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서울의 봄> : 판단을 유예한 자들의 밤 그리고 지금의 우리
어느 대학을 가면 좋을까. 서울 시내 유명 사립대학이면 좋겠지만 경상남도 출신 '상남자'였던 아버지의 위시리스트에는 육사(해사 포함)도 포함돼 있었다. 고등학생이었던 나는 그 선택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몰랐다. 그저 이 힘든 계절을 벗어나기만 한다면 무엇이든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다만, 시간이 흐른 뒤에도 하나의 의문이 계속 남아 있었다. 왜, 육사인가? 그 의문은 영화 〈서울의 봄〉을 보고 나서야 어렴풋이 해소되는 기분이 들었다.
이른바 ‘12.12 사태’는 내가 태어나기 2년 전인 1979년 12월 12일 밤 벌어졌다. 당시, 1953년 생 아버지의 나이는 스물여섯. 신군부가 권력을 찬탈하던 그 시기, 나의 아버지 세대는 사회적 감각이 가장 예민한 시절에 군홧발이 지배하는 질서를 체험했다.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나락으로 떨어질지를 매일같이 학습해야 했던 그들이었다. 정치적 정의보다 먹고사는 문제를 먼저 고민해야 했던 삶의 환경에서 전두환 체제의 정당성이나 합법성은 그들에게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그 시대, 육사는 생존의 동아줄이자 체제 내부로 들어가는 가장 확실한 경로였다. 정권의 앞잡이나 권력의 시녀가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불안정한 사회를 온몸으로 버텨내야 했던 청년들이 선택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기회. 물론 내가 서울의 모 명문 사립대학에 진학했을 때, 아버지는 만족했다. 육사가 후보로서 입에 오르내렸던 것은 결국 자식이 가진 가능성을 어떻게든 체제 안으로 밀어넣고자 했던 나름의 현실적인 부성애였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묻게 된다. 정말로 그런 길만이 성공의 방식이었는가. 정치적 올바름을 가르칠 여유는 없었더라도, 또 다른 가능성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거나 그것을 희망으로써 들려주기조차 어려웠던 건가. 이해 못하는 바는 아니다. 나는 그것이 아버지 세대가 체제의 폭력만큼이나 견뎌야 했던 시대의 공기였다고 생각한다.
전두광(황정민)을 중심으로 벌어진 12.12 군사반란의 숨겨진 9시간을 다룬 영화 〈서울의 봄〉은 2023년 11월 22일 개봉했다. 육군참모총장을 체포하려는 자들과 그것을 막으려는 자들의 대치. 영화는 보안사령관의 쿠데타를 한 치의 숨도 허락하지 않는 긴장 속에 재현한다. 관객은 140분 동안 손톱을 물어뜯고, 이 싸움의 끝을 이미 알고 있음에도 끝내 '만약'을 되뇌인다.
예상과는 달리 반란군은 자주 수세에 몰린다. 영화가 역사적 사실을 핍진하게 구성한 것이라면, 쿠데타를 진압할 수 있었던 기회는 충분히 있었던 셈이다. 전두광은 이 판을 도대체 어떻게 뒤집었을까? 영화는 그 질문에 “그날 밤, 일부 힘을 가진 군인들의 선택이 판세를 갈랐다.”고 자답한다. 이 말은, 뒤집어서 말하자면, 그중 다만 일부라도 다른 선택을 했다면 역사가 달라질 수도 있었다는 이야기다.
전두광(황정민)은 누수의 가능성을 줄이기 위해 ‘절차적 정당성’ 확보에 집중한다. 육군참모총장(이성민) 체포를 위한 대통령의 결재를 득하기 위해 청와대를 들락거리고 하나회를 포함한 군 내부의 이견을 설득과 협박으로 잠재운다. 그가 추구하는 건 총칼이 아니라 체제의 동의다. 그것이 이 영화를 슬프게 만든다. 우리가 교과서를 통해 짧게나마 배웠던 것과는 달리 그는 단지 물리적 위협으로 권력을 장악한 것이 아니었다. 영화는 그것을 '합법을 가장한 반란'으로 묘사한다. 총격전보다 결재와 통보, 절차와 문서가 더 중요한 무기처럼 작동한다. 시스템을 교묘히 활용한 쿠데타, 그것이 이 영화의 핵심이다.
‘시스템’에 대한 영화의 존중은 곳곳에서 보인다. 최한규(정동환) 대통령은 하릴없이 최종 결재를 하면서 사후 재가임을 굳이 강조했다. 무엇보다 군부 쿠데타에 사실상 홀로 맞섰던 이태신(정우성)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이태신이 어떤 ‘민주 투사’로서 이해되는 것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 이태신은 단지 대한민국 군인으로서 해야 할 바를 답답하게 이행하는 인물로서 어떤 ‘판단’이라는 것을 하지 않을 뿐이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 대해 개인적으로 판단하고 군인으로서 움직이는 것은 그 자체로 정치적인 행보가 되기 때문에. 자신의 선택에 영향을 끼치는 몇 번의 결정적 상황에서 그는 혹시 자문했을지 모른다. 그렇다면 이것은 자신이 그토록 증오하는 전두광의 그것과 무슨 차이가 있는 것일까, 하고 말이다.
그의 ‘멈춤’의 계기가 국방장관의 명령이었다는 점을 상기하자면 이태신은 전두광에게 어떤 대가를 요구하려 했다기보다는 민주주의라고 하는 ‘체계’와 ‘질서’ 자체를 수호하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묻지 않을 수 없다. 쿠데타라는 행위 자체가 태생적으로 정당성이 부재한 것이라면 이후 내려지는 명령은 복종해야 할 의무나 명분이 있는 것인가? (물론, 이 모든 것은 결과론적인 해석이다. 그러나 그의 ‘나이브’함을 두고 두고 아쉬워 할 수밖에 없는 것은 쿠데타 이후 우리가 치러야 했던 대가는 너무 가혹했기 때문이다.)
또한, 백 보를 양보해서 형식적 절차에는 아무런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그날의 사건이 역모이자 반역임을, 그건 분명 옳지 않은 일임을 모르는 자는 아무도 없다. 다만 그날의 상황을 다시 보면, 명령을 따른 군인들이 모두 악의에 찬 것도 아니었고, 저항하지 않은 이들이 모두 권력의 편에 선 것도 아니다. 어떤 이는 후과가 두려워서, 어떤 이는 떡고물이 탐나서, 또 어떤 이는 이미 판세가 기울었음을 느껴서 침묵했을 것이다. 이유는 각기 달랐지만, 결과는 하나였다. 아무도 움직이지 않았다는 것. 오직 몇 명만이, 그 밤에 질문을 던졌을 뿐이다. 결국 이 영화는 관객에게 묻는다. 만약 당신이었다면, 그날 밤 오진호(정해인)의 곁에 섰겠느냐고.
〈서울의 봄〉은 '당신은 얼마나 정의로운가'를 묻는 영화가 아니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요청조차 하지 않는다. 다만 묻는다. 당신의 신념과 충돌하는 상황이 닥쳤을 때,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선택은 정말 무해한가. 정말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았는가. 당신이 유예한 판단이, 사실은 역사의 방향을 바꾸는 한 수였던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끝내 과거가 아니라, 미래를 향한다. 노태건(박해준)을 대통령으로 만든 건 결국 우리였다는 자백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