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사람이 그때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명절 지나 찾아갔다.
서먹서먹 아이를 앞세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지만 공기는 싸늘하다.
할머니는 아이에게 학교생활은 어떤지 일상을 묻는다.
나의 시선은 아래로 향해있고, 그들의 대화에 끼어들지 않은 채 소리로만 듣고있다.
금값이 올라 아이의 돌반지를 팔았다고 한다.
(아니 왜!!! 아이것을 말도 없이 팔어!!)
(금값이 올라 팔았다기 보다...이제 조금씩 당신이 떠나갈 준비를 하는 듯 하다)
현금으로 돌려주겠다며, 은행 ATM기를 이용하시겠다고 함께 나가자고 하신다.
평소와 다르게 외출복을 착용하고 있음에 우리가 오기 전 부터 이미 그럴 계획을 가지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몇 달 전 집안에서 넘어진 이후 보조 기구 없이 걷기가 어려워졌다.
아이는 할머니의 보조 기구를 자기가 끌을 테니 할머니보고 앉으라고 한다.
힘들었던지 할머니 또한 거절하지 않고 앉는다.
10년 전부터 나는 가족들과 연락하지 않고 지낸다.
모두가 지척에 살고 있지만 이웃보다도 사는 이야기를 전혀 모른다.
그렇기에 아이와 함께 나의 엄마와의 외출(?)은 15년 이상은 되었을 것 같다.
흔히 볼 수 없는 3대의 외출이기에 특별함으로 저장되었다. 더불어 이제는 연로하여 언제 다시 볼 수 없을 내 엄마의 뒷모습이기도 하다.
지금 이 순간, 모든 침묵의 세월, 말하지 못한 말들, 삶의 상처들이 내 마음을 휘졌는다.
이제는 나보다 훌쩍 크고, 성인이 되어 어깨가 넓어진 아들과 보행기의 도움이 없이는 걸음을 떼기도 어렵고, 굽어진 어깨로 시간의 흐름을 말해주는 나의 엄마와의 관계는 각별하였기에 다행이다 생각하며 그 모습을 오래도록 눈에 담아둔다.
"당신 자존심 지키겠다고 딸을 그렇게 내치시면 전 어떻게 살라고요!!"
내겐 아직도 원망이 한가득이다.
나도 엄마라는 자리에 있으나 딸로써 엄마에게 인정받지 못함은 언제나 나를 작게 만든다.
인정받지 못하고, 단절되어 사는 동안의 조용한 눈물, 그 쓸쓸함, 그 외로움... 미묘한 감정들이 아들과 함께 있는 엄마의 뒷모습에서 자꾸만 아리다.
왜 깨달음이나 교훈은 언제나 모든 것이 지난 다음에 올까?
그 사람이 그때 얼마나 소중했었는지,
그 물건이 내게 얼마나 가치 있는 것이었는지,
그때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한 것인지,
그날 내가 그 말을 왜 했었는지.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날이 이렇게 아프게 기억날지 몰랐다.
"마음을 두고 와도 괜찮아" 중에서
아직도 성숙하지 못한 어린 자아가 엄마에게 인정받고자 무던히 애쓰던 시간들을 이제는 조금씩 내려놓으려 한다.
한참이 지난 후에 이 시간이 얼마나 소중했는지, 또 얼마나 아프게 기억될 날인지 나는 아직 모른다.
그럼에도 오늘을 기억하려 사진으로 남긴다.
단순한 산책으로 보일 수 있는 사진의 특별함.
아직도 한가득 담고 있는 원망을 바라보기 보다, 그럼에도 감사하다고 말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기를, 그럼에도 내 엄마여서 고맙다고 말할 수 있기를....
어쩌면 마지막이 될 3대의 외출 사진에서 여전히 엄마에게 인정받기를 갈구하며, 다 담아낼 수 없는 이야기의 한 컷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