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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미황 Oct 13. 2024

나는 70대, 그건 또,왜 물어 보시는 건가요?

마음도 가꿔야 하는 거야, 얼굴을 가꾸듯이


아침부터 비가 쏟아진다. 우리 부부는 나란히 외출 준비를 한다. 대부분 우리의 외출은 '나란히 나란히'다. 우산을 찾아 쓰고 마당 앞 주차장으로 향한다.

토요일 10시, <찾아가는 음악회>가 있는

날이다. 일정이 같은 시간대에 묶여 난감하게

되었다. <아름다운 정원 디자이너> 수업과

<찾아가는 음악회>가 오전 시간에 맞물렸다.

음악회 담당자는 리허설을 위해 9시까지 도착하라고 한다. '정원 디자이너' 수업도 9시 시작이다.


우리 부부는 서로에게 물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음악협회 담당자에게 리허설 시간 양해를 구했다. 그리고 정원 디자이너 수업 시간에 출석해 강의를 듣다가 퇴장하기로 했다. 강의하는 교수님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젊고 애리애리한 교수님은 언제나 열강이시다.

강의실을 조용히 빠져나와 음악회가 열리는  

중산 마을로 향한다. 처음 가는 길이라 네비에 의지해 낯선 길을 찾아 나섰다. 다행히 리허설 마치기 10분 전에 도착했다.


중산 마을 앞마당에서 연주자들이 리허설 음향 테스트를 하고 있다. 내 연주는 두 번째이고 내 옆지기 순서는 마지막이다. 우리는 플루트와 색소폰을 연주한다.


하늘이 잿빛으로 가득하더니 아이코머니, 곧 물폭탄이 쏟아지기 시작한다.

어제도 비가 내렸다. 비는 더욱 세차게 쏟아진다. 잠시 소강상태를 보이는가 했더니 다시 걷잡을 수 없이 쏟아졌다.

"아니, 뭔 비가 이렇코럼  쏟아진다요!"

동리 이장님이 말씀하신다. 걱정스럽고 난처한 표정이다. 날씨야 이장님 탓이 아닐 텐데도 그는 어쩔 줄 몰라한다. 객석에 쳐놓은 텐트 위로 물이 들이쳐 도저히 앉아 있을 수 없다.


가을 벼 수확철이 오기 전,  중산 마을 주민들을 위해 준비한 음악회다. 맑고 푸른 하늘, 좋은 날이 되길 원했지만 폭우가 쏟아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이 가장 좋은 날이 되어야만 한다.


'찾아가는 음악회' 회원들은 마을 회관 마당에

서 연주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마을 이장님과 협회 회원들과 머리를 맞댔다. 결국 마을회관 실내로 무대를 옮기기로 했다.

실내 칸막이 문을 활짝 열고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플래카드도 붙이고 분주히 움직이며 아쉽지만 만족하는 마음으로 진행하기로 했다.


음향시설도 회관 실내로 옮겨졌다. 비가 쏟아지는 불편한 상황이었지만 모두가 애쓰고 힘쓰며 합력하는 모습에 곧 우리 마음은 조금씩 따뜻해졌다.


비 맞은 음향기기를 수건으로 번개같이 닦아내시는 색소폰 팀장님, 빠른 행동으로 수고를 아끼지 않는 회원들과 마을 주민들 덕분에 우리는 11시가 되어서야 연주회를 시작할 수 있었다.


억수로 쏟아진 비 때문에 공연 장소도 옮겼지만 결국 '억수로 쏟아진 비' 덕분에 더욱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연출되었다. 정말이지 세상에는 버릴 게 없나 보다.


7학년 3 반인(73세) 남녀 두 분이 하모니카를 연주했다. 가냘픈 하모니카는 음색 또한 가냘프다.

40대 후반의 가수 한 분이 구성지게 노래를

불렀다. 마을 어른들이 다들 어깨를 들썩이며 따라 불렀다.


60대 후반과 70대 초반인 남성 색소폰

<라성색동회> 회원들의 연주에 바리톤이 웅장하고 묵직하고 믿음직스럽게 멜로디를 뿜어냈다.

"완전 환상적이야."

"아직은 시퍼렇구먼~"

"좋아 좋아~."

마음들이, 하나같이 젊고 푸르다.


가락에 맞춰 덩실거리며 마을 어르신들은 참말로 귀엽게 춤을 추셨다. 옛날 도리깨 춤이 아니다. 아이돌처럼 춤새가 세련됐다.

노인들로 가득해, 시들어가는 듯보였던 마을

이 어느새 활기로 들썩였다.


노래에 노래가 이어진다. 어깨춤을 추면서 어린 학생들처럼 어쩜 그렇게도 잘 따라 부르시는지. 나는 아직도 노랫말을 잘 따라 하지 못한다. 악기로 노래하니 음표만 읽어서 그런 것 같다.


그런데 동리 어르신들은 놀랍게도 플루트 음률에 노래 가사를 붙여 잘도 부르신다. 청춘이다. 모두가 청춘이고 꽃 한 송이들이다.

박꽃처럼 순수하고 아름답다.


그분들의 마음은 태양볕을 받고 자라 튼튼하게 피어난 야생화다.

음악회를 마치고 마을에서 오찬을 준비해 주셨다. 수육과 생김치와  묵은 김치가 워찌 그리도 맛깔스러운지 지금도 입안에 군침이 고인다.


문득 하늘나라에 계신 울 엄마가 생각났다. 묵은지를 보니 그렇고 어르신들의 춤추는 모습을 보니 엄마의 덩실거리던 모습이 뇌리에 선선하게 떠올랐다.

울 엄마 칠순에 춤추던 모습, '동당동당~',

'덩실덩실~', 내가 딱 울 엄마 그때 그 나이가 되었다. 그때 엄마는 할머니였고, 오늘 나는 청장년이다.


공연 후 옆자리에서 함께 식사하던 복희님이 나에게 귓속말을 했다.

"쌤, 천관산에 카페가 하나 있는데 그곳에서 플루트 연주를 해 줄 수 있을까요?"

"왜요?"

"쌤이 플루트로 '아름다운 나라'를 국악 장단에 맞춰 연주하고 내가 예쁜 드레스 입고 춤추면 참 어울리는 무대가 될 것 같아서요."


7학년 3 반인 그녀가 춤을 추고, 7학년 1 반인 내가 플루트로 연주하면 어떤 그림이 될까?


나보다 두 살 위인 그녀는 마음속 끼가 탄산수처럼 늘 보글보글 올라오나 보다.

그녀는 끼를 주체하지 못해 발산하고 싶어 한다. 그녀는 합창단원이요, 하모니카 연주자요, 소리를 구성지게 하는 장인이며 옆사람에게 춤을 권하며 이끌고 나와 함께 춤을 추는 청춘이다. 그녀를 보며 나를 생각한다.


'그래, 마음도 가꿔야 하는 거야. 얼굴을 가꾸듯 수시로 마음을 경쾌하게 가꾸어야 해. 마음에도 때가 끼니까.'

가끔씩 나에게 나이를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다.

"그런 거 왜 물어보세요?"

내 대답도 듣지 않고 그들은 또 묻는다.

"플룻 전공하셨어요?"

나는 대답한다.

"그건 또 왜 물어보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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