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올해 첫 제주행이었다. 해녀가 운영하는 민박에 머물고 싶어 온라인에서 검색하니 한 군데 나온다. 예약키를 누르기 전에 요즘도 물질을 하느냐 문자로 물으니 그렇다는 대답이 온다. 잘 됐다, 얼른 숙박비를 보냈다. 내가 묵는 동안 물질하는 바당에 따라갈 수 있을까, 직접 잡아온 해산물을 먹을 수 있을까, 어떻게 좋은 인상을 주어야 친해질 수 있을까. 기대감에 부풀었다.
첫날, 숙소를 찾아들었다. 60대로 보이는 부부가 나를 맞는다. 그런데 조그만 강아지가 깡! 깡! 깡! 쉬지 않고 짖어대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긴 대화가 불가능하다. 남편 뒤에 섰던 여인이 나서는데 뽀얀 얼굴에다 찰랑이는 귀걸이. 해녀 맞나? 묵을 방을 안내하는데 강아지를 안고 들어온다. 계속 짖으며 버둥대는 통에 달래려는 그녀도 정신을 수습해보려는 나도 혼이 쏙 나갔다. 강아지나 좀 떼놓고 올 것이지, 원.
아침 죽을 주문하자 물질 나가는 날 빼고 가능하단다. 해녀들은 물때가 맞아야 물질이 가능한데 그것마저 한 달에 반 정도밖에 할 수 없다. 내가 묵는 날과 맞은 거다.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여행 일정을 다시 짰다. 그런데 전날 저녁 바당에 나가는 날짜가 바뀌었단다. 하필 해녀박물관의 해설사와 선약을 한 날이다. 그렇게 물질을 따라나서려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짧은 대화로 저간의 상황을 들었다. 민박을 주업으로 하다가 살림에 보탬이 될까 하여 손위동서에게 배워 해녀 일은 40대 후반쯤 시작했단다. 평생 물질을 업으로 한 사람과 부업 정도로 하는 사람과는 분위기가 다른 것일까.
민박 시설은 여느 펜션 못지않다. 외관도 내부도 고급스럽고 깔끔하다. 일반 투숙객은 후한 점수를 줄 것이다. 나의 기대치와는 다를 뿐. 약간은 투박한 세간에, 마당엔 물옷이 걸려 있고, 그의 가족들은 마당에서 일상생활을 하고, 오가는 대화 가운데 해녀에 관한 정보를 얻고, 그들이 준비하는 저녁 풍경을 엿보기도 하는 것. 내가 예상한 해녀의 집이었다. 그런데 관리가 잘 된 잔디 마당은 언제나 적막하고, 빨래도 널리지 않는다. 문을 열고 말을 청하려 해도 강아지가 튀어나올까봐 다가가지도 못하겠다.
아침 보말죽은 구수했다. 음식 솜씨가 좋은지 찬으로 나온 김치는 깊이가 있는 게 맛있었다. 첫날은 배추김치와 깍두기였다. 배추김치는 알맞게 시어 집어먹고 깍두기는 익지 않아 손을 대지 않았더니 다음 죽 때는 배추김치에다 무채무침을 곁들였다. 나의 선호를 배려한 섬세함에 감사했다.
그렇게 며칠을 겉돌다 마지막 날, 공항 길을 나섰다. 이른 아침 올레엔 이슬이 내려 촉촉했고, 반쯤 작업을 끝낸 무밭의 녹색은 선명했다. 며칠 가슴속에 담았던 아쉬움은 털어버리자, 그들과는 그 정도의 인연이 닿았던 것이다. 이럴 때 힘을 주는 우리 속담이 있다. “첫 술에 배부르랴.” 그렇다, 이제 한걸음을 떼어놓았을 뿐 그들 속으로 다가갈 일만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