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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발소리를 듣는다

– 가족이 두려움이 아닌 안도가 되기까지

by Minseung Kang

아버지가 퇴근할 때면 아파트 계단을 오르는 소리부터 들렸다. 구두의 앞코가 바닥을 끌며 계단을 천천히 올라올 때, 우리는 본능처럼 반응했다. 무언가를 정리하고 말없이 문 앞에 도열했다. 무엇을 정리했는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그냥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는 공무원이었고, 퇴근 시간은 일정했다. 그 정해진 시간에 맞춰 온 집안은 긴장했다. 그런 공기가, 그런 집이 우리의 일상이었다.


그는 집 안의 공기를 지배했다. 식탁의 상석처럼, 늘 자신이 우선이어야 한다는 태도. 기대가 충족되지 않으면 그는 바로 언성을 높였다. 우리는 그가 불쾌해질 수도 있는 낌새를 감지하면 말투를 낮추고, 숨소리를 죽였다. 그는 그걸 ‘권위’라 불렀고, 우리는 그걸 ‘공포’라 불렀다.


‘매를 아끼면 아이를 망친다’는 말을 그는 입에 달고 살았다. 때리는 날은 예고되지 않았고, 그래서 도구도 일정하지 않았다. 회초리나 막대기를 들던 날이 있었고, 급하면 손과 발이 먼저 날아왔다. 얼굴을 때리기도 했고, 몸통을 밀치기도 했다. 나는 그중에서도 도구로 맞는 쪽을 선호했다. 그것은 ‘차라리’ 일종의 존중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손과 발은 너무 가까웠다. 숨결과 열기, 눈빛이 동시에 덮쳐오면 고통은 살에 닿는 것을 넘어, 마음 깊은 데까지 박혔다. 어느 날은 맑은 정신으로 조용히 때렸다. 그 침착함이 나는 더 무서웠다. 그는 평소 술을 거의 마시지 않는다. 기분이 아니라 판단으로 때리는 사람이었다.


중·고등학생이 되면서 나는 이 집을 떠나는 일 외에 다른 미래는 상상하지 않았다. 이유는 단순했다. 하루라도 이곳에 더 머물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 막막한 탈출 프로젝트는 곧 ‘서울’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서울에 있는 방, 거리, 공기— 아무도 나를 모르는 낯선 곳이 나를 살게 해줄 것 같았다. 목표라기보다는 본능에 가까웠고, 선택이라기보다는 생존이었다.


그런데 내가 대학을 ‘인서울’, 그것도 당신의 모교인 모 대학 이상의 네임밸류를 가진 학교로 가는 일은 그의 꿈이기도 했다. 그것은 그동안 자신이 설사 다소 폭력적이었던들, 자식 교육 방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해주는 증명서 같은 것이었다. 나는 폭력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었고, 그는 그것을 인정받고 싶었던 것. 나의 서울행은 그와 나의 암묵적인 합의 같은 것이었다.


나는 천운으로 서울 시내 명문 사립대학에 합격했다. 도망치듯 집을 떠났고, 시간을 두고 그 사람과는 차츰 멀어졌다. 그 결정에 후회는 없다. 어떤 관계는 붙들어야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놓아야만 살아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그걸 알게 되었고, 선택했다. 그렇다고 그의 얼굴을 잊은 건 아니다. 지금도 생생하다. 말없이 다가올 때의 표정, 고함을 지르기 직전의 눈빛, 계단을 오르던 그 낮고 평평한 구두 소리. 낯선 아파트 복도에서 비슷한 소리를 들으면, 나는 지금도 잠시 멈춘다. 몸은 두려움을 기억하고, 기억은 자세를 만든다.


