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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에반 핸슨>

조금 아쉬운, 청소년기의 슬픔들.

by 후기록

청소년기의 우울함에 대해서 이야기한다면, 개인적으론 ‘월플라워’를 더 추천한다.

우울함에 내성이 좀 더 강하거나, 아니면 더 깊은 우울함을 느끼고 싶다면 ‘디태치먼트’를 봤으면 좋겠다. 둘 다 좋은 작품이고. 감상자들이 스스로에게 많은 위로가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디어 에반 핸슨을 처음 경험했던 건, 듀얼 캐스팅이라는 프로그램에서, 웨이빙 쓰루 어 윈도의 번안 넘버의 나현우 님의 공연 장면이었다. 불안함과 자기 비하, 좌절의 늪에서 허우적거려 봤던 사람이라면 꼭 봤으면 하는 공연이라고 생각한다. 단절된 인간관계, 가사 그대로 달리기 전부터 멈추는 법을 배워야 했던 사람들을 대변하는 그런 가사.


왜 영화 이야기는 안 하고 다른 소리만 하고 있냐면, 영화는 사실 그렇게 좋지 못했다는 게 개인적인 평가다. 오히려 원작 뮤지컬의 연출이 궁금해지는 영화였달까. 아마 영화적 각색의 부분이 이런 불편함을 가중시켰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할리우드 식의 연출의 폐해가 느껴졌다고 할까. 이미 검증된 엄청나게 의미 깊고 울림이 큰 넘버들에 겹쳐지는 게으른 연출들. 몽타주로 점철된 클로즈업들에 관객의 입장에선 생각의 여지가 없고, 음악으로 인해 그저 감정만 강하게 느끼게 된다는 것. 그래 솔직히 말해서 술 먹고 봤으면 재밌게 봤겠지.


결국 어디서 문제가 생겼는가?를 생각했을 때, 감독과 연출의 불협화음이 서로의 단점을 강하게 키워낸 것이 아닐까 싶다. 위대한 쇼맨을 연출했던 제작진과, 월플라워를 감독한 감독. 각자의 장점이 크게 두드러지는 각자의 팀이 서로의 단점을 키운 게 아닐까?


특히 촬영적 측면에서 배경은 학교, 숲, 조이네 집, 에반네 집 정도가 전부인데 그 단순한 배경을 어떻게든 화려하게 바꿔보려는 노력들, 수많은 클로즈업과, 수많은 돌리, 하이앵글과 로우앵글의 남발. 에반 핸슨이 그런 화려한 연출이 어울리는 작품일까? 싶은 생각이 조금. 아무리 이게 뮤지컬로 시작된 화려한 조명과 안무가 가득한 무대 출신의 이야기였다고 해도 말이다.


월플라워와 원더, 두 작품으로 보여준 감독의 우울함과 아픔들, 그것들의 극복과정을 담담하지만 극적인 드라마를 잘 그려냈던 감독의 역량을 생각했을 때. 내가 가진 이 생각은 점점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디어 에반 핸슨의 ‘스토리 자체’가 문제라는 여러 사람들의 평가를 굳이 나까지 가지고 싶진 않고, 원작의 스토리는 잘 모르지만. 몇몇 구멍들을 차치한다면, 에반의 행동이나 감정들에 완전히 공감할 수 없다는 말은 아끼고 싶거든.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은 장면들은 있다. 특히 줄리엔 무어의 so big so small. 의 장면만큼은 어느 영화의 장면에도 뒤지지 않을 명장면.(재밌게도 특히 이 장면이 어떤 장면들 보다도 연출적인 요소가 적은 편이었다고 느꼈다)


스토리를 깊게 생각할꺼라면 비추천, 특히 개연성의 측면에선 더더욱, 배우 개개인의 연기는 아주 훌륭했고, 넘버는 이루 말할 것 없이 특별한 감상을 준다. 어느 정도냐면, 이 넘버를 위해 캐릭터들이 존재한다는 느낌이 들 만큼의 영향력이라고 해야 할까? 조금 날카롭게 말하자면. 그냥 좀 긴 뮤직비디오라고 생각하는 것도 받아들이기엔 좋은 태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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