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 언제나 어렸을 적부터 삼겹살은 내 친구
11살부터였다. 내가 기름 있는 고기를 먹기 시작한 것이. 그전에는 그렇게 맛있는 고기라 할지라도 안심 스테이크와 기름이 제거된 살코기만 먹었다. 고기의 씹을 때 나는 고소함은 좋았지만, 비릿한 기름 냄새는 별로였다. 그런데 강제로 입 안에 들어온 삼겹살은 묘하게 어우러지는 하모니가 있었다. 그 하모니에 반해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고깃집에 갔고, 항상 같은 고깃집에 질릴 때까지 갔다.
고등학생 때는 삼전동에 있는 고깃집을 자주 갔었다. 그곳은 고기 값이 워낙 싸고 반찬도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합리적인 가격으로 약 5인분씩 시켜서 고기를 먹어댔다. 그때는 살이 쪄도 된다는 생각과 함께 영양이 부족하면 절대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나의 모습은 마치 뒤룩뒤룩한 비둘기처럼 앉아 끼니를 챙겼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당시는 엄마가 삼겹살 이외에도 전복구이 같은 맛있는 음식을 다 대접해 주셨던 시절이다. 그런데도 나는 여전히 삼전동 고깃집이 기억에 남는다.
대학생이 되고 나서부터 가족과의 외식이 끊겼다. 나는 친구들과 과제를 하느라 바빴고, 외출이 밥 먹는 것보다 더 잦아졌다. 어쩔 수 없었다. 그때는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 다 정리하고 과제를 완성하다 보면 결국 파멸할 것만 같았다. 머리가 폭발할 듯 아토피까지 올라왔던 어느 날, 나는 친구들과 고기를 먹으러 갔다. 학교 근처에 무한으로 계란찜을 먹을 수 있는 고깃집이 있었는데, 그걸 10번 이상 채워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난다. 고기로 배를 채우기 어려울 때 계란물에 고기를 싸서 먹으면 금세 배가 불렀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직장인이 되고, 솥뚜껑 삼겹살의 존재를 알게 되었다. 그것이야말로 혁명이었다. 내가 먹었던 삼겹살 중 가장 기름지고도 가장 알찬 맛이었다. 올라가는 재료도 다양한 데다 사장님의 인심이 가득 담긴 음식이었다. 나는 운동하고 나서 단백질을 섭취해야 한다는 핑계로 삼겹살을 먹으러 갔다. 그렇게 먹은 지도 벌써 15년에서 20년이 훌쩍 지났다. 나는 돼지를 몇백 마리나 먹었을 텐데, 이제는 셀 수도 없다. 심지어 이번에 발견한 떼지코 식당에서는 돼지 코 부위까지 먹어보았다.
요즘은 공부하느라 글 쓰느라 바쁜 연인 앞에서 고기만큼 위로가 되는 것이 없다. 고기의 지글거림 속에서 기다림의 미학도 배우고, 맛있게 먹기 위한 다양한 실험 정신도 발휘해 기름칠한 김치에 고기를 올려 먹으니 더욱 맛이 좋았다. 나는 이 고기가 주는 즐거움을 평생 간직하고 살 것 같다.
예전에 봉준호 감독의 <옥자>를 보고 채식주의자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그 마음은 하루도 못 가 깨지고 말았다. 결국 나는 파괴적인 인간임을 인정하고 고기를 섭취하고 있다. 삼겹살이라는 소울푸드는 전 세계 어디서든 기억될 것이고, 한국인이라면 그 짠내 나는 기름을 언제고 다시 먹으러 갈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