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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후드 입은 코끼리 Oct 25. 2024

업무를 위해, 나 자신을 위해

수필같은 소설:  계속되는 순례길을 향해서 

9 to 6, 열정적으로 일하다 보면 시간이 어떻게 가는지 모를 때가 많다. 거기서 얻는 성취감은 그저 오늘도 해냈다는 증거와 월급날 들어오는 급여다. 그 이상의 것을 바라다가는 돈이 주는 달콤함에 속아 넘어가기 쉽다. 잠깐의 마취에 정신이 팔렸다고 생각하지만, 그 마취는 정년퇴직할 때까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간다. 하지만 나는 잠시도 수면마취에 혼란스럽게 팔려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이후 그저 똑바로 정신차리다보니, 회사의 대리까지 오게 된 것 같은 기분이 든다.오늘도 힘을 내서 업무를 위해 열심히 타자를 두드리고 손님을 맞이하며 접객을 하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6시가 되어 있다. 하지만 내가 원하던 침대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아늑하고 따뜻한 퇴근길에 어느새 눈이 감기고 만다.



회식 자리가 있었다. 회식의 바람이 불었던 시기인지라 술이 절로 넘어간다. 맛있지 않은 술이 목구멍으로 억지로 들어간다. 그 속에 한 점씩 들어가는 쌈장 섞인 고기와 오고 가는 시선들. 사람들이 내가 먹는지 마시는지 확인하다 보면 어느덧 시간은 8시까지 흘러가 있다. 저녁에 약속 있다고 다들 2차를 피하려는 눈치였다. 그러나 부장님의 덕담을 듣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노래방과 함께 다시 술잔이 돌기 시작했다. 맥주와 소주를 선택하라는 부장님의 외침은 마치 신성한 축배였기에 죽어서도 마셔야한다는 일념 하나뿐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섰다가 앉았다가를 반복하며 지쳐 쓰러질 듯한 상태로 업무의 강도가 높아졌음을 직감했다. 이렇게 살아야 하는 것이 죄악인 것인가? 내가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돈에 집착하며 살아가야 하는가? 화려한 스터드 옷을 입은 노래방 아가씨들까지 초청하자는 부장님과, 그것을 만류하는 팀장님과 과장님. 서로 집에서 기다리는 안사람을 의식하며 시대가 바뀌었다고 설득하는 그들의 모습. 그렇게 오늘 하루가 흘러갔다. 나는 그들의 눈치를 보며 조심스레 회식 자리를 마무리했다. 거기서 얻은 칭찬 세례와 술 한 잔. 나는 그 자리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환하게 웃었다. 웃음의 진정성은 타락하고 말았다. 



9시가 다가오고 이제는 끝나기 일부 직전이었다. 결국 나의 업무가 이제서야 종을 쳤다.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부르지 않겠지, 하며 타러 가는 지하철 속에 나 같은 젊은이들이 한둘씩 섞여 앉아 있다. 그들도 회식 자리가 즐거워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 버티며 온 듯하다. 버티기만 하면 성공이라는 세상 속에서 오늘도 돈을 정직하게 모으기 위해 회식에 참석하고, 술도 마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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