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실행
신고
1
라이킷
36
댓글
4
공유
닫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브런치스토리 시작하기
브런치스토리 홈
브런치스토리 나우
브런치스토리 책방
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이사라
Nov 16. 2024
10.두 번 바람+a핀 남편과 사는 아내의 일기
깨진 바가지를 사용하는 방법
24.10 31
마트 화장실에 들렀다가 깨진 바가지를 보고
떠오르는 에피소드가 있
다.
남편의 외도
로
깨진 그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참 고민이 많았었다.
깨진 그릇을
다시
쓸 수 있을까 고민해 봐도
깨진
그릇에 음식을 담아 쓸 재주는 없었다.
새는 바가지에 뭘 담아봐야 계속 새는데
음식만 아까울 뿐이다.
아무리 고민해 봐도 방도가 떠오르지 않았다.
버리
는
방법밖에는.
방도
를 못 찾아서
깨진 그릇은 버리
자
.
대신
계속 살아보기로 했으니
새 술은 새 포대에 담듯
,
새 그릇을
받아
새로이
사용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깨진 바가지를 보니
그때의 치열했던 고민이 떠오른다.
깨진 바가지를 보니
더
욱
오래전에
깨진 컵에 비유됐던
내 얘기
도
떠오른다.
7~8년쯤 전
에 예술 놀이 명상 치유 지도자 과정을 수료했었다. 3달간 이어진 프로그램이 끝나고
강사님께서 1:1 면담을 해주셨다.
“수수깡을 세로로 세워서 이어 붙여 만든 컵이 있다 치자.
네가 가진 수수깡의 키가 대부분 7cm, 8cm
의 무난한 길이에
긴
10cm가 많다 해도, 단 한 개가 2cm라면
그 컵에 물을 담아 쓸 수 있겠는가?
2cm의 짧은 수수깡이 있는 곳으로 물이 다 새는 컵이 아무리 좋은 컵이라도 써 볼 도리가 없다.
그런 것처럼
훌륭한 면이 많아도
한두 개의
치명적인 과락이 있다면
제대로 쓰이기가 어려울 것이다
.
너에게 그런 면이 있다.
바로 겸손치 못한 오만이다.”
과락 점수 과목은
인간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기대치였다.
그 면이
겸손치 못한 오만을 낳는다고 하셨다.
현실성이 없어 현실에 두 발을 딛지 못하고
자꾸 부딪치게 된다는 것이다.
인간이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아?
인간이 어떻게 그래?
저 사람은 왜 저래?
같은 무수한 질문들이 그것이었다.
너의 소명은 Wounded Healer(상처받은 치유자)라고 단언하셨다.
기대치가 높다는 게 뭔 말인지는 알 것 같았으나
'
그것이 삶의 치명타까지 될 수 있을까?
내 소명을 어떻게 저렇게 단언하실 수가 있을까?
'
라
는
의아함을 품은 채
,
당장
소화되지 않
는
의문은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에 간직해 두
었
다.
그 시기
쯤
친구 따라 강남 가서 평소에 보지 않던 사주를 보았다.
관록 있는 선생님이라고 추천해서 따라가 앉았다.
그 선생님께서도 같은 말씀을 주셨다.
“사람에 대한 기대치가 보통 사람들보다 5배
는
높다. 겸손 공부다. 이번 생
,
당신의 공부
이고
숙제다.”
내 금생의 숙제를 사주 한번 보고 단언하신다니
신기한 일이었다.
명상을 하고 있다는
얘기에
길흉화복
을
벗어나 삶의 공부를 얘기해 주셨다.
권위자들 두 분이 같은 얘기를 해주시니
내 귀에 들어와야 할 이유가 있겠거니
해도
,
당장 마음에 쏙 와닿지는 않아
나중을 기약하며 마음의 서랍 속에
간직해 두었다.
마음공부는 세 가지로 분류된다.
몸공부, 정공부, 돈공부.
이 세 가지의 목표는 내 것이 아님을 알고
무심해지는 것이다.
내 경우는
주로
정공부(인간관계)에 걸려있다.
남편의 4년여의 두 번째 외도와 +a인 끈질긴 여사친들 문제를 접한 49살에 무너지면서
인간에 대한 관념을 대폭 수정하게 되었다.
기존의 관념의 그릇 안에는 도저히 이런 사실들을 담아낼 수 없어 몸부림을 친 결과였다.
완
고
한
고정관념이라는
그릇이 깨지는 데는
엄청난 고통이 수반됐다. 죽고 싶은 순간도
있
었을 정도로
.
