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누구에게 나를 맡겨왔는가.
어쩌면 ‘자아의탁’이라는 단어 하나만으로도, 내 20대 대부분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약한 나를 견딜 수 없어 남의 강함에 의지하던 시절. 존경과 부러움, 혹은 귀찮음과 모멸감 같은 복잡한 감정들 위에 나를 얹고, 그들 안에서 내가 되고 싶은 나를 찾아 헤맸다.
그때 나는 자주 누군가를 따라 했다. 동경했고, 흉내 냈고, 감정이입했고, 때로는 스스로를 부끄러워하며 깎아내렸다. 그것이 내가 타인에게 나를 맡기는 방식이었다. 다른 사람의 껍데기를 지고, 내 맘대로 색을 입혀 나라고 믿고 살아가는 일.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나를 너무 몰랐다. 모르니 믿을 수도 없었고, 믿을 수 없으니 남의 확실함에 기대려 했다. 내 것이라 부를 수 있는 감각이나 언어가 없었기에, 나는 종종 타인의 말과 태도를 빌려 나를 서 있게 했다.
이 글은, 확신의 ‘부끄러움’에 대한 나열이며 그렇기에 나를 누구에게 맡겨왔는지에 대한 기억의 기록이다. 그 사람들을 통해 나는 무엇을 배우고, 또 무엇을 잃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나를 찾아왔는지. 그 여정에 관한 이야기다.
내 삶을 지나간 내가 닮고 싶었던 ‘형님들’에 대한 작은 회고록이다.
대학교에 갓 입학한 나. 아직 고등학생 티를 못 벗은 무리들 사이에서 가장 빠르게 어른이 되는 법은 당연하게도 ‘어른 같은 사람’을 따라 하는 것이었다. 그때 즈음 나는 한 선배를 무척 따랐다. 그는 늘 당당했고, 중심에 서 있었으며, 말투는 거칠었지만 묘하게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었다. 무엇보다 무언가를 해야 한다면 시작하는 그 추진력이 정말 멋져 보였다. 그 시절의 나는 ‘남자라면 이래야 한다’는 말에 쉽게 설득되던 사람이었고, 그의 일관된 태도와 세상을 대하는 쿨한 방식이 나에겐 올바른 것처럼 느껴졌다.
나는 점점 그를 닮으려 했다. 말투도, 생각도, 자세도. 그가 옳다고 여기는 방향으로 내 감정을 조정했고, 특히 여성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는 수많은 혐오 표현들을 너무도 당연하게 쏟아냈다. 마치 언제든 쉬이 취할 수 있는 트로피처럼. 더티 토크는 끊이지 않았고, 기름진 웃음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사실은 알고 있었다. 나는 그가 되지 못했고, 되어서도 안 됐다는 것을. 그 무렵, 내 등 뒤에서 지금까지 읽어온 책들과 영화들이 조용히 고개를 흔들기 시작했다. 내가 봤던 ‘디 아워스’는? ‘델마와 루이스’는? 아니, 하다못해 ‘에일리언 2’는? 그 시퍼렇게 빛나는 문화적 기억들의 눈총에 나는 이 우스갯소리로 소비되는 ‘혐오’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의문을 가지지 않는 그와의 간극은 점점 커졌다.
결국 나는 알았다. 모든 혐오의 끝에는 늘 ‘고립’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우리가 지향해야 할 것은 ‘공존’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와 멀어진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어떤 면에선 그에 대한 동경은 반면의 깨달음으로 나를 자라게 했다.
거울의 뒷면 서있던 것처럼, 나를 비춰 보기 위해선 앞면으로 서있던 위치의 ‘반면’으로 서야 진짜 나를 바라볼 수 있다는 걸 그래도 깨달았다는 게 참 다행이었다.
아주 많이 낡은 허물을 벗어내자
드디어 조금 더 내게 가까워질 수 있었다.
두 번째 형님은 사실 말하자면 ‘친구’였다. 중학교 때부터 알고 지낸, 유별난 사고방식과 뛰어난 학업 성취를 자랑하던 인물. 사람들은 그를 두고 호불호가 갈린다고 했지만, 나는 나름의 애정을 품고 지켜봤고, 그의 곁에 있는 것만으로도 이상하게 마음이 부웅하고 떠오르곤 했다.
우리는 사회주의와 실존주의 같은 철학 이야기부터, 힙합과 예술 전반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나야 공부와는 담을 쌓았지만, 책으로 쌓은 잡다한 지식들이 있어 그와의 대화는 나의 ‘지적 허영심’을 자극했고, 동시에 스스로를 가치 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해 줬다.
어쩌면 그는 나에게 일종의 ‘사회적 보증서’ 같은 존재였는지도 모른다.
“나는 저 사람과 가까운 사람이야.”