2025년, 지금의 나는 아버지로 살아가고 있다. 딸 둘, 열다섯과 열세 살의 그들은 한참 사춘기를 앓고 있다. 전생에, 내가 아주 못되게 굴어서 마음 아프게 한 여자가 복수를 위해 이승에서 나의 딸로 태어난 것이 아닐까 싶을 만큼 나를 매일처럼 괴롭히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모든 순간 이렇게 애틋하고 걱정될 수가 없다. 그런 순간들마다 나는 의심했다. 혹시 그도, 다만 표현 방법의 문제였을 뿐, 그 모든 말과 행동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뜻은 아니었을까. 그의 모든 변론을 받아들여서 혹시 그건 정말 ‘다 나 잘 되라고’ 했던 일종의 고육지책은 아니었을까. 정말 나는 그의 훈육 덕분에 이만치라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아버지로서의 그의 삶을 긍정할 수 있는가? 그가 젊어 한참 주먹을 날리던 그 나이 즈음에 나는 서서, 그 모든 폭력과 불합리, 비이성을 거역할 수 없었던 당시의 나를 떠올린다. 말보다 표정으로 말하고, 표현보다 침묵을 먼저 배웠던 시절,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감시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자주 멈춘다. 말이 나가기 전에, 표정이 굳기 전에, 숨을 삼킨다. 나는 가르치고 싶은 사람이 아니다. 반복하지 않으려는 사람이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나는 그 폭력의 역사를 내 세대에서 끝내고 싶다. 그가 받았던 폭력이 어떻게 그에게로 전이되었는지, 그 전이가 어떻게 내게까지 도달했는지를 나는 짐작할 수 있다. 폭력은 정서보다 구조로, 감정보다 방식으로 전달된다. 맞으며 배운 사람은 때리며 가르치고 침묵 속에서 자란 사람은 침묵으로 통제한다. 나는 그 유산을 물려받고 싶지 않았고 무엇보다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지 않다. 끊는다는 건 참는 것과는 다르다.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 감정을 직시하고 끝까지 감당해야 한다. 나는 그걸 선택했고, 그 선택을 매일 새로이 감당하며 살아간다.


하지만 어떤 날은 흔들린다. 아이를 다그치고 돌아선 뒤, 문득 내가 그에게 받았던 훈육의 문장을 그대로 입에 올리고 있다는 걸 깨달을 때. 나도 모르게 아버지의 방식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챌 때. 더 괴로운 건, 그것이 때로 효과를 낸다는 점이다. 질서를 세우고, 침묵을 만들어내고, 아이를 움직인다. 그럴 때 나는 생각한다. 내가 지금 이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 그 폭력이 기여한 부분이 있었던 건 아닐까. 그렇다면 나는 그것을 어디까지 부정할 수 있을까. 폭력을 미워하면서 그 폭력의 유산으로 살아남았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자주 혼란스럽다. 그리고 다시 다짐한다. 그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그 방식을 반복하지는 않겠다고. 이해하려는 것과 되풀이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잊지 않겠다고.


어느 밤, 현관 앞에서 나는 문을 열기 전 잠시 멈췄다. 오늘 하루 내 발소리가 어떤 공기를 만들었을지 떠올렸다. 이 집에 들어서는 나의 걸음이 딸에게는 어떤 마음으로 들렸을까. 계단 소리는 과거의 것이자 미래의 기억이 된다. 나는 매일 그 소리를 남긴다. 조용히, 천천히. 그러나 명확하게.


딸들은 SNS 어딘가에서 ‘네 잘못이 아니야’라는 말을 듣고 있을지도 모른다. 활자가 아니라 머릿속에서 울리는 누군가의 목소리처럼 반복해서, 천천히, 귀에 익도록. 내가 하지 못한 말을 누군가 해줬고 그것이 제때 도달했다면 나는 그것으로 족하다. 위로는 진심보다 도달이 중요한 순간이 있다. 나는 도달하지 못한 말들을 너무 오래 가슴에 품고 살아왔다. 그래서 지금은 멀리 말하기보다 가까이 머무르려 한다.


가족은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가장 멀리 닿을 수 있는 관계다. 나는 그걸 너무 일찍 배웠다. 그래서 딸들에게는 다른 풍경을 물려주고 싶다. 도열하지 않아도 되는 집, 발소리가 반가운 사람, 문을 열었을 때 숨지 않아도 되는 공기. 그걸 위해 나는 오늘도 내 발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가 두려움이 아니라, 안도가 되기를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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