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나요?
내가 나를 모른다
이 이야기를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아니, 어디서부터 시작되었을까. 나는 ‘가면’ 뒤에 스스로를 숨기고 지냈던 날들이 많았다. 언제나 밝은 척, 쾌활한 척, 행복한 척하는 모습을 인지하기 시작한 건 18살 무렵이었다. 한 사람의 정체성이 빚어지고 있는 그때, 본연의 모습과 내가 꾸며낸 모습 사이에서 괴리감을 느꼈고 혼란스러웠다.
'어쩌면 이게 내가 아닐 수 있겠구나.'
'아.. 내가 나를 모르는구나.'
익살스러운 가면 아래 놓인 고요한 나를 마주하게 되었다. 변화의 시작은 알아차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나는 이 점을 알아차린 이후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솔직히 말하자면 오히려 편했다. 이 가면, 저 가면을 적재적소에 쓰다 보면 적당한 인간관계, 적당한 커리어를 쌓을 수 있었다. 최소한 가족과 마음을 터놓는 친구들 앞에서 '나'로서 존재한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이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
원인 모를 하혈이었다. 생각보다 많은 피가 흘러 병원에 갔지만 병원에서도 해줄 수 있는 건 딱히 없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멎어가는 걸 기다리는 수밖에. 주치의도 원인을 모르는데 내가 슬퍼해봤자 소용없을 거라는 생각에 애써 괜찮은 척 덮었다. 너무나 익숙하고 노련한 방식으로 꿈틀거리는 폭탄을 연신 덮어버렸다. 폭탄 위로 얇디얇은 홑이불을 겹겹이 쌓았지만, 그럴수록 힘이 세졌다. 그렇게 모두가 예상하는 결말에 이르고야 말았다. 한계에 다다르고 결국 팡- 하고 터지는 뻔한 결말을 나만 몰랐던 것 같다.
폭탄이 터지고 말았다.
홑이불로.. 잠시 가려두고 싸두었는데, 안 보려고 했지만 결국은 끝내 터지고 말았다.
2-3시간 동안 눈물이 줄줄 흘렀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았다.
아무것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냥 무의 존재로 사라지고 싶었다.
남편한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내 민낯.
추악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날 위로하려던 그는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나도 나를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홑이불로 감싼 폭탄
연이은 시험관시술에 몸이 견디지 못했고, 마음은 곪아 터져 버렸다. 내 안에 남아있던 마지막 끈이 빠져나가면서 갑자기 모든 감정들이 쏟아져 나왔다. 왈칵 쏟아진 눈물이 얼굴을 뒤덮는건 시간 문제였다. 예고 없이 마구 풀어헤쳐진 감정들을 어디서부터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몰라 병든 닭처럼 누워있는데 방문 너머 들리는 소리. 탁. 탁. 탁. 탁. 칼질 소리다. 한참 뒤에 조심스레 방으로 들어온 남편이 묻는다. "간 좀 .. 봐줄래?" 난 울음으로.. 그저 울음으로 답한다. 말없이 나를 끌어안아주는 남편. 그리고 그의 눈에서도 눈물이 흐른다.
한참을 그렇게 부둥켜안고 울다가 어렵사리 식탁에 앉았다. 아내를 위해 그가 선택한 위로는 감자채볶음과 호박전이었다. 소담하게 놓여 있는 음식을 보아하니, 남편이 떠올린 숱한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어떻게 다가갈까, 어떻게 한 마디를 건넬까, 어떻게 힘을 줄까. 간을 봐달라는 부탁은 ‘뭐라도 좀 먹자’고말하고 싶었던 마음을 정성스럽게 다듬고 정제한 