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자랑스런 나의 작품
따뜻한 겨울나기 사업, 데이케어 센터, 병원 안심동행, 안심마을 보안관
가끔 가슴이 뿌듯해질 때가 있다. 누가 나 몰래 나의 어떤 점을 칭찬했다 든지, 내가 한 어떤 일에 대해 “그 일은 정말 잘 한거야” 라고 말할 때, 내가 한 일로 다른 사람들이 즐거워할 때 등.
나는 서문에서 ‘나는 영망진창 실패한 공무원이다’라고 말했다. 전체적으로는 그렇다는 얘기다. 하지만 크게 후회하지는 않는다. 내 잘못이고, 어쩌면 내가 타고난 운명일 수도 있으니....
하지만, 난 공무원으로서 실패만 한 것은 아니고, 중간중간 성공한 작품도 있다. 내가 한 일 몇 가지는 나 스스로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는 얘기다. 독자분들이 동의할지는 미지수지만...
그 몇 가지를 소개해 본다.
첫 발령지 강북구청에서 사회복지과장으로 일할 때(1998년)이다. 강북구는 서울시 25개구에서 재정자립도가 최하위에 속하고, 상대적으로 어려운 주민들이 많이 모여 산다. 과장 보직을 받고 첫 겨울이 다가올 때, 어려운 분들이 추운 겨울을 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돕고 싶었다. 그래서 「따뜻한 겨울나기 캠페인」을 시작하기로 했다.
지방자치단체는 기부금을 직접 받지 못하게 법으로 규정되어 있다. 특별한 경우 심사를 통해서만 받을 수 있다. 뭔가를 도우려면 현물이나 현찰이 필요한 데, 강북구의 재정여건으로는 이를 마련하기가 어려웠다. 나는 한가지 꾀를 내었다. 독지가들이 기부할 수 있도록 하고, 그 기부물품을 직접 전달해주도록 구청에서 연결해 주는 역할을 하면 되지 않겠나 생각했다. 그리고 구청장님 명의로 도움을 청하는 서신을 소위 유지분들과 종교단체 등에 보냈다.
각 동사무소(현재의 주민자치센터)별로 「사랑의 쌀 모으기 운동」도 시작했다. 3㎏짜리 쌀을 모으는 봉투를 제작해서 나눠주고, 모은 쌀은 직원들이 별도로 제작한 10㎏짜리 봉투에 담아서 나눠드렸다. 구청 광장에 특별제작해서 설치한 아주 큰 뒤주가 모인 쌀을 견디지 못하고 터져버리는 웃지 못할 해프닝도 있었다.
관내 유치원, 어린이집 아이들을 상대로 예쁜 저금통을 제작해서 나눠주고, 어린이들이 직접 모은 돼지저금통을 구청 광장에 설치한 대형 저금통에 넣도록 하는 「사랑의 돼지 저금통 모으기」 행사도 진행했다. 내가 직접 산타복장을 하고 저금통을 넣은 아이들에게 사탕을 나눠줬고 아이들과 기념사진도 찍었다.
이렇게 모인 쌀과 금품은 각 동사무소 및 구청에서 미리 선정된 어려운 분들에게 가급적 후원자가 직접 오셔서 전해드렸다. 주시는 분도 받는 분들도 모두가 훈훈하였다.
이 캠페인이 서울시에도 전달되어, 시 차원에서 25개 자치구로 확산하여, 전 자치구에서 각자 지역 특색에 맞게 진행되었다. 다음 해에 강북구가 「따뜻한 겨울나기 캠페인」에서 서울시로부터 우수상을 받기도 하였다. 그 후로 오랫동안 이 「따겨」 행사가 진행되었는데,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은 어떤지 확인해 보지 못했다. 더 좋은 행사로 발전해 있으리라 믿는다.
다음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 일이다. 2002년에 시청으로 발령이 나서 몇 곳에서 일하다가 노인복지과 노인행정팀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2009년)다. 당시 오세훈 시장님 시절에 「여성행복 프로젝트」를 필두로 장애인, 노인으로 프로젝트의 대상을 확대하고 있었다. 내가 막 노인행정팀장으로 발령이 났을 때 시장님으로부터 “노인행복 프로젝트를 만들어서 발표하자” 라는 지시가 떨어졌다.