이제껏 '
인간이
그럴 수는 없다
.
'라고 믿었던
이야기를
'
인
간이
그럴 수도 있
나 보네?
'로
바꾸는 작업은 고되었다.
몸부림 끝에,
내 기대치가 비현실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비로소 인정하
게 되었다.
‘인간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가
첫 번째 외도를 알고 나를 굉장히 괴롭혔던 질문이었다.
두 번째 때에도 ‘인간이 어떻게…’ 타령이
계속되면서,
내 기대치를
하향
조정할 수밖에 없었다.
변화된 상황에 맞춰
살기 위해
서
기존의 고정관념을 깎아내면서
변해야 했다.
생각 하나 바꾸는 게 그렇게나 힘든 일일 줄이야...
기존
의
갖고 있던
기준
으로는
나약함, 이기적
인
면모, 흔들림, 악함, 나태, 부도덕, 거짓, 의존성, 위선
, 비겁, 회피
등의 모습은
인간으로서
결
격사유였다.
부족하
고
무
능력하
다고
판단해 왔다.
그러니,
걸리는 면이
곳곳에 널려 있었
다.
남편
과
같이 살겠다는 목표를
지
켜내기 위해,
판단 기준을
하향조정해서기준 치를
수정했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이야.
인간은 원래 나약하고 흔들려.
인간은 원래 환경에 지배당해.
인간이 원래 악한 면이 있어.
인간이 원래 남이
안보는데서는
더
악할
수 있어.
인간이 원래 대부분이 멍청해.
인간이 원래 도덕을 안 지키고 싶어 해.
인간에게 거짓말은 본능이야.
인간은 원래 자기 욕망이 제일 중요해.
약속을 지키는 것이
오히려
대단한 축에 드는 거구나.
책임지는 걸
마땅히,
좋아하는 인간이 대단한 거구나.
이 정도는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내 기준치가
상당히 높은 편이었구나!
완벽함이 평균치라 생각해 왔으니,
나 자신을 포함해 양이 차질 않았구나!
모자라 보이는 모습이 보통 사람들의 평균치였던 모양이다.
변화된 상황에
살기 남기 위해 뼈를 깎아낸 고충으로,
수용력이 늘어난
마음이 좀 편해지고,
삐죽이고
시끄럽던 속이 좀 조용해졌다.
기준 하나 바꿨더니,
나에게도 자유와 평화가 선물처럼 따라왔다.
오만의
가장 큰 피해자는 나였다.
완벽이
기
본이
라 믿었던
높은 판단 기준
이
나 자신을 가장
괴롭
혔다.
나
의
부족하고 모자
란 부분에 현미경을 들이대고서
나를 비난하고
,
미워하고
,
수치스러워했다.
이기적인 면이나 나약함,
나태함,
악함, 멍청함을
스스로 비난하고 죄악시했던 관점에서
조
금
놓여
날 수 있었다.
꾸준한 훈련으로,
‘이 정도야 뭐, 인간이 원래 이래.
나도 그
렇
지, 뭐.’라며 걸림 없이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게 되었다.
타인에게 들이댔던 완벽이란 잣대도 너그러워져
흘려 넘기는 부분이 많아졌다.
사람이 사는 '꼴'을 보는 게 더 수월해졌다.
꼿꼿한 감시의 눈초리가 사라지고
사는 게
걸림턱이
낮아
수월해진 느낌.
완벽이란 짐에 무겁게 눌려, 안팎으로 세모눈을 뜨고 살았던 과거의 내가
힘
겹게 보인다.
어제는 “겸손은 나를 낮추는 게 아니라,
상대를 높이는 것”이란 말을
유튜브에서
들었다.
기대치가 높으면 겸손하기
힘들다는
말씀에 동의한다.
완벽이
라는
기대가 없
는 상태가
나
를
자유롭게 한다.
포기한다는 뜻과는 다르다.
마음을 비우고 있다는 뜻에 가까울 듯하다.
나다움, 더 나아가 너다움에 생각이 미친다.
남편이란
정공부의 스승이자 보석 같은
선물 상자.
불행이란 포장지를 벗기니
이토록 창대한 자유와 기쁨이 깃들어 있었
다
.
여러모로 고마운 사람이다.
아팠지만 나를 성장시켜 준 선생이다.
그렇다고 지금 완전히, 온전하게 수용하고 있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내 공부는 끝나지 않았다...^^
외국 속담에 행복은 불행과 짝으로 온다는 말이 있다.
