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단 결혼이 우선이다
내 인생 모토 중 하나가 ‘나 스스로 시험에 들게 하지 마라’인데,
내가 자처해서 시험에 들었나 싶다. 너무 어렵다. ‘내 시작은 미약하나 끝은 창대하리라’가 또 다른 모토인데, 오히려 ‘용두사미’가 되는 건 아닌가 심히 염려된다.
일단 쉬운 것부터 하자. 나는 평소 백지에 그림을 그리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누가 한 일에 대해서 쉽사리 비판하지 않는다. 그 사람 나름대로 열심히 했을 거로 인정한다. 허나 대충 한 걸로 보이는 거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럼 과연 지금까지 정부에서 한 저출생 대책은 과연 인정될 만한 것인가?
이 글의 맨 처음 꼭지 1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정부는 2015년부터 18년간 대략 380조원이라는 천문학적인 예산을 저출생 대책에 투입했다. 서울시의 2025년도 예산이 약 48조 정도이니, 그간 얼마나 많은 금액이 투입되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여전히 세계 최저 수준의 출산율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점점 더 나빠지는 추세이기도 하다.
지금까지의 저출생 대책은 막대한 예산투입과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 마디로 실패라고 볼 수 있다. 왜 그럴까? 그건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것에서 기인할 것이다. 정곡을 찌르지 못하고, 통도 크지 못해서 찔끔찔끔 지원하고, 정책의 연계가 부족하여 단발적이거나 지엽적인 지원 위주라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하나하나 풀어가 보자.
모름지기 새로운 정책은 발상의 전환에서 나온다. 그리고 엉뚱한 아이디어를 포용할 수 있는 ‘브레인스토밍’이 되어야 한다. 기존의 수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생각을 했겠지만, 나는 저출생 문제의 심각성과 시급성에 비추어 지금까지와는 차원이 다른 종합적, 체계적, 단계적 맞춤형 정책, 그리고 통이 큰 정책이 「하나의 그림」으로 나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럼 단계별 맞춤형 대책이 뭐가 있을 수 있는지 알아보자. 크게 투 트랙의 정책이 필요하다고 본다. 먼저 결혼을 막는 장애요인들을 풀어주고, 그다음에 아이 낳고 기르는 것이 보람되고 행복하다고 느낄 정도로 양육에 대한 부담을 덜어주고, 나아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부모가 자긍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가 인정해 주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양쪽 모두 자잘한 지원이 아닌 「무릎을 칠 만한 확실한 한방」이 있어야 할 것이다.
먼저 결혼단계를 보자. 지금보다 젊은이들이 결혼을 더 많은 비율로 하도록 유도하는 정책은 없을까?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어렵지만, 가치관이나 행복관의 변화로 스스로 결혼을 하지 않겠다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정책이든 효과가 없을 수 있다. 따라서 이쪽 사람들은 일단 대상에서 제외하고, 경제적 어려움 등으로 결혼을 하지 못하거나 미루는 사람들을 위한 정책에 우선 집중해야 할 것이다.
그럼 젊은이들이 왜 결혼 생각을 안 하거나 못 할까? 가장 큰 현실적인 문제는 당장 신혼집 구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집값이 너무 비싸서 부모님의 도움 없이는 전세도 들어가기 어렵다. 금수저들끼리 결혼하는 것이 아니면, 이 땅에서 평생을 일해도 자기 집을 갖기 어려운 게 현실이다. 정부의 주거 사다리가 꼭 필요한 이유다.
대대적으로 신혼부부에게 적정한 가격의 집을 마련해 줘야 한다. 신혼부부가 원하면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상대적으로 저렴한임대주택을 제공해야 한다. 자기 집을 원하는 신혼부부 또는 아이를 가진 부부에게는 특공(특별공급)을 통해 가격을 할인해주거나 특례 대출(예를 들어 이자율 제로, 30년 장기 분할 상환 등 조건)로 입주가 수월하도록 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하는 김에 집의 규모도 편하게 쉴 수 있는 적정한 공간 정도는 되어야 한다.