나는 대형 프로젝트를 앞두고, 노인분들과 관련된 현장을 두루두루 살펴봤다. 기존의 노인에 대한 복지 서비스 외에, 노인의 건강, 일상생활, 문화, 성(Sex) 등 노인분들과 관련된 시설과 장소를 가본 것이다. 이때 가본 곳 중에, 지금도 종로3가에 있는 ‘먹고 갈래 지고 갈래’라는 이름도 특이한 호프집이 기억에 남는다. 엄청 큰 규모의 노인 전용이었다. 노인분들끼리 모여서 낮에는 밥도 드시고, 오후부터는 술도 드시고, 음악공연도 보시고, 소위 즉석 미팅도 하시고... 젊은이들의 클럽과 같다. ‘노인분들이 모두 복지관이나 탑골공원에서 노인으로 사시는 것은 아니구나’를 처음 깨달았다. 젊은 언니·오빠들이다.
이렇게 현장을 보고 난 후, 현장과 학계의 전문가분들과 우리 직원들이 모여 수차례에 걸쳐 열띤 토론을 벌였다. 우리가 새롭게 시행할 사업 아이템을 찾고 또 찾았다. 그렇게 해서 발표한 것이 「9988 어르신 프로젝트」였고, 그 프로젝트의 핵심이 「데이케어센터(Day Care Center)」다. 당시 치매노인의 문제가 심각해지고 있었던 데 반해, 치매노인을 돌보는 시설은 고작 하루에 3~4시간씩만 봐주는 주간보호센터가 전부였다. 그래서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가정은 시간적으로 얽매여 매우 힘들었다.
그래서 서울시가 최초로 치매노인을 하루 종일 전담(그래서 Day Care란 이름이 나옴)해서 돌봐주는 시설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마치 종일반 어린이집처럼.... 치매노인을 아침에 모셔가고 저녁에 다시 데려다 주니, 부양가족들은 안심하고 자기 일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치매노인을 부양하는 가족들의 현실적 어려움을 해소해 준 것이다. 당시에는 2010년까지 100개소를 만든다고 발표하였는데, 지금은 서울시 전역에 데이케어센터가 있어 치매노인을 돌보고 있다. 전국 방방곡곡에도 데이케어센터가 없는 곳이 없다.
물론 나 혼자서 만든 것은 아니다. 여럿이서 수많은 생각을 모으고 모은 끝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 정도 자부심은 있다. 당시 현실적으로 꼭 필요한 뭔가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나의 생각과 집념이 한몫한 것이라고... 지금도 돌아다니다가 데이케어센터 간판이나 차량을 보면 남몰래 미소 짓는다. ‘저거 내가 한 거다!’. 당시에 「노인 성 연구소」도 만들었었는데, 지금은 어찌 운영하는지 모르겠다. 이것도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했다.
서울시가 대대적으로 시행하고 있고, 직원들에게 멋진 추억을 선물함으로써 엄청난 인기가 있는 「국내 배낭여행」 제도도 내가 그 후 인력개발과장으로 있을 때 처음 만들었다. 이 내용은 ‘춤추는 서울시장’이라는 꼭지에서 보다 자세하게 이야기하겠다.
마지막으로 나를 가장 가슴 뛰게 만드는 작품이 있다. 2021년 오세훈 시장님께서 보궐선거를 통해서 서울시
장으로 부임하시고 바로 나를 1인가구 특별대책 추진단장으로 임명하셨다. 이때 만든 걸작(?)이다. 「병원 안심 동행 서비스」와 「안심 마을 보안관」 제도가 바로 그것이다.
먼저 「병원 안심 동행 서비스」는 1인가구 특히 노인분들이나 아프신 분들이 병원에 혼자 가시기 어려운 분들이 주 대상이다. 병원에 갈 때마다 자식들이 휴가를 내거나 아니면 누군가가 꼭 동행해줘야 한다. 나도 장인어른이 주기적으로 투석을 하다가 돌아가셔서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당시 민간에서 이를 알고 비싼 가격에 병원 동행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나는 두 달여의 짧은 기간이었지만, 이 서비스가 꼭 필요할 거라고 생각하고 민간 업체들과 회의를 거듭한 끝에 우리시가 직접 이 서비스를 시행하는 것으로 계획했다.
이 사업의 시작을 위해 추가경정예산까지 확보했는데, 불의의 사고로 발령이 나는 바람에 내 손으로 직접 시작하지는 못했다. 못내 아쉽다. 이 사업은 현재 1인가구 본인이나 그 가족분들에게 엄청난 호응을 받아 확대일로에 있다. 무척 기쁘다.
