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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 글

표정, 손짓, 그리고 희망에 대해

by 후기록

근황이라기엔 또 오랜만이라는 인사를 올리기가 멋쩍어, ‘일상’이라는 말로 안부를 전합니다.


오랜만에 만나 뵌 분도, 꾸준히 만나온 친우도 하나같이 ‘표정이 좋아졌다’고 말합니다. 그런 말을 여러 번 듣다 보면 이게 또 삼인성호라고, 정말 그렇게 되는 것도 같아 묘한 감상이 남습니다. 달라진 게 뭐가 있나 생각해 보면, 살이 조금 붙었고, 일을 하고, 만나는 사람들이 여럿 바뀌었고. 무엇보다 ‘하기 싫은 일’과 ‘맞지 않는 사람’이 엮일 일이 없다는 게, 참으로 근심을 내려놓게 만드는 일이라는 걸 느낍니다.


수어 교실이 끝나가면서, 괜스레 입으로 꺼낸 문장들을 수어로 만들어 보기도 합니다. 얼추 3개월간의 교육을 통해 더듬더듬, ‘손’과 ‘표정’을 여는 연습을 하다 보면, 앞서 들은 ‘표정이 좋아졌다’는 말이 어쩌면 그것과도 이어져 있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것과 좋은 것, 크게 다른 게 아닐지도 모르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 이야기를 하니, 소설… 비스름한 무언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뭐, 자잘한 감상보단 글로 보여드리는 게 맞을 것 같기도 해요. 요즘 같은 시대에 ‘글’이라니, 이런 것마저 옛것이 좋다고 우겨대는 걸 보면 뼈가 굵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여전히 하고 싶은 일만 하며, 좋은 사람들을 만나 공통의 주제로 공명합니다. 쌓여 있던 고민들이 무색하게도, 30대의 책임과는 조금 비껴간 속 편한 일상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나라가 참 어수선한 요즘,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나라, 정부, 금융, 경제 같은 것들이 과연 실제로 존재하는 것들일까? 하는 의문 말이에요. 예를 들어 왜 사람들은 자신의 조망권을 걱정하면서도, 아파트 한 채가 가져올 환경적 문제는 생각하지 않을까요. ‘아파트’는 곧 ‘집’이 아닐 텐데, 정작 우리가 밟고 서야 할 것은 흙과 땅인데도 왜 그렇게들 목을 매는 걸까요.

우리가 살아가는 데 정말 필요한 건 뭘까요. 더 나아가선 그렇다면 과연 ‘산다는 것’은? 기호와 신화로 이루어진 세계 속에서 인간의 삶은 어떻게 정의되고 있을까요. 또 이런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언젠가 챗GPT에게 이런 질문을 한 적이 있어요. “나는 어떤 글을 쓰는 것 같아?” 그 수많은 예쁜 말들 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았던 건 “너의 이야기는 언제나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만들며 끝나”라는 문장이었어요. 생각해 보면, 제가 늘 물음표를 만들고 그에 대한 답을 찾아가는 성정이라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생각이 많고 질문이 많다는 것. 누군가는 “그런 성향은 금세 우울해질 거야. 언젠가는 답이 없는 지점에 도달하게 될 테니까”라고 하더군요. 틀린 말은 아닙니다. 질의응답의 과정은 실제로도 꽤 고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꼬리를 무는 질문들 끝에 도달할 수 있는 ‘희망’을 바랍니다. 혼자서는 버거워도, 비슷한 사람들끼리, 나아가 닮지 않은 사람들까지도 함께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간다면—그 끝에 우리는 반드시 희망에 다다를 수 있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건 믿음이 아니라, 당연히 그렇게 될 일입니다.



그리고 문득 그런 생각도 듭니다. 희망이 있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그 희망이 실현 가능한지의 여부보다도 ‘질문을 포기하지 않는가’에 있는 것 같다고요. 희망이란 건 언제나 확실한 답이 있는 게 아니기에, 그걸 계속 찾고 묻고, 함께 이야기하려는 마음이 있을 때 비로소 살아있는 감정이 되는 것 같습니다. 희망이 사라지는 순간은, 사실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니라 ‘묻는 것을 그만두었을 때’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러니 계속 묻고, 그 질문 끝에 작은 빛이라도 발견해 내는 사람들이 있을 거라고,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라고 믿기를 희망합니다.




마무리로 다시 한번, 얼굴이 좋아 보인다고 이야기해 주신 많은 분들께 감사 인사를 전합니다. 그 말만으로도 저를 마주해 주셨다는 것이기에, 저는 그만큼 충만해짐을 느낍니다. 희망을 조금, 전해드리고 싶은 마음입니다.


그리고 그 충만함 덕분에, 오늘 하루도 다시 써볼 수 있겠다는 마음이 듭니다. 우리가 나누는 인사와 표정, 손짓 하나하나가 언젠가 어떤 이의 내일을 조금 더 부드럽게 만들어주기를 바라며—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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