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안녕
여유로운 하루이다. 오늘 마지막을 부지런하게 본섬에서 마무리할지, 메스트레 섬에서 여유롭게 마무리할지 고민하다 어제 본섬을 실컷 본 것 같아서 여유를 택했다. 어제 2시에 잠들었는데 이상하게 눈이 8시 좀 넘어서 떠졌다. 잠깐 뒹굴거리다가 오랜만에 친한 친구랑 영상통화를 했다. 거의 한 시간 동안 근황토크도 하고, 이런저런 얘기도 했다. 친구가 최근에 바빴어서 전화를 오래 못했는데, 반갑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할머니랑도 전화를 하고, 준비도 하고 짐을 챙겨 체크아웃하러 갔다.
체크아웃을 하고 찾아놓은 카페로 향했다. 동네카페처럼 보이는 카페였는데, 리뷰가 좋아서 기대를 가지고 갔다. 갔는데 딱 사람이 많아서 괜히 잘 고른 것 같아 뿌듯했다. 피스타치오 크로와상 하나와 카푸치노 한 잔을 주문했다. 크로와상부터 한 입 먹어봤는데, 적당히 파삭하고 부드럽고 피스타치오 스프레드도 느끼하지 않고 적당히 달달해서 정말 맛있었다. 카푸치노는 적당한 맛이었지만, 크로와상이 너무 맛있어서 행복했다. 그러고 잠깐 쉬다가 다음 코스인 식당으로 향했다.
식당은 어제 가장 열심히 고른 코스이다. 당분간 이탈리아에 올 일이 없으니까 최후의 한 끼를 아주 야무지게 먹고 싶었다. 식당 3개 정도를 놓고 고민하다가 베네치안 식당이 후기도 좋길래 골라봤다. 이탈리안은 많이 봤는데 베네치안이라니 신기했다. 어제 메뉴도 미리 골라놔서 들어가자마자 주문을 했다. 비골리 해물 파스타이다. 비골리는 살짝 두꺼운 면이었는데, 이 면의 베네치아식 명칭이 비골리라고 해서 더 기대가 되었다. 음식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는데, 기다리는 동안 굉장히 설렜다. 앞에서 치게티와 간단하게 한 잔 하시는 동네 주민 분들도 많고, 전시되어 있는 해산물도 싱싱해 보여서 맛집을 찾은 것 같았다.
그러고 드디어 메뉴가 나왔다. 비주얼만 봐도 훌륭했다. 두꺼운 면에 적당한 토마토+오일 소스, 새우, 홍합 그리고 게살까지 푸짐한 파스타가 나왔다. 면부터 한 입 먹어보니 소스의 감칠맛과 두꺼운 면의 고소함이 어우러져 환상의 맛이었다. 사실 나는 강경 얇은 면파라서 90%의 확률로 스파게티니나 카펠리니(냉파스타) 면을 주문하는데, 두꺼운 면인데도 너무 맛있었다. 밀가루 맛이나 심심한 맛 하나 없이 면만 먹어도 다채로운 맛이 나서 맛있었다. 새우도 정말 진한 제대로 된 새우였다. 칵테일 새우 냉동 새우 이런 게 아니라 정말 대하처럼 찐 새우의 맛이 나서 맛있었다. 대망의 홍합! 어제 먹은 파스타는 면에서도 모래가 씹힐 정도였는데, 여기는 해감이 완벽하게 되었는지 뭐를 먹어도 모래 하나 없이 맛있었다. 중간중간 게살도 있었는데 크래미가 아닌 진짜 게살의 식감이라 감동적이었다.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으면서도 너무 맛있으니 음미하며 먹고 싶어지는 그런 소중한 맛이었다.
그렇게 만족스럽게 먹고 또 먹으러 갔다. 찐 최종 코스는 젤라또이기 때문이다. 계속 느끼한 음식을 먹고 싶어서 시원하고 상큼한 음식으로 중화를 시키고 싶어서 갔다. 피스타치오 하나에 과일 하나를 먹어야겠다 싶은 생각으로 갔는데, ㅍ겨울이라 그런지 피스타치오 맛도 과일 맛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마스카포네+무화과 맛이랑 초코맛을 주문했다. 일단 양을 많이 주셔서 인심에 한 번 감동하고 딱 봐도 꾸덕해 보이는 비주얼에 또 한 번 놀랐다. 마스카포네 무화과 맛부터 먹어봤는데 치즈의 묵직한 맛과 무화과의 부드러운 달콤함이 어우러져 맛있었다. 초코도 꾸덕하고 많이 달지 않아서 맛있게 먹었다.
이렇게 오늘 2시간 만에 3번을 먹는 엄청난 푸파를 찍고 배가 너무 부르기도 하고, 오늘치 먹을 거를 다 먹은 것 같아 저녁은 굶기로 했다. 원래는 기깔난 샌드위치를 포장해 기차에 타려고 했지만 그러다가는 집에 굴러갈 것 같아서 그냥 기차에 탔다. 지금은 기차에서 글을 쓰고 있는데 3시간 정도가 남았다. 이제 다음 여행 계획도마저 세우며 집에 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