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지몽 같은 기억의 파편
- 데자뷰(Déjà vu), 기시감 : 처음 보는 대상이나, 처음 겪는 일을 마치 이전에 보았다는 느낌을 받는 이상한 느낌이나 환상. (프랑스어 발음으로 '데자 뷔'가 맞지만 이 글에서는 통용적으로 쓰는 데자뷰로 쓰겠다.)
살다 보면 한 번쯤 느끼게 되는 데자뷰. 나는 그 데자뷰를 어릴 때부터 많이 느끼던 사람이었다. 차를 타다가 무심코 본 창밖의 풍경, 책상에서 책들을 무작위로 펼쳤다가 보이는 모습 등, '이건 분명 내가 겪었던 일이야'라는 생각이 들 만큼 생생히 느껴지는 기시감에 소름이 돋을 때가 많았다. 사람마다 얼마나 자주 느끼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이전 데자뷰가 잊힐 때쯤이면 항상 다음 데자뷰를 느끼곤 했다.
매번 이 알 수 없는 감각을 느끼고 나면 이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 왜 생기는지 상상을 하게 된다. 이미 데자뷰에 대한 많은 연구와 과학적 견해들이 있지만, 그것은 다음번에 다뤄보도록 하고, 오늘은 그 상상들을 먼저 편하게 나눠보고자 한다.
내가 데자뷰를 느끼는 이유 - 상상 첫 번째는 '꿈으로 나에게 보여주는 미래'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꿈을 꿀 때 그 꿈을 온전히 기억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은 기억을 하지 못하는 경우도 많고 물에 번진 수채화처럼 흐릿한 기억으로 꿈을 기억하는 경우도 많다. 그렇게 조금만 지나면 잊히는 번진 수채화 같은 기억이 꽤 시간이 지나서 한 순간 나에게 데자뷰로 다가온다. 그럴 때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아 그 꿈이 나에게 보여줬던 미래가 지금 이 순간이구나.'
그렇게 데자뷰로 인해 꿈은 나에게 '미래를 보여주는(내가 기억을 못 하는 것일 수도 있겠지만, 온전히 보여주지는 않고 힌트만 주듯 보여주는) 신기한 창구'가 된다.
원래 꿈은 내가 경험했던 많은 기억들과 요소들을 조합하여 다시 내가 무의식 속에서 보여주는 랜덤한 영화 같은 것이었는데, 그 영화의 필름 사이사이에 내 미래를 알려주는 예언의 장면들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그걸 모르는 나는 그저 보기만 하고 내 머릿속 어느 한 구석,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는 곳에 던져놓았다가 정말 그 순간이 왔을 때가 돼서야 기억을 다시 하게 된다. 아~ 그 꿈이 나에게 알려주었던 것이구나 하고.
그렇게 데자뷰를 느끼고 나면, 내가 지금 있는 이 순간이 그때 그 꿈을 꿨을 때부터 이미 결정된 운명으로 흘러오는 결과와 같이 느껴진다. 지금의 나는 이곳, 이 순간에 있을 운명이었구나. 그러면 그 순간이 내가 힘들거나 지친 순간이더라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기고, 기쁨 혹은 감성적인 순간이면 운명의 결과로 나오는 순간들이라 더 소중히 느껴지게 된다.
내가 데자뷰를 느끼는 이유 - 상상 두 번째는 '또 다른 나의 기억'이기 때문이다.
나는 마블을 좋아한다. 영화로 빠져들고 코믹스로 곁들어 맛있게 즐기는 팬으로서 이 상상은 마블의 '멀티버스 타임라인'과 같다.
지금 내가 있는 이 순간 나의 어떠한 결정(예를 들어 A or B 라 하자)에 따라 시간의 분기점이 생기고, 각각의 결정을 선택한 순간들로 내가 살아가는 시간선이 나누어지게 된다. 그때부터 나는 'A'를 선택한 나와 'B'를 선택한 나로 살아가게 된다. 똑같은 세상이었지만 그 선택 이후로 다시 모든 순간들이 같아질 수도, 달라질 수도 있는 각각의 나로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무수히 많은 분기점에 따라 다양한 시간선을 살아가는 도중, 한 번씩 그 '무수히 많은 나'의 시간선들끼리 다시 붙게 될 때, 나는 '데자뷰'를 느끼는 것이다. '다른 시간선으로 살아가는 나'와 '나의 시간선 속의 나'가 같은 순간을 경험하게 되면, 또 다른 나와 함께 경험하며 그 다른 나의 기억으로 내가 이 경험하게 되어 똑같이 다시 겪는 것과 같이 느껴지는 것이다.
나는 지금 이 순간의 나이다. 또 다른 내가 정말 있을지 없을지는 모르지만 내가 살아가는 이 순간이 나에게 전부이던 순간에, 데자뷰는 '또 다른 내가 살아가는 다른 시간선'에 대한 상상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된다.
물론, 데자뷰는 '뇌의 디스크 조각모음', '시각과 뇌의 정보전달과 처리 시간의 차이' 등 많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그렇지만 데자뷰를 그냥 단순한 기시감으로서 지나 보내지 말고 한 번쯤은 위와 같이 재미난 상상으로 즐겨본다면, 똑같은 하루의 일상을 재미난 순간으로 색칠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똑같은 쳇바퀴를 도는 내 삶이 이유가 아닌, 다른 재미난 이유들이라면 내 삶의 소소한 순간순간들이 더 재밌게 느껴지지 않을까?
이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의 상상이 궁금하다
"당신의 상상은 어떤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