다행히 2023년에 전남 화순군에서 「월세 만원 아파트」가 청년 대상(신혼부부 대상은 아니다)으로 시작되었다. 가장 최근인 2024년 7월에 인천에서는 「천원 주택」이라는 이름으로, 신혼부부에게 하루 임대료 천원(월3만원 수준)으로 살 수 있는 주거지원 정책을 펴고 있다.
서울시도 곧바로 「신혼부부 장기전세 반값 주택」 정책을 최근 발표했다. 아이를 낳아 키우는 동안은 집 걱정 없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주택을 공급한다는 취지이다. 이것 역시 획기적이다. 실제 최초 시행한 둔촌 주공 반값 전세 300가구에 신혼부부 1만 8,000명이 몰려 경쟁률이 60대 1을 기록했다. 그만큼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서울시는 앞으로 이러한 신혼부부 반값주택을 확대해서, 2026년부터는 한해 4,000호를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 물량이 그리 적지는 않다. 그렇지만, 한 해 서울시에서 탄생하는 신혼부부가 대략 3만6천쌍(2023년 기준)임을 감안하면, 약 10% 정도에게 혜택이 주어지는 것이다.
시작이 반이기는 하지만, 인천의 「천원주택」이든 서울의 「반값주택」이든 그 물량을 대폭 늘려서 상징적이고 소수만 혜택을 누리는 정책이 아니라 원하면 누구든지 가능한 수준으로 공급을 늘려야 할 것이다.
그런데 반값주택이라도 가격을 보면 놀랍다. 한마디로 입이 쩍 벌어진다. 반값인데도 대략 15평형 보증금이 3억 5천만원, 18평형이 4억 2천만원 수준이다. 물론 강남지역이었다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정도면 금수저들에만 가능한 것 아닌가? 미안하지만, 흙수저들에게는 딴 세상 이야기다. 그만큼 서울의 집값이 쎄다는 것과, 이 정책을 확대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겠다. 물론 그 뒤로 서울시는 다른 지역에서도 반값주택을 시행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어찌 되었건 신혼부부라면 누구나 골고루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양과 질 면에서 접근 가능한 그런 정책이 함께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특히 서울은 이미 과밀화되어 있고, 신규로 택지로 조성할 땅도 찾기가 어렵기 때문에, 서울 안에서 해결한다는 것은 정말 어려울 것이다. 따라서 중앙정부 및 경기도와의 협력을 통해 서울 인근지역의 땅을 활용하여 장기전세 임대주택 단지를 건설하는 방법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본다. 의지가 강하다면 왜 안 되겠는가?
지방자치단체 수준에서 하고 있다는 것이 아쉽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정책들이 생겨나기 시작한다는 것은 새로운 희망이다. 중앙정부가 이런 생각을 이어받아서 지자체와 협력하여 전국적인 단위로 정책을 시행하여야 할 것이다. 같은 대한민국 사람인데도 사는 지역에 따라 지원받는 게 너무 차이가 나는 것은 옳지 않다. 진짜 그렇게 된다면, 중앙정부가 그만큼 일을 제대로 안 하고 있다는 것이기도 할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너무 저렴한 가격에 지원하는 것은 전체적인 형평성에도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인천의 천원주책처럼 월 3만원은 정책 초기에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장기적이고 대규모로 시행할 때는 너무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것은 지속가능하지 않을 뿐 아니라, 주거비 한 분야에 올인할 수 없는 재정적 여건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이왕 언급하는 김에 한 가지 더 덧붙여 제안하고 싶다. 현재의 청년주택이나 신혼부부용 주택이 일단은 주택을 제공한다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이지만, 실제로 그곳에서 사는 사람들의 만족도는 그리 높지 않다. 마치 성냥갑처럼 일률적으로 만들어진 집 구조에, 그들끼리만 살게 되어 사회와는 동떨어진 환경이 내부적으로 큰 불만족 요인이다. 이름하여 「소셜 믹싱 하우스」라는 개념으로 여러 세대(1인 가구, 다인 가구, 청년, 신혼부부, 중·장년)가 함께 어울려 살 수 있고, 나아가 주거지 인근에 작은 공원이 함께 있어 성냥갑 빌딩 속에서 산다는 느낌이 들지 않도록 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일까?
