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lf-Care essay ① - 아프고 힘들 때, 물어봤어야 했다.
“고생했다. 어려웠어? 잘 본 것 같아?”
도시락부터 등하교까지 나를 위한 케어와 기도로 온전히 하루를 다 보낸 엄마가 수능 시험을 끝내고 고사장을 나오는 나에게 물었다. 엄마의 질문에 팩트 중심으로 대답을 한다면,
“고생은 무슨, 엄마가 더 고생했지. 그렇게 공부를 안 했는데 당연히 나에게 시험이 어렵지ㅎㅎ, 잘 봤겠어? 그래도 매 교시 답안지를 다 내긴 했어. 큰 기대는 하지 마” 뭐 이 정도가 적절한 대답이려나?
그렇지만 나는 “고생했다. 어려웠어? 잘 본 것 같아?”라는 질문에,
“나 너무 아팠어. 게다가 시험 보는 도중에 코피가 나서...”라고 대답했다.
시험 잘 봤냐는 질문에 아파서 힘들었다는 아이.
그 아이는 오랜만에 꺼내 보는 오래 전의 나 자신이다. 수능 시험 날 아팠다고 하는 나에게 당시 엄마가 어떤 대답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차피 엄마의 대답은 중요한 게 아니었다. ‘나는 시험을 잘 보지 못했는데 그것은 내가 아팠기 때문이다’ - 이것이 내가 보내고 싶은 메시지였던 것 같다. 오래전 일이지만 아마도 나의 통증은 불안한 마음에서 기인했을 것이다. 시험을 치르는 순간에는 진짜 아팠을 수도 있지만, 시험이 끝나고 병원으로 가지 않고 외식을 하러 패밀리 레스토랑에 갔고, 수험표를 내밀고 할인까지 받은 기억이 있는 거 보면, 수능 시험 날의 통증은 명백한 꾀병이었을까?
시험 잘 봤냐는 질문에 아팠다는 말이 그냥 가장 먼저 튀어나왔다. 어떤 불안이 내 몸을 지배했을까? 내 무의식은 불편한 마음을 들키느니 차라리 몸이 아픈 게 낫다는 쪽으로 흘렀다.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 닥치면 (원인 모를?) 통증을 등장시켜 불편한 마음을 회피하는 놀라운 무의식의 세계! 아팠다고 하면 내가 공부에 소질이 없거나 노력하지 않아서 수능 시험을 망쳤다는 것도 덮을 수 있고, 아팠다고 하면 시험 결과의 추궁보다는 위로의 우쭈쭈가 먼저일 것이라는 판단. 당시의 나는 나의 무의식에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돌이켜 보면 수능 시험 이전에도 그리고 그 이후에도 나는 불안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분별없고 충동적인 방어기제를 사용했던 듯하다. 자기를 방어하기 위한 부정적인 성격의 방어기제는 거짓말 또는 부정행위 등으로 나타났을 것이다. 거짓말이나 부정행위를 하면서도 정작 내 속마음을 들여다본 적이 없다. 내가 왜 그랬는지 뭐가 불안했고 어떤 비난이 두려웠는지 물어본 적도 들어본 적도 없었다. 실체도 없는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한 언행으로 인해 실체가 있는 비난을 받게 되면 더 괴로울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은 알고 싶다. 그리고 알게 된다면 앞으로는 달라지고 싶다. 어제까지의 내가 나의 불안에 관심이 없었다면 오늘 이후의 나는 나의 불안에 관심을 가져 주자. 나와 직면하자. 나와 대화를 나누고 나와 상담을 하자. 과거에 시험 때만 되면 아팠던 나에게, 가기 싫었던 회사 워크숍에 갔다가 고생했던 나에게, 하고 싶지 않은 일을 또 하려고 하는 나에게 물어보자.
왜 무엇 때문에 아팠니?
무슨 걱정이 있었던 거야?
널 가장 힘들게 한 걱정거리는 뭐야?
(무언가를) 망쳤다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봐 두려웠던 거니?
두려워했던 일이 실제로 일어난다면 가장 견딜 수 없는 감정은 뭐니?
널 아프게 한 불편감에는 실체가 있니? 혹시 실체가 없이 너 스스로가 생각해 낸 것은 아닐까?
최악의 경우를 예상해 보고 어떤 일이 일어날 것 같은지 말해 줄래?
힘들었던 순간의 나에게, 위와 같은 질문들을 던졌어야 했다.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으니 앞으로는 물어봐야겠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미리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말고 자신의 불편한 감정의 실체와 직면하는 훈련 – 살면서 내가 받은 어떤 교육과정에서도 이런 훈련은 없었다. 학교 다닐 때는 불편한 감정으로 인해 몸이 아플 수 있다는 사실도 잘 몰랐던 것 같다. 그저 어딘가가 아프면 부모님께 얘기하거나 병원에 가거나 약을 먹었다. 스스로 선택한 것이 아닌 결정들, 타인의 기준과 잣대로 재고 있는 나의 행복. 이런 것들이 나의 불안을 키울 수 있고 그런 불안이 나에게 통증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교육은 없었다.
이제는 셀프케어 훈련을 시작해 보고자 한다. 나와 직면하기, 나에게 묻기, 나의 생각을 따라가기 - 과거에는 아예 몰랐고, 오늘 알았다고 해도, 내일부터 실행하면서 살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나를 돌보기에 익숙해져야 한다. 주기적으로 전문적인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면 셀프케어에 익숙해져야 한다.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나무라지 말자. 나에게도 남에게도 말하기보다는 듣기에 집중하자. 내 마음을, 내 걱정을, 내가 두려워하는 것을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가만히 들어보자.
오랜 전 수능 시험 날, 시험 잘 봤냐는 질문에 아팠다고 대답했던 그 아이에게 - 뭐가 그리 불안했던 건지, 감추고 싶은 마음은 뭐였는지, 시험을 망쳤다고 말하면 누구에게 어떤 비난을 받을 것 같아서 두려웠는지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