사람의
정
면만을 보고 이해했던 나에게
남편의 첫 외도는 하늘이 무너지는 충격이었다.
그때부터 사람은 옆면도 뒷면도
숨기는 면도
있는 입체적인 모습이라는 걸 이해하게 되었다.
그것이 때로는 위선적인 모습이 되기도 한다는 것도 알았다.
두 번째 외도에는 사람이 완벽하지 않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이래저래
가시처럼 긁어댔던 많은 기대와 판단들이
가라앉은 셈이다.
완벽이나 완전
이
아니라
온전한 나다움
, 온전한 너다움
의 가치를 소중히 할 수 있는
눈이 생겼다.
서로 다름에 대한 존중도 조금 스며들었다.
49에 남편의 두 번째 외도로 위기를 느끼면서 50부터 내 삶을 세워가는 공부를 치열하게 하면서 운디드 힐러의 길에 들어섰다.
두 분 선생님의 말씀이 족집게 과외였던 셈이다.
두 분께 감사의 마음을 바람결에 전한다.
불행의 시간을 견뎌온 나 자신에게도
수고했다고 인사를
전한다.
한 달쯤 지나 다시 이 바가지를 보았는데,
물이 담겨있었
고
, 계속 사용되고 있었다.
깜! 짝! 놀랐다.
세상에! 이렇게 많이 깨진 바가지에 이렇게나 물이 많이 담
겨 있
다니... 충격적이다.
멀쩡한 쪽을 보면 물의 수위가 제법 높다.
깨진 바가지를 쓸 수나 있겠냐고 한심해했던
나에게는 놀라운 반전이었다.
그제야 쓸 수 없다는 내 기준이
선판단이었음을 알았다.
생각보다 많은 물이 담겨 제법 쓸만해진 바가지의 비결은 바로 <바닥의 기울기>였다.
바가지의
온전한 면
은
바닥면이 낮고,
깨진 쪽의 바닥면이 높으니,
온전한 쪽으로 기울어져 물이 더 많이 담긴 것이다.
기울어진 그대로 바가지를
잡
고 옮기면
물을 흘리지 않
을
수도 있다.
자세히 사진을 보면 바가지 안쪽에 진한 갈색
으로 낀 물때가
보인다.
평소에 바닥의 기울기 없이 평평하게 놓으면
물이 저 갈색선까지만 차는 모양이다.
바닥의 기울기를
깊이 하니,
훨씬 많은 물이 담긴 것이다.
매직처럼 보게 된 장면
에
고정관념이
깨졌고, 그 자리에 지
혜
와
사랑을
얻었다.
깨진 바가지 자체로
쓰기에는 결손이 크지만,
그것이 놓인 환경에 변화를 주니 쓸 만 해진다는 것.
남편이라는 깨진 바가지
의 주인으로서
희소식이기도 하지만
,
나
에
게
더
큰
의미가
있다.
위에서
명상지도사 선생님이
언급했던
것
처럼
나
도 한쪽이 깨진 듯 온전치 못해
잘
못
쓰이던
컵이었
기
때문이다.
남편과의 정공부 덕분에
부대끼며,
조금은 자랐을지라도
워낙 미달치로 태어나 여전히 과락일 텐데
컵에
물을 더 많이 담아
사용할 수 있는 방법
이
있다는
점이 나에게는 아주 매력적인 깨달음이다.
'
나'라는 평생 함께 해야 할 단 하나의 바가지를
못마땅하다고 홀대하거나 버릴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남편이라는 깨진 바가지의 온전한 면에 집중하자.
장점, 강점, 나에게 좋은 점을 바라보며 무게 중심을 실어 기울기에 변화를 주자.
더 쓸만해질 것이다.
나라는 깨진 컵의 온전한 면에 집중하여
강점에 힘을 실어주자.
더 유용해질 것이다.
사고를 제한하지 말자.
내 가능성을 놓지 말자.
겸손 공부니, 남편 문제니,
그 순간순간은 어둡게 찍힌 점일지라도
그 순간을 지나고 또 다른 순간들의 연속점이
찍히며 그려지는 그림이 볼만하다.
순간순간 힘이 들어도
멀리서 보면
변화가 있고, 반전이 있는
삶이 보람 있고 재미가 있다.
깨진 바가지를 만난 행운에 감사한다.
성장을 도와주시는
하늘
에 감사드린다.(무교다.)
keyword
부부
바람
외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