내가 한 말을 누가 들었나? 바로 얼마전 서울시가 바로 이런 주택을 짓겠다고 선언했다. 이름하여 「청년, 신혼부부. 어르신 공유주택」이다. 쉽지는 않겠지만 얼마나 반가운 일인가? 여러 세대가 다 함께 어울려 서로 인사하고 나누고 하는 그런 정겨운 모습을 미리 꿈꾸어 본다.
다음으로 결혼식 비용도 현실적인 문제다. 지금도 작은 결혼식 또는 야외 결혼식 이라는 이름으로 정부가 공원이나 공공시설을 저렴하게 제공하고는 있지만, 수요에는 턱없이 부족한 게 현실이다. 보다 적극적으로 한 푼이라도 아껴야 하는 젊은이들이 부담되지 않는 비용으로 결혼식을 치를 수 있는 공간 마련이 함께 진행되어야 할 것이다.
문화적으로도 「부부학교」 같은 것을 만들어서 예비부부 내지는 초보부부가 같이 수업을 들으면서 미래를 설계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고 본다. 부부가 되어 행복한 가정을 꾸리는 법, 사소한 갈등을 극복하는 법, 가사일과 육아를 적정하게 분담하는 법, 가정의 재정을 안정적으로 가져가는 법 등을 안내해서 두려움을 해소해 주는 것도 타인과 같이 살아 본 경험이 없어 주저하는 젊은이들에게는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마지막으로 국제결혼 문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 과거와는 달리 우리나라 사람들과 다른 나라 사람들의 국제결혼이 굉장히 많다. 우리나라에 결혼으로 이민 와서 사는 외국인이 많이 늘었다.
통계청의 자료에 의하면 2022년 전체 혼인건수는 191,690건이고, 이중 다문화 혼인건수는 17,428건으로 전체의 9.1%에 달한다. 같은 해 다문화 출생아 수도 12,526명이나 된다. 또한 2022년 현재 결혼 이민자는 총 175,365명이며, 결혼 이민으로 인한 국내출생 자녀수는 무려 278,532명이나 된다.
행정안전부의 자료에 따르면, 외국인 주민 1만명 이상 또는 인구대비 5% 이상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 집중 거주지역’은 전국에 총 86곳이며, 경기 23곳, 서울 17곳, 경남 8곳, 충남·경북이 각 7곳 등이다. 우리가 잘 모르는 사이에 엄청나게 많은 외국인들이 결혼 이민 또는 귀화를 통해서 우리 한국 땅에서 토종민족이랑 같이 살고 있다. 우리나라도 이제 더이상 순수 한민족의 나라가 아니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런데도 우리나라는 아직 특히 동남아시아 등의 개발도상국 국민들에게는 결혼이민 오는 게 전 세계에서 가장 까다롭다고 한다. 대한민국은 이민 정책에 매우 보수적인 나라 중 하나로, 과거 결혼이민 비자가 부정적으로 사용된 전례들로 인해 아직도 다른 체류 자격 대비 수많은 관련 서류를 요구하고 있다.
보통 우리나라 남성들과 제3세계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결혼한다. 일반적으로 여성의 나라에서 먼저 결혼 또는 결혼식을 올리고, 그 신부가 되는 여성을 한국에 결혼이민으로 초청한다. 그런데 문제는 결혼이민을 우리 정부가 심사하는 데 매우 까다롭다는 얘기다. 신랑의 재산과 주거상태를 보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신부의 거의 모든 상황(소득, 재산, 직업, 건강, 범죄)을 체크 한다. 거기에 신부가 한국어능력시험(TOPIK)을 통과해야 한다. 초급수준이라고는 하지만, 실제 외국인에게는 상당한 기간 동안 공부를 열심히 해야 통과할 수 있는 수준이어서, 시험에 통과하지 못하면 한국 남성과 결혼을 했어도 정작 한국에 들어와서 같이 살 수 없는 경우가 발생한다. 시험이 수시로 있는 것도 아니다.
