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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Nov 06. 2024

나는 보호자다

션트 재수술

오늘 오빠는 션트 재수술을 한다.

방금 수술실에 들어갔다.


재활병원에 입원한지 일주일 만에 션트관이 노출되었는데

수술해주신 교수님의 휴직으로 6주를 기다렸다.


중간에 다른 교수님께서 꿰매어주셨지만 금방 터져버려서

결국 매일매일 드레싱하고 노출된 부위를 덮어놨다.


관이 노출된 것 때문에

병원을 4번이나 왔었다.


구급차로 왔다 갔다 하며

많이 힘들고 지쳤었다.


재활병원에서 하루하루 재활만 바라보고

살고 싶은데

중간에 이런 이벤트는 환자도 보호자도 너무 힘들게 한다.


기다리던 수술인데도

수술에 대한 위험성을 듣고 나니

마음이 복잡하다.


잘 지내고 있다가

수술하고 회복이 안 되는 케이스들을 들으니

마음이 먹먹하다.


지금 갖고 있는 일상마저 앗아갈까 두렵다.


하지만 수술을 안 하고 그냥 지냈을 때의 감염의 위험이 더 크다.

감염되면 중환자실에서 2~3주를 보호자 없이 해야 하는데 오빠가 버티기 힘들 거라고 하셨다.


결국은 덜 위험한 선택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오빠의 의견을 물었을 때에도 수술을 하는 게 낫다고 했다.


오빠는 늘 나보다 훨씬 단단하다.


부위가 노출되었는데도 수술을 못 받아

걱정하던 나에게

걱정해도 달라지는 거 없다고 털어버리라는 명언을 남긴 그...


내가 오빠를 보호해야 하는 보호자인데

아직도 오빠가 나를 보호하는 것 같다.


그래도 이런 상황에 빠르게 수술해주시는 교수님께 너무 감사하다.

오늘 수술해서 정말 다행이다.


어떻게 보면 의사 선생님께 환자를 맡기는 것인데 진심으로 대해주시다가 잘못된 것은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근데 진심으로 대하지도 않고 회피하는 의사선생님들에게는 정말 화가 난다.

그리고 보호자에게도 계속 아쉬움이 남는다.

'이거 해보면 괜찮을 것 같은데...'

못해봐서 아쉬운 게 몇 개 있다.


물론 의사가 전문가인건 알지만

환자를 24시간 케어하는 보호자가 더 정확할 때도 많다.

책임을 보호자가 진다는 생각으로 의견을 들어주시고 더 노력해주시면 좋겠다.

종양내과 쪽은 그동안 믿고 쭉 다녔는데 이젠 치료를 안 해주신다고 했을 때는 정말 배신감이 많이 들었다.

오빠를 위한 거라고 했지만 우리가 원하는 방향은 아니었다.

션트 수술도 내가 강력주장해서 한 거였는데 그때 수술을 안 했다면 오빠는 지금 내 곁에 없다.


이번에 신경외과 교수님께서는 오빠가 인지가 나쁘면 수술을 권하지 않을 텐데 인지도 좋고 보호자의 입장에서는 재수술하는게 맞기 때문에

교수님도 같은 생각이시라 재수술을 해주시기로 하셨다.

그리고 수술 후 회복을 못할 수도 있다는 사실적인 부분도 설명해주셨다.

마음은 아프지만 납득이 되는 부분들이었다.


오빠와 나의 가치관이 같은 건,

하루를 살아도 제대로 살고 싶은 것이다.


아무것도 못하면서 오래 사는 건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서 재활병원에 오게 되었고

같은 맥락으로 재수술의 위험을 지고라서도 제대로 치료하고 재활에 집중하고 싶은 것이 오빠와 나의 마음이다.


우린 그냥 매 순간 선택을 하고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면 되는 것이다.


이성적으로 판단하고 오빠가 원하는 방향을 대변해주고 오빠의 마음을 보호해주려 노력해야겠다.

내가 너무 여리고 눈물이 많아서 오빠에게 위로를 받는 일은 줄여나가고 싶다.


바라는 대로 다 되었는데 마음이 무거운 이유를 모르겠다.


오빠한테 수술 잘하고 오라니까

수술은 의사 선생님이 하는거라

잘 있다 오겠다는 오빠


오늘도 중환자실 가지 말고

바로 병동으로 같이 가자

파이팅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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