그 문장은, 내 자존감을 대신해 주는 말이었다.
하지만 관계는 점점 이상하게 흘러갔다.
그가 서울 생활을 정리하고 광주로 내려온 어느 시기, 나는 그의 지루함을 달래는 역할을 맡게 되었다. 학교, 모임, 인간관계들 사이에 그 친구를 소개하며 나는 거들먹거렸고, 그는 점점 나를 가볍게 대했다. 반복되는 실망, 소모되는 감정, 그리고 점점 작아지는 나 자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버텼다. 우정보다 ‘그의 친구’라는 타이틀이 더 중요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의 말 한마디가 내 일상을 흔들었고, 그의 요구는 내 인간관계에 금을 냈다.
결국 나는 그를 조용히 떠났다.
그가 마지막으로 했던,
“그래서, 이제 또 재밌는 일 없냐?”는 말을 등지고.
그는 내가 되고 싶었던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절대로 되고 싶지 않았던 사람이기도 했다.
아마도 바로 그때, 나는 처음으로 ‘관계 속의 나’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지도 모른다.
공교롭게도 그때가 그 친구와의 10주년이었다.
참, 비싸게 배운 깨달음이었다.
어쩌면 내 인생에 유일한 ‘멘토’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지 않을까 싶다.
제대로 된 카메라를 처음 손에 쥐게 해 줬고, 영상이라는 세계의 문을 열어주었으며, 함께 작업하며 꿈을 꿀 수 있게 해 준 사람.
그와 함께 했던 시간은 내게
“나도 뭔가를 할 수 있을지 몰라”
하는 가능성과 희망을 심어주었다.
그는 내 감각을 유의미하다고 말해주었고, 그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삶의 나침반 같았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나를 믿고 지지할수록, 나는 작아졌다.
그의 신뢰에 비해, 나는 여전히 미숙했고, 게으르며, 자존심만 강했다. 항상 멋지고 완벽한 결과를 내야 한다는 강박에 사로잡혔고, 결국 그가 소개해준 회사에서 나는 클라이언트의 요구를 무시한 채 ‘내 작업물’을 고집하다 잡음을 만들었다. 결국 퇴사했고, 그가 보지 않는 곳으로 도망치듯 사라졌다.
연락은 점점 줄었고, 나는 조용히 그를 멀리했다. 그가 내게 보낸 신뢰와 격려를 배신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미숙함이 결국 그와의 인연을 망가뜨렸다는 사실에 부끄러웠다. 그리고 그 수치심을 바로 마주 보지 못한 것이 정말로 ‘배신’이 됐다는 사실이라는 걸 늦게나마 깨달았다.
그와의 시간은 분명 내게 꿈을 준 소중한 기억이다.
그러나 동시에, 내 미성숙과 허영, 부족함이 고스란히 드러난 시간이기도 했다.
지금도 그는 내 안에 남아 있다.
여전히 좋은 사람으로, 아직 이루지 못한 꿈의 한 장면처럼.
이 형님들 말고도 나를 지나간 수많은 ‘형님’들이 그때와는 다른 모습으로 현재를 살아가고 있을 것이다. 아마 놀랍지도 않게 각자의 훌륭한 어른으로 살고 있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비단 나 역시도 정말 수도 없이 나의 모습을 바꿔와선, 조금이나마 내가 생각하는 ‘어른’에 가까워지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니까.
사람은 쉬이 변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나는 이제야 안다. 주변에 어떤 사람을 두느냐 라는 확실한 변화의 계기가 존재한다는 것을.
거기에 더해 또 하나 깨달은 게 있다면
어떤 사람도 나 대신 나를 살아줄 수 없다는 것. 누군가의 태도를 빌려선, 진짜 내가 될 수 없다는 것 역시 분명히 알게 됐다.
그들의 관계 속에서 나는 다양한 나를 키웠음에도, 그것은 ‘내’가 아닌 시간들이었기에 결국 언젠가는 돌아와야만 했다.
하지만 그들은 유령처럼 내 몸을 통과했고, 그 잔향은 결국 나를 이루는 일부가 되었다.
그러니 ‘형님의 역사’는 실패의 연속이 아니다. 그건 돌아오는 길이었고, 스스로를 ‘발견하는’ 과정이었다.
여전히 나는 타인에게 쉽게 영향을 받는 사람이지만, 이제는 중심을 스스로 세우고 살아가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언젠가 누군가에게 인정받는 사람이 되기보다, 스스로를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말을 하곤 한다.
주위를 조금 둘러보자.
사실 멋진 사람들은 어디에나 있다는 걸 쉽게 알 수 있다.
그럼에도 결국은
내가 조금 더 단단해진 다음에야
그 멋짐을 알아차릴 수 있다고 스스로에게 말을 던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