자국민이 어느 외국인 여성과 결혼했는데, 이렇게까지 까다롭게 입국자격을 심사하는 것이 과연 지금의 현실에 부합할까? 정부는 결혼을 수단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이민 및 불법 취업을 막기 위해서라고 할 것이다. 내 생각이지만, 그건 그다음 문제가 아닌가? 미래에 일어날 수 있는 일을 대비해서 처음부터 막는다는 것은 행정의 상식에 부합되지 일일까? 다음 일은 다른 적절한 규제나 제한을 통해서 해결해야 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결혼이민을 지금보다 훨씬 간소하게 하도록 합리적으로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대상 국가별로 자격에 현격한 차이가 있다는 것도 사실 심각한 차별이라고 할 수 있다. 전 세계 어느 국가가 우리처럼 하고 있는지 조사해보고 빠른 시일 내에 개선하면 좋겠다.
잠시 옆으로 비껴나가는 얘기지만, 나는 이 문제와 관련해서 파생되는 중요한 문제가 하나 더 있다고 생각한다. 해서 결혼과는 직접 관련 없지만 이 기회를 빌어 이야기하고자 한다. 내가 2012년에 서울시에서 외국인생활지원과장을 맡아서 한 적이 있었고, 그때부터 느껴온 문제의식이다.
위에서 언급한 바처럼, 우리 땅에는 이미 다문화 특히 개발도상국 여성들의 결혼이민으로 출생한 수많은 아이들이 자라고 있고, 앞으로도 나서 자랄 것이다. 그런데 이 아이들이 한국 땅에서 제대로 「한국의 아이들」로 자라는 게 쉽지 않고, 현실적으로 학생시절부터 적응하지 못해 「학교밖 아이」가 되는 경우가 매우 많다. 이들도 분명히 그리고 엄연히 한국의 아이들이고, 한국 국적을 가지고 이 땅에서 함께 숨 쉬고 살아갈 아이들이다.
그런데 이들은 대부분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가정형편에 놓여 있다. 그리고 태아 때부터 어린 시절까지 엄마로부터 우리말을 배우는데, 엄마가 한국어에 서투르니 자연히 그 아이들도 우리말이 서투를 수밖에 없다. 더구나, 피부색이 다르고, 한국어가 서툰 아이들을 ‘통합교육’이라는 이념으로 다른 아이들과 같이 학교를 다니게 하니, 소위 「왕따」와 「학력 저하」로 아이들이 견디기 힘든 상황을 맞게 된다. 물론 그렇지 않고 훌륭하게 성장하고 있는 아이들도 많다. 하지만 비율적으로 다른 아이들에 비해 교육을 제대로 못 받는 경우가 훨씬 많은 것이다.
이들이 학교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면 결국 어떻게 생활하겠는가? 자칫 뒷골목 문제의 청년들 같은 사회적 문제로 이어질 수도 있다. 다문화 아이들이 태어나기 시작한 시기를 감안하면,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런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질 수 있는 시기가 되고 있다.
따라서 다문화 관련 정책 결정자는 이 문제를 심각하게 인식해야 한다고 본다. 일단 실태가 어떤지 면밀히 조사하고, 그 아이들에게 그럼 최선의 양육과 교육방식은 무엇인지 검토하고 실행해야 할 것이다.
나의 짧은 소견으로는, 영어권 국제학교와 같은 「다문화 국제학교」를 만들어줘야 한다. 이 아이들이 거기서 학습함으로써, 어릴 때부터 엄마 나라말과 한국어를 동시에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래야 엄마와 자유롭게 의사소통하고 정서적 교감을 나눔으로써, 인격을 수양하고 정서적으로 안정된 전인적 인간으로 성장하게 될 것이다. 나아가 이런 친구들이 성장하여 엄마 나라와 한국을 잇는 가교역할을 함으로써, 한국의 경제·문화 발전에도 기여하는 일꾼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옆길로 많이 샜다. 이제 나의 결혼과 관련한 소소한 생각들을 결론지을 차례다. 결혼 문제는 시대가 처한 현실과,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과, 개개인의 가치관의 변화까지, 매우 복합적인 요인의 결과물로 결코 쉽지 않은 문제다.
누구에게든 강제하거나 심지어 권장할 수도 없다. 자식에게 마저도. 여러 가지 이유로 처음부터 결혼을 안 하겠다 한다면 어떻게 할 수가 없다. 하지만 결혼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방해물을 제거해줘야 할 것이다. 결혼이란 걸 해보게는 해줘야 할 것 아닌가? 사람인데...
결혼은 소수의 사유물이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