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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곳으로 떠나는 처남의
호주머니에 찔러 넣은 편지

여전히 여유를 찾는 법을 배우는 중 인 매형이

by 로만덕




사랑하는 처남에게.


하하.. 여전히 처남이란 호칭과 존대를 놓지 못하는 제 자신에 대한 용서를 구하며 편지를 시작하겠습니다.. ^_^


오늘은 자그마한 노란빛을 품은 은행잎이 유난히 눈에 밟히는 날입니다. 초록에서 노랑으로 색이 변하는 소리가 있다면 그건 아마 오래된 기타의 현울림과 닮았을지도 모릅니다.


길었던 여름을 지나 살랑이는 가을은 처남에게 어떤 감정을 불러일으킬지 궁금합니다. 넓은 아량의 시선으로 보면 우린 고작 초여름을 뛰노는 푸른 나이들이겠지만, 한국, 그리고 그곳에 발 딛고 서있는 제 마음은 결실을 만들고 추수를 준비해야만 할 것 같은, 헛헛한 파란 하늘로 물드는 듯합니다.


그런 소설을 상상해 봅니다. 인도양 어느 머나먼 섬을 떠나 낯선 한국에 오게 된 이방인과, 그의 낡은 손목시계에서 흘러가고 있을 이곳보다 느린 시간에 관한 작은 이야기를요.


처남은 말했죠, 한국에는 여유가 없다고. 예.. 꽤나 그렇습니다. 언제부턴가 여유와 한국은 어울리지 않는 단어 쌍이 된 듯합니다. 우리네 선조들은 안 그러셨던 것 같은데, ^^ 우리는 언제 이렇게 변해버린 걸까요.


설령 그것이 구조적인 문제라 할지라도, 그 안에서 찌그럭뻐그럭 살아가야 할 우리네들에게 바로 옆에 놓인 여유를 찾아내는 일이란, 결국 숨 쉬는 법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릅니다. 더 많이, 더 빠르게, 더 높은 무언가를 갈구하라는 끝없는 외침 속에, 곁에서 부드러이 속삭이는 소리들은 모두 어디로 가버린 걸까요?


저는 여전히 옛날 것들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수구꼴통이 되는건가.. 싶기도 하지만, 적당히 잘 섞어보려 합니다. 숙현이, 해든이, 가족 — 누군가를 위하는 삶이 저를 채우게 되면서, 제겐 한 가지 일만 남게 되었습니다. 이 행복을 이어나가는 것과, 그걸 위한 일들로 이 행복을 몰아내지 않는 것이 그것이겠죠.


그래서 저는 처남에게 많은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경험하지 못할 다른 삶의 방식, 이야기, 영감들을 저희 가족에게 불어넣어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비록 함께한 시간은 얼마 되지 않았지만, 짧은 이야기들 속 처남의 시선과 태도는 제게 많은 영감을 주었습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있을 긴 날들 속에서 이 시간은 분명 깊은 색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그럼에도 가장 중요한 건 건강입니다. 건강 잘 챙기시고, 저는 깊게 뿌리내린 물풀처럼 이곳의 물결과 함께 잘 지내보도록 하겠습니다.


머나먼 곳, 유나와 함께 소중함으로 가을, 겨울, 봄, 그리고 여름의 시간을 채우길 바랍니다. 행복과 여유가 두 사람에게 깃들길 바라며.


24년 9월 26일

매형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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