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계속해서 이어져내리는 공부
지금은 공부를 하고 싶다. 공부가 즐거워서라기보다는, 알수록 지혜가 쌓여 내 글의 풍부함과 소설에 대한 창의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예술 위주로 특히나 공부하고 싶다. 지금은 책으로 공부하고 있지만, 학창 시절에 배웠던 이론들이 어느새 가물가물해지고, 의지할 것이라고는 전자책밖에 없으니, 수업을 어디서 청강해야 하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목마르듯 공부에 매달린 적이 없다. 학창 시절에는 공부의 진실성을 이해하지 못했고, 결국 좋은 대학에 진학할 수 없을 것이라고 단정했다. 떨어지는 성적과 관심 없는 선생님들 사이에서 나는 훌륭한 학생이라고 할 수 없었다. 그저 공부 잘하게 생기기만 했다. 그래서 첫 학기에는 선생님들에게 인상적으로 보였다가도 중간고사 성적을 보면 개차반 당한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등학교 때는 더 살벌해졌고, 그때는 이젠 내 자신을 놓아버리고 공부하기 싫어했던 것 같다. 공부하는 것이 의미 없었고, 거기서 얻는 목표 또한 내게 의미가 사라졌다.
나는 그렇게 공부를 못해서 좋지 않은 대학에 가고, 수치로 가득 찬 사람으로 똘똘 뭉쳐졌다. 수치심 때문에 학교를 다닐 때마다 고개를 숙이고 다녔던 기억이 난다. 때로는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내가 무시했다. 그 사람들은 얼마나 한심하길래 여기까지 와서 돈 내고 수업을 들을까 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나도 같은 처지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았다. 나는 그저 특별한 케이스로, 운이 안 좋아 이곳으로 낙방한 사람으로 스스로 인식했던 것 같다. 그랬다, 나는.
이후에 나는 공부와 담을 쌓지 않았다. 조금만 공부하면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수준의 학교였기에 열심히 공부했고, 편입도 했다. 그렇게 방대한 양의 공부가 오히려 나에게 활력을 주었다. 그렇게 울고 아프면서 공부하다 보니 이제는 공부가 재미있어지기 시작했고, 과거 고등학교 때 배웠던 모든 수업들이 그리워졌다. 나중에 혼자 수능특강 책을 사서 공부했다. 거기서 배우는 공부는 정말 단순 암기로 문제를 풀기 위한 공부라는 것을 직감하자 재미가 뚝 떨어졌다.
나는 결국 어떤 식의 암기와 어떤 식의 배움을 해야 이해를 하고 세계를 탐험할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결국 주입식 교육으로 만들어졌을 때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깊이가 나오는 것인가 싶다가도, 이해와 문화적 가치를 인정하면서 얻는 풍부함이야말로 내가 발휘할 수 있는 깊이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 결국 두 조화가 이루어질 때 싱크로가 생기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는 헌법의 밑줄도 조금씩 외워보고, 미술사의 시초였던 고대 벽화부터 프레스코 방식의 벽화들, 이집트 문명과 비잔틴 제국의 시대 등을 세계사와 함께 배우면서 예술과 접목해 본다. 그러다 보면 내가 좋아하는 화가들이 등장할 것이고, 그 화가들의 그림을 더욱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현대에 살면서 사랑받는 화가가 되려면 공부도 하고, 자기 PR도 해야 하고, 참 바쁜 시대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