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반대편의 폭력이 다가와 속삭일 때.
일단 한국 개봉명이 좀 짜쳐서 원제를 찾아봤더니, 그냥 ‘시빌 워’였다. 왜 한국은 부제를 못 달아서 안달인지.
알랙스 가랜드 영화를 좋아한다. 멘도 그렇고, 액스마키나도 그렇고, 무엇보다 ‘서던리치’에서 보여준 스산함과 불가해에 대한 공포를 표현하는 데 성공했다는 점에서, 그의 실력은 나에겐 어느 정도 보증수표다. 그리고 시빌워도 아마, 꽤 괜찮은 영화로 기억될 것 같다. 다만, 분명 오독의 여지가 있으니 이 부분을 조금 해소해 보도록 하자.
먼저, 이 영화를 보기 전에 한국인이라면 아주 치가 떨릴만한 ‘언론’이라는 것에 대한 편견을 조금 내려놓아야 한다. 특히 한국은 정말 언론이 (특히 대형 언론사들이) 정치적인 색을 각각 가지고 있다 보니, 이 ‘종군기자 시뮬레이터’ 같은 시빌워에는 더욱이나 그 ‘언론’이라는 것에 대한 색안경을 벗어 놔야 한다. 이 말은 결국 무엇으로 귀결되느냐, ‘시빌워’에선 ‘정치’가 상당히 옅다. 작중에 나오는 대사인 ‘우리는 기록만 하면 돼, 질문은 다른 사람들이 하는 거고’라고 직접적으로 힌트를 던져주기도 하고 말이다. 이 ‘의도적인 비워둠’을 어떻게 받아들이냐에 따라 영화에 대한 평가가 갈리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화를 보기 이전에 들렸던 잡음들 덕인지, 한껏 편견을 가지고 봤다. 정치적인 전쟁에 대한 실상이 될 것이며, 사실이 하나둘 벗겨지는 그런 내용의 영화 일거라고 생각하고 관람을 시작했더니 웬걸, 사태는 그저 이미 일어난 채였고(심지어 일어난 지 한참이 지난 시기였으며) 우리가 따라가야 할 시선인 주인공들도 그저 한 개인에 불과한 ‘종군기자들’과 ‘지망생’ 하나였다. 그들의 로드트립무비였을 줄은 상상도 못 했던 터라, 조금 뒤통수가 얼얼한 느낌.
로드트립 이라곤 하지만 그 장르의 기본전제인 ‘성장’이랑은 역시 거리가 멀다. (이 부분 역시 또 의외였던 점) 이 로드트립의 목적은 드라마가 아니다. 정확하진 않겠지만 엄밀히 말해서 ‘폭력의 전시’ 정도가 그 목적이라고 생각했다. 전 세계의 중재자를 자처하던 미국이 본인들의 영토에서 ‘미국인’끼리 서로를 죽이는 모습을 영토를 가로질러가며 보여준다.
한 번은 민간인들의 폭력을, 한 번은 군인들의 참상을, 한 번은 군인의 탈을 쓴 사이코패스의 살육 등을 마치 하나의 예시처럼, 어쩌면 종군기자가 응당 담아야 할 사진들처럼 순차적으로 보여준다.
이 부분에서 우리가 느껴야 하는 것은 일종의 ‘참혹함’이다. 아니 일종 따위가 아닌 분명함으로 다가온다. 전 세계의 전장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저 미국 내로 가져왔을 뿐 일지도 모르겠다. 이 영화가 기본적으로 ‘미국’ 내 상영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을 생각했을 때 이는 꽤나 도전적인 알레고리다. 이미 미군은 전 세계에 자신의 군인들을 파견해 놓았고, 그 각각의 전쟁의 형태는 어쩌면 대동소이할 테니까. 하지만 전쟁을 직접 겪지 않는 국민들은 작중의 ‘기묘하게 평화로운 마을’과 같이 살아간다. 그것이 마치 ‘자신과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그렇지 않은가? 세계에 몇 없는 ‘휴전’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지점이 이 영화의 목적이 아닐까 생각했다. 미국이 손 닿고 있는 전 세계의 참상을, ‘미국인, 바로 당신들 옆에 가져다 뒀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 그것을 찍어냈다고 생각했다.
다만 이런 의도로 만들어지기만 하면 이는 ‘다큐멘터리’의 영역이라서, 애초에 픽션으로 설정된 ‘이 것’이 ‘영화’가 되기 위해 필요한 ‘드라마’는 곁다리 수준, 아니 뱀의 다리 수준으로 옅다. 등장인물들은 기능적이며, 철저히 도구적으로 쓰인다. (특히 빨간 안경의 군인은 대표적인 무정부상태를 등에 업은 ‘명분’을 핑계로 쾌락살인을 하는 전형적인 전장의 사이코패스를 묘사한다.) 심지어 목숨을 바치는 주인공의 희생의 장면까지도. 기능을 위해 연출된 장면에 감정을 이입하기란 어렵다. 솔직히 말해서, 이 부분은 아무리 좋게 보려야 좋게 볼 수가 없다. 다른 부분들이 의도가 확실하고 그리고 또 적확하게 기능하는 점에서 이 부분은 눈에 띄게 아쉬운 부분.
그런 지점에서 조금은 아쉬운 영화였다. 다만 ‘전쟁’이란 것의 무언가를 약간이나마 느끼게 했다는 점에선 합격점. 볼만한 영화. 그 정도.
PS. 엔딩 크레딧의 조금씩 인화되는 사진을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역시 사람마다 다른 부분이다. 누군가는 폭력을 환희로 받아들이는 인간성의 상실로 받아들이고, 누군가는 폭군을 사살한 승리의 역사라고 기억하겠지. 사진이란, 혹 ‘보여줌’이란 것은 그렇다. 이 영화가 정치가 옅은 부분은 전 세계에서 일어나는 전쟁을 포괄적으로 포함하기 위해서도 있겠지만, 분명, 한편으로는 이 의도적인 ‘해석의 비움’으로 관객들이 질문을 만들어내길 바라는 듯했다고 생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