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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두부 Dec 05. 2024

오빠, 우리 잠시 푹 쉬러 가자!

호스피스에서 푹 쉬다가 나온 기적 커플 되기로 해

요즘 오빠 상태가 안좋아

건대병원에 예약하려고 전화를 했는데

진료예약을 잡아주는 분이

보호자와 상의할게 있다고 보호자만 오라고 해서

내심 기대했었다.


혹시 치료를 할 수 있는게 있는건가?

하지만 나도 딱히 치료법이 있는게 아니라는걸 알았는지 우울했다.


먼길을 갔는데 교수님께서는 5월 mri 사진을 보여주시며 연하곤란, 안면마비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라 션트 압력 문제만은 아닐 것 같아서 나만 불렀다고 했다.


그냥 그 얘기가 전부였다.

그래서 궁금했던 션트 압력에 대해서는 묻지도 못한채 힘없이 귀가했다.


가는길,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지쳐

교수님과의 대화에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묻고싶은건 묻지도 못하고

마음으로 알고 있는 내용을 한번더 들은채

엉엉 울며 다시 재활병원으로 돌아와야 했다.


예상은 했었는데

왜이리 눈물이 났는지 모르겠다.


오는 길 내내 정말 엉엉 울고 병원에 도착했다.

와서는 엄마와 인사를 하고

엄마가 싸온 저녁을 먹고

평소처럼 오빠 콧줄 피딩을 하고

엄마가 그저께 준 안정액을 먹고

푹 잠에 들었다.


안정액이 없으면 잠에 못들었을 수도 있는 기분이었다.


새벽 3시 30분,

오빠가 경련을 하는 소리에 일어났다.


지난 6개월동안 참 많은 일이 있었지만

경련은 처음이었다.


팔 다리를 쭉 피고 덜덜 떨고 있었다.


너무 놀라 응급벨을 눌렀고

산소포화도가 82가 나왔다.


내 눈으로 숫자를 보고도 믿을 수 없어

간호사선생님께

지금 산소포화도가 82인거냐고 울부짖으며 물었다.


그렇다고 했다.


그간 간접적으로 다양한 경험을 하며

산소포화도는 정상인이 95~100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한번의 경험이 있다.

6월에 폐렴과 산소포화도 70대로

병원에서는 포기를 권했었다.

하지만 안녕을 얘기한적 없어

정말 단호하게 포기를 거절했다.


당시 얇은 산소줄을 차고도 포화도가 안올라

처치실에 가서 두꺼운 산소를 차고 정말 위기를 겨우 겨우 넘겼었다.


알아서 더 무서웠다.


요즘은 특히 체력이 좋지 않기 때문에

울부짖으며 오빠를 깨웠다.


가래때문인 것 같았고

다행히 폐를 두들기며

간호사선생님이 석션을 해주시니

포화도가 조금씩 올라왔다.


한참을 두들기고 석션을 하고야

포화도도 경련도 정상이 되었다.


95가 되자 정상 범위라고 다들 돌아가셨고

나는 평소에 99였던 오빠가

95인 것이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가 더 해줄건 없었다.

오빠와 눈을 맞추고 안심시키려했으나

오빠는 인지저하가 생겨버렸다.

섬망도 시작되었다.


내가 발견하기 전

얼마나 긴 시간 혼자 아팠는지 알수없어서

더 답답하고 예상할 수가 없다.


결국 오빠는 밤새 한숨도 자지 않았고

중얼거렸고

계속 옷을 벗었다.


나중에 보니 옷 태그쪽을 계속 만지길래

걸리적거리는 것 같아

태그가 없는 반팔티를 입혀주었는데

그 반팔티마저 벗으려 해서

결국 맨몸에 담요를 덮어주었다.


나도 기절한건지

잠깐 잠에 든건지

병원에 또다시 아침이 왔다.


아침에 석션을 또 부탁드리고

대변냄새가 나서 기저귀를 가는데

오빠가 소변을 싸서

침대 시트가 다 젖어버렸다.


그때 나도 모르게

감정이 폭팔해버렸다.


오빠 나 너무 힘들어

오빠...

사람들도 신경안쓰고 엉엉 울며

기저귀와 시트를 갈았다.


그리고 호출했던 엄마가 병원에 왔다.

오빠가 아프고

가족들 앞에서는 안울려고 노력 많이 했는데

오늘은 펑펑 울었다.


감정이 주체가 되질 않았다.

오빠와, 오빠를 사랑하는 나를 위해

희생한 6개월이 스쳐지나가며

모든게 원점으로,

어쩌면 더 안좋아졌다는 생각이 마음을 괴롭혔다.


그래도 엄마가 와서 이것 저것 도와줘서 다행이었다.

오빠가 콧줄을 잡아 빼서 콧줄을 끼러

휠체어를 타야했을때

엄마와 둘이 오빠를 들어올려 태웠다.


