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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성우 Nov 12. 2024

괜찮아, 그 한마디 말

사랑의 언어, 그 두 번째

사람은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퍼스널 스페이스가 있고, 자신만의 정신적 배터리 총량이 있다.

그리고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에게 의도치 않은 실수를 저지를 때가 있고, 잘못을 저지를 때가 있다.


나와 그다지 상관없는 사람이 나에게 잘못을 저지른 경우, 오히려 아무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그건,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를 하고 있지 않았거나 감정을 거의 주지 않았기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내 퍼스널 스페이스 밖의 사람들은, 나에게 무채색인, 큰 영향을 주지 않는 사람들이니까.

그렇기에 나는 그들에게 내 정신적 배터리를 사용하는 일이 잘 없다.


그렇지만 나의 가장 친한 친구나, 가족이나,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자.

만약 그들이 나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혹은 내가 그들에게 잘못을 저질렀다면, 내 퍼스널 스페이스 안쪽의 사람들에게 나는 나의 배터리를 사용하기 시작한다.

내가 기대를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받는 감정적 영향은 내 배터리를 급격히 소모시키고, 내가 잘못을 저지른 경우는 그 소모가 가속화된다.


그 때문인지 정말 이상하게도 오히려 가까운 사람일수록 쉽게 용서가 되지 않을 때가 많다.

내 배터리가 많이 닳아서인지, 그만큼 더 기대를 했었기 때문인지, 무거운 감정은 나를 가라앉게 만들고,

그 속에서 출렁이는 감정의 파도는 한 번씩 내 밑바닥을 조금씩 드러낸다. 그렇게 마주하는 처참한 감정의 광경은 나를 더욱 차갑게, 아래로, 가라앉게 만든다.

누구나 밑바닥에는 가라앉아 고여버린 것들이 있겠지만, 그것을 내 마음 깊이 잠겨놓았을 때와 그것을 실제로 마주할 때는 너무나도 체감이 다르다. 감정의 바닷속 밑바닥에 가라앉은 것들은 어찌도 이리 차가운지.


그렇지만 그렇게 가라앉는 나를 건지는 사랑의 언어가 있다.

너무나도 간단한 그 용서의 말,


괜찮아.


"괜찮다"는 그 말 한마디의 따뜻함은 간단해 보이는 세 글자와는 반대로 깊다.

오히려 간단해 보이는 그 말 한마디가 실제로 진심을 다해 내뱉기는 더 어려운 것처럼, 그 한 마디의 길이와 깊이는 길어진 노을빛과 같다.

그렇기에 깊이 가라앉아 있더라도 그 빛은 바다 깊은 곳까지 닿고, 얼어있던 마음을 녹이고, 날 건진다.


이 말은 용서를 받는 사람뿐만 아니라 용서를 하는 사람도 살린다.

용서를 한다는 건, 넘치는 마음으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똑같이 바닥을 마주한 마음에서 전하는 사랑이기 때문이다.


그런 사랑은 비어있을수록 채울 것이 많다. 빽빽한 건물 속으로는 가리어져 잘 들어오지 못하는 빛이지만, 보다 텅 빈 것 같은 넓은 황무지에서는 따스히 주황빛을 온 대지에 물들인다.


그렇게 노을빛이 지나고 하루가 가면, 다시 떠오르는 날에는 황무지 같던 내 마음의 바닥에서도 새싹들이 피어오른다.

괜찮다는 그 말 한마디에, 내 겨울은 끝나고 따스한 봄이 온다.


사랑은 어렵다, 그렇기에 더 숭고하고, 더 따스하다.

오늘도 사랑의 말을 전해본다, 나는 괜찮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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