다음은 서울시가 2023년 1월에 발표한 언론 보도자료 중 일부이다.
서울시 '병원 안심동행' 시행 2년 만에 누적 이용 3만 건 육박
- ‘1인가구 의료고충 해소’ 오세훈 시장 공약으로 '21.11. 첫발, 작년 모든 서울시민 확대
- 병원으로 출발할 때부터 진료 후 귀가까지 전 과정 매니저가 보호자처럼 동행
- 매년 만족도 90% 이상, 특히 ‘어려움 해결에 도움’ 만족도 95.1%로 큰 호응
- 시간당 5천 원, 중위소득 100% 이하 연 48회까지 무료…☎1533-1179로 예약
동시에 발표한 것이 「안심 마을 보안관」 제도이다. 휘황찬란하게 빛나는 서울시내 모습과는 달리, 어느 주택가 지역은 여전히 좁고 기다란 골목으로 이어져 후미지고 어둡다. 건대 맞은편 화양동 일대가 대표적이다. 이런 곳이 상대적으로 집값이 저렴하여 1인가구 특히 여성들이 많이 거주한다. 범죄율이 타 지역에 비해 매우 높다.
나는 서울경찰청 담당 경찰관분들과 우리 직원들과 함께 이런 지역을 몇 군데 돌아다녔다. 내 딸이 이런 곳에서 산다면 이라고 생각해보라. 부모님이 하루라도 편히 있을 수 있겠는가? 시급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지역들을 안심하고 다닐 수 있는 안전지대로 만들어줘야겠다. 방법은?
고민 끝에 초·중·고 학교에 있는 학교보안관을 떠올렸다. 그래 이 지역에 보안관을 상주시키자. 늦은 밤 시간에 정기적으로 순찰을 돌게 하자. 그래서 태어난 게 「안심 마을 보안관」 이다.
「안심 마을 보안관」은 전직 군인·경찰, 현직 자율방범대 등으로 구성하여, 심야시간대(22시~다음날 02시 30분)에 2인 1조로 2개조가 동시에 각각 다른 방향에서 도보로 계속 방범순찰을 돈다. 나쁜 맘을 먹은 사람이 발붙일 틈이 없도록 한 것이다. 당시 서울경찰청과 협조하여 가장 취약한 지역 16곳부터 시작하였다. 당연히 범죄율이 눈에 띄게 줄었다.
해당 지역 여성 주민의 실제 반응이다.
“노란색 옷을 입고 순찰해 주시는 ‘안심마을보안관’과 마주치면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야근하고 늦은 시각 퇴근하는 날에도 멀리서도 눈에 띄는 노란 옷을 보면 안심이 됩니다. 우리 동네에 이런 보안관님이 계셔서 정말 좋아요!”
다음은 서울시가 2024년 1월4일 발표한 보도자료 일부이다.
서울시, 안심마을보안관 25개 전 자치구로 확대
- 사업 전후 주민 ▴거주지 범죄안전성 인식 25.5%p ▴치안 만족도 22.3%p 상승
- 시민 일상 안전 강화 위해 작년 16개소→ 올해 전 자치구로 확대… 3월부터 활동
이제 내 딸이라도 그 지역에서 안심하고 학교나 직장을 다닐 수 있을 것이다.(딸 셋 모두 집에서 나갈 생각도 안 하지만...)
지금까지 나의 은근한 자랑질이다. 이 정도면 쫌 한 거 아닌가? ㅎㅎ .... 너무 고깝게 생각하시지 말기를....
내가 이렇게 자랑질을 하는 건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내가 실패한 공무원만은 아니라는 것.
둘째, 후배 공무원분들도 충분히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공무원으로서 자부심을 가지고 내가 하는 일을 중심으로 조그만 것이라도 그냥 지나치지 말고 좀 더 편리하고 좋게 바꿀 수 있는 것이 뭐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모든 일을 그렇게 할 수는 없지만, 그런 생각으로 공무원 생활을 하다 보면 언젠가 걸리는 게 있을 것이다.
꼭 직급이 높은 사람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요즘은 담당자 시대다. 누구도 담당자가 한다면 못 말린다. 담당자가 왕인 것이다.
먹고 살기 위해서만 공무원을 하는 것보다, ‘저거 내가 한 일이야’ 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어깨 펴고 다니면 얼마나 좋겠는가?
현실 세계에서 공무원은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잠재력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