오빠에게 콧줄 피딩을 할때도 엄마가 도와주었고

오빠가 점을 뜯어 피가 철철 날때는 엄마가 간호사를 불러주었다.


지친 마음에 혼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 같다.


조금 진정되었을 무렵,

원장선생님이 면담을 요청했고 5월 mri사진을 열어 설명을 해주셨다.


어제 건대에서 보고 들은 설명과 같았는데

오늘은 또 왜 그렇게 슬펐는지 모르겠다.


가족들이 준비할 시간인 것 같다는 말을 들었을 때에도

평소라면 5월 사진을 보고 말씀하시는거고 12월인 지금까지도 잘 지내고 있으니 큰 타격이 없었을텐데

어제 오늘 지친 몸과

오늘 새벽 사이에 안좋아진 오빠의 상태에

나도 어쩌면 이번엔 정말 오빠를 보내줘야되는건지 마음이 많이 아팠다.


그리곤 재활병원인 이곳에서는 응급상황에 대처가 어려울 수 있으니 호스피스 병원을 조심히 말씀하셨다.


6월에 그렇게도 거절했던 호스피스 병원...

그 이후에도 오빠에게는 큰 통증이 없어 고려하지 않던 호스피스 병원...

어제 경련하는 모습을 생각하니 얼마나 고통스러울지 생각하다보니 병원후기를 찾게 되었고 그중 2개월 정도를 잘 보낸 분들은 퇴원을 해서 집으로 가는 경우도 있다는 글을 봤다.


엄마도 오늘 내가 면담이 끝난 이후

내가 호스피스는 싫다고

엉엉 울때

호스피스라고 다 이별하는건 아니라며

재민이는 또 잘 이겨낼거라고 했다.


나도 오늘 검색하다보니 정말 그런 후기도 있고

보호자도 케어를 해준다고 하니

요즘 하루하루 무너질 것 같은 나도 지키고

오빠도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한 병원에 대기를 넣었다.


더 좋은 곳, 제일 좋은 곳을 가고 싶은데

찾을 마음의 여유가 없어

추천해주신 곳 중 한 곳에 대기를 넣었다.


호스피스라는 단어를 듣는 것도

끔찍했던 지난 시간들이 있었다.


하지만 글을 보다보니 호스피스를 늦게가서 후회하는 글도 있었고 정말 잘 지내주어 입원기한이 지나면 어쩌나 고민하는 글들도 보았고 그 안에서의 생활이 적어도 지친 우리를 쉬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물론 아직 가보지는 못했지만

죽음과 가까워졌다는 공포가 들지않는 곳이면 더없이 좋겠다.

그냥 우리를 지친 현재에서 좀 쉬게 해주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오빠가 한번 더 기운을 내주면 좋겠다. 기운낼 힘이 없으면 아프지라도 말았으면 좋겠다.


오빠를 지키려다보면

점점 이악물고 있는 나 자신을 마주친다.

이를 악물고라서도 닥치는 위기를 그동안 정면으로 마주해왔다.

더이상 강해지고 싶지 않고

오빠가 보살피던 여리고 여리던 나로 돌아가고 싶다...


하루가 정말 쏜살같이 지나갔다.


밤이 되어 엄마를 집으로 보내기 전

오빠를 맡기고 샤워를 하는데

계속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혹시 정말 이 모든 증상이

암이 아니라

수두증의 증상이면 어떡하지?


이에 대한 의문을 갖고 호스피스에 가고 싶진 않았다.


그래서 급히 샤워를 마치고 내일 예약이 가능한지 봤다.

다행히 자리가 있었고 예약을 한 뒤에 구급차 예약도 마쳤다.

내일 그래도 확인은 하고 싶다.

수두증 때문인지

그게 아닌지


맞더라도 아니더라도 확인을 하고

오빠와 새롭게 다시 시작해보고 싶다.


그리고 오빠에게,

나 우리를 위해 힘내고 있어

내가 어떻게든 다시 힘내볼게

그러니 오빠도 우리를 위해 힘내줘


요즘 내가 나도 너무 아파서 투정을 많이 부린 것 같아

이렇게 아픈 오빠한테 내 작은 아픔 투정부려 미안해

그냥 오빠한테 다 말했던 나라서 오빠 아픈데도 내가 나 아픈거 힘든거 얘기했어

늘 좋은 말만 해주고 싶었는데 힘든 표정 지어서 미안해

미안하고 고맙고 사랑해

그니까 꼭 다시 오빠로 돌아와줘...!!!

오빠 옆에서 계속 기다릴게

파이팅!!!


그리고 너무 속상해서 털어버리고 싶고

다짐하기 위해 글을 쓰다가

혼자 오열하고 있는 내 자신에게...

지금 잘하고 있으니까 자책하지 않기로 약속하자

후회없이 잘해주고 사랑해주자

파이팅!!!

지금도 울면서 콧줄 피딩하는 나... 대단해 멋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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