시대가 요구한 정의의 울림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이 울림을 두려워했다.
그 두려움은 2017년, 정당했던 탄핵이 만들어낸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잊지 못한 흔적이다. 그들은 당시의 기억 속에서, 정의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파장을 상상하며 한발 물러섰다. 국민은 이런 그들을 끝끝내 용서하지 않았다.
이런 기억이 지금 그들에게 표결을 거부하고 자리를 비움으로써, 그들만의 시간과 운신의 폭을 벌고자 만들었다. 그러나 그들의 얄팍한 계산은 오히려 더 큰 심판을 예고할 뿐이다. 직무를 방기하고, 헌법적 책무를 외면하며 권력을 유지하려는 그들의 수는, 스스로 더 깊은 패착으로 몰아가고 있다.
국민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한 가지를 분명히 목격했다. 그들은 국민의 목소리를 두려워했고, 정의 앞에 고개를 들지 못했다. 하지만 그 회피는 그들만의 평온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침묵은 진실의 그림자를 더 길게 드리우고, 언젠가 날카로운 심판의 빛 속에서 사라질 운명을 맞이할 것이다.
그들의 회피와 방관은 결코 무해 하게 결말짓지 않는다. 그것은 국민의 준엄한 명령을 무시하고 시대의 요청을 거부한 행위의 결단은 역으로 핍박받게 될 것이다. 시간은 그들의 편이 아니다. 생명을 연장하려는 그들의 얕은 술수는, 결국 더 깊은 구렁으로 몰아넣는다.
탄핵 표결을 무산시킨 자들은 이제 권력을 연명하기 위해 헌법의 원칙을 비껴가는 2선 방안이나 변칙적 대책을 꾀하고 있다. 이는 법의 엄연한 질서를 무시하고, 국민이 내린 준엄한 명령을 외면한 기만적 행위다.
저항은 시작이며, 도도하게
헌법은 시대의 약속이며, 이를 어기는 시도는 자신들의 모순과 불의를 더욱 드러낼 뿐이다. 그들의 행보는 허물어지는 탑 아래에서 내미는, 허약하되 가증스러운 블라인드이다. 법은 그들의 변칙을 용납하지 않을 것이며, 시민의 명령 또한 그러하다.
그들이 외면하고 떠난 책임의 자리는 공허로 남지 않을 것이다. 시민의 분노는 강물처럼 흘러 그 공허를 정의와 진실로 채워갈 것이다. 그 자리에서 시대의 새로운 서사가 시작되고 그들의 얄팍한 계산은 결국 거대한 변화를 막지 못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
그들의 침묵과 회피 앞에는, 깨어난 시민들의 강렬한 물음이 따라붙는다. 무엇을 두려워했는가? 무엇을 외면했는가? 그 물음은 단지 권력의 의도를 묻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시민 스스로에게도 묻고 있다. 우리는 이 부조화 속에서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새로운 시민 운동은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이 되어야 한다. 예술은 연대와 협력을 기반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다시 설계하는 것이다. 교육 현장에서, 지역사회의 골목에서, 노동자의 손길에서, 그리고 환경을 지키는 숲의 울음에서 시작된다.
썩은 권좌를 붙안고 어떤 과잉의 폭압을 돌발할지 알 수 없거니와, 그럼에도 자신들만 공조하겠다는 허튼 의지를 뭉개야만 한다. 우리의 저항은 더 이상 거리의 목소리로만 남아 있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정책으로 구체화하고 사회적 담론으로 자리 잡으며, 구조적 변화를 만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