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장] 노동자·시민의 자치회, 새로운 민주주의를 위하여
민주주의는 우리 손끝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이는 단순히 권력의 중심을 옮기는 일이 아니라, 국민이 권력을 어떻게 통제하고 활용할 것인지에 대한 끊임없는 고민에서 시작된다.
최근의 정치적 격변은 우리가 이 질문을 다시 던질 계기를 마련했다. 국민의 목소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이 목소리가 정책과 제도로 구현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가?
현재 우리의 정치 현실은 국민 참여의 한계를 분명히 보여준다. 선거는 국민 참여의 출발점에 서있지만, 우리의 현실에서는 선거만으로 모든 것이 끝난다. 선거 이후 국민의 의사는 간헐적인 청원이나 집회로 제한된다.
이 구조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의 참여를 정치의 모든 과정에 스며들게 할 새로운 시스템이 필요하다. 참여를 확장하고 실질적인 권한으로 연결하는 제도적 개혁은 성숙한 민주주의로 가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다.
국민투표: 직접 민주주의로의 확장
국민투표는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보완할 강력한 도구다. 그러나 현재의 국민투표 제도는 대통령 발의 없이는 불가능한, 중대한 제약에 갇혀 있다. 국민투표는 특정 권력자의 의지에 좌우되는 도구에서 벗어나야 한다.
일정 수 이상의 서명을 통해 국민이 직접 발의할 수 있는 제도로 개편되어야 한다. 이는 국민이 단순히 선거를 통해 권력을 위임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중요한 국가적 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더 나아가, 국민투표는 헌법 개정과 같은 대규모 사안에만 국한되지 않아야 한다. 예산 배분, 지역 개발 계획, 환경 정책 등 국민의 일상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다양한 사안에도 국민투표를 도입해야 한다. 이를 통해 주요 결정이 밀실에서 이루어지는 관행을 단절하고, 국민의 목소리를 정책 결정 과정의 중심에 둘 수 있다.
공론화 위원회: 합의를 이루는 민주적 예술
공론화는 다양한 의견을 모으고 조율하며, 국민이 정치적 책임을 체감하게 하는 과정이다. 그러나 현재 공론화 위원회(숙의 민주주의)는 특정 이슈에 한정되어 운영되고 있다. 이를 국가적 사안뿐만 아니라 지역적 사안을 포괄적으로 다룰 수 있는 상설 공론화 위원회로 발전시켜야 한다.
첨단 기술은 공론화 과정을 더욱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다. AI 기반 공론화 플랫폼은 국민의 의견을 수집하고 분석하며, 논의를 투명하게 공개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얻을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이 도구로만 작동하지 않도록, 국민이 과정의 주체로 참여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해야 한다.
지역 단위 시민 의회: 민주주의 뿌리 내리기
민주주의는 중앙에서만 작동하지 않는다. 그것은 지역, 공동체, 그리고 일상에서 살아 숨 쉬어야 한다. 이를 위해 지역 단위 시민 의회를 도입할 필요가 있다. 추첨 된 시민들이 지역 의회와 협력하여 정책을 논의하고 결정하는 구조는 주민의 의견을 가장 직접적으로 반영할 수 있다.
특히 시민·노동자 자치회는 지역 예산의 일부를 배정받아, 주민 스스로 예산의 방향성을 결정할 권한을 가져야 한다. 이는 지역 주민들이 정치적 과정을 더 깊이 이해하고, 자기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결정에 실질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돕는 데 복무할 것이다.
디지털 민주주의: 기술이 열어주는 참여의 새로운 장
디지털 기술은 국민 참여의 물리적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디지털 민주주의 플랫폼은 전국의 시민들이 실시간으로 정책 제안에 참여하고, 투표하며, 논의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준다. 이는 청와대 국민 청원과 같은 단발적 제도를 넘어, 실질적인 정책 결정 과정으로 연결되는 구조로 발전해야 한다.
AI 기반 시스템은 국민의 의견을 분석해 정책 결정자들에게 데이터로 제공하며, 국민의 목소리가 실제 정책으로 반영될 가능성을 높인다. 디지털 기술이 국민과 정치의 거리를 좁히는 데 이바지할 수 있다면, 우리는 이 기술을 민주주의 강화의 도구로 활용해야 한다.
청년과 소외 계층의 목소리를 담아야
정치 참여는 모든 세대와 계층에게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청년, 여성, 장애인, 노인 등 소외 계층의 목소리가 배제되는 구조적 문제를 안고 있다. 청년 의회를 통해 젊은 세대가 미래 정책 설계에 참여하도록 하고, 다양한 계층이 정책 자문 과정에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이는 정책 결정의 공정성과 다양성을 보장하는 데 필수적이다.
노동자·시민이 정치화
이 모든 제안은 단순히 이상론이 아니다. 이는 국민주권 원칙을 현실에서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들이다. 민주주의는 법률이나 제도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의 의지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달려 있다. 이제 정치가 국민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니라, 국민이 정치의 중심에 서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국민의 참여는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뿌리다. 그 뿌리가 깊게 뻗어나갈 때, 우리는 더 강하고 공정한 민주주의를 이룩할 수 있을 것이다.
질문은 단순하다. 우리의 정치에 국민의 목소리는 얼마나 담겨 있는가?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답은 분명하다. 더 많은 참여, 더 깊은 책임, 그리고 더 강한 민주주의. 그것이 대한민국 정치가 나아가야 할 새로운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