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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하루

당연한 것들에 대하여

by 산소쌤

어릴 적 우리 집은 사촌 형제들, 사정이 어려운 이웃, 객식구들로 늘 북적였다. 그 모든 이들의 밥과 옷가지를 챙기면서도 어머니는 희생이나 봉사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으셨다. 늘 동네의 힘든 일에 앞장서셨고, 그런 어머니를 향한 칭찬은 수없이 들었다.

조금 크면서 어머니가 이해되지 않았다. 우리 집 일도 아닌데 왜 나서서 고생하시는지, 어린 나로서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저녁에 끙끙 앓으며 주무시는 모습을 보면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 "엄마는 왜 남의 일에 나서서 고생해요? 누가 알아주기나 해요?" 투정을 부렸다.


어머니는 평생 "천사 같은 분!"이라는 말을 들으며 그렇게 사셨다. 췌장암으로 아산 병원에 계실 때 친구분들이 버스를 전세 내서 위로하러 오셨다. 자신이 통증으로 힘들어하시면서도 그들을 내려보내기 전에 식사를 잘 챙겨드리고 간식을 버스에 넣어드리라고 신신당부하셨다. 그리고 얼마 후 천국으로 가셨다.

노제를 지내기 위해 시골로 내려갔을 때, 엄마의 마지막 길을 보기 위해 많은 사람이 길거리에 나와서 함께 슬퍼했다. 그때 나는 비로소 알았다. "엄마, 참 잘 사셨어요." 진심으로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어머니는 보상을 바라지 않으셨다. 칭찬받길 기대하지도 않으셨다. 그저 옳다고 믿는 일을 조용히 하셨을 뿐이다. 그 모습이 은연중에 내 안에도 스며들어 있었다.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살고 싶다는 마음, 그래서 퇴임 후 정신장애를 앓는 분들과 함께 노래하는 모임에 참여하게 되었다. 어머니와 달리 부족한 나는 봉사하고 있다고 공공연하게 떠들고 다녔다.

그런데 이번 연말 공연을 준비하며 큰 깨달음을 얻었다. '내가 그들을 돕는다'라고 생각한 게 얼마나 교만한 생각이었는지 깨닫게 되었다.


환우들과 동요와 아름다운 가곡을 함께하며 하모니를 만들어간다. 70세를 바라보는 분부터 젊은 30대까지, 망상과 환청 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려는 성인들이다. 이들이 가정과 기관의 도움 속에서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집에서 홀로 고립되는 고통, 그리고 가족에게 지워지는 무거운 짐을 덜기 위함이다.

연말 발표회는 그들의 회복 의지가 폭발하는 자리였다. 함께 호흡을 맞춘 세 곡의 멜로디가 조심히 울려 퍼질 때, 단상 위에서 긴장하면서도 최선을 다하는 그들의 모습은 보는 이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특히 '회복 수기' 발표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눈도 맞추지 않고, 겨우 작은 소리로 답하던 60대 환우는 필라테스와 매일 걷기 운동으로 건강을 되찾았다고 자랑하며 마라톤 도전을 꿈꾼다고 했다. 50대 중반까지 의사 생활을 했던 과거로 돌아갈 수는 없지만, '지금 상황에서 더 나빠지지 않겠다'라는 그의 다짐은 회복의 강한 의지였다.

"나도 예쁜 옷 입고 정상인들과 똑같이 돈 벌며 생활하고 싶어요."라는 40대 여성 환우의 솔직한 토로는, 우리가 얼마나 많은 것을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지를 깨닫게 했다. 대학교 때 발병하여 병원과 집만 오가는 단순한 생활 속에서 겪는 자괴감, 그리고 세상과 단절된 삶에서 벗어나 사람들을 만나고 소통하는 것 자체에 감사함을 느끼는 40대 남성 환우의 모습은, 나에게 '정상'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다시 묻게 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평범한 하루가 그분들에게는 얼마나 간절한 꿈인지 알게 되었다.

약 없이 아침을 맞이하는 것, 내 생각을 내가 조절할 수 있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나는 큰 선물을 받은 것이다. 그렇다면 이 선물을 소중히 여겨야 하지 않을까? 그분들이 목숨처럼 지키려는 평범한 하루를 나는 무기력하게, 불평하며 무의미하게 흘려보내선 안 된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결국, 내가 그분들을 돕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그분들이 내 삶을 단단하게 붙잡고 있었다. 그분들의 회복 의지와 한 걸음이라도 더 나아가려는 간절함은 내가 무심히 잊고 있던 감사였다.


어머니께서 보상 없이 조용히 선한 일을 하셨듯, 지금 내가 환우분들과 나누는 시간도 그 마음의 연장이다. 내가 누리는 평범한 하루 자체가 너무 큰 선물이기에, 그 선물에 걸맞게 살아가야겠다. 거창한 봉사가 아니라, 내가 누리는 일상의 감사함을 조용히 나누는 것이다. 이 마음이 오히려 내 삶을 더 단단하게 만들어준다.

앞으로 환우분들과 함께할 때 감사하는 마음으로 눈을 맞추고, 그분들께 고마워하며 이야기에 귀 기울여야겠다. 감사와 책임으로 하루를 살아가겠다. 무기력하게 흘려보낼 뻔한 평범한 아침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꿈이라는 것을 잊지 않겠다. 마음이 흔들릴 때면 어머니의 조용한 베풂을 떠올리고, 환우분들의 회복 의지를 생각해 보겠다.

그것이 내가 받은 선물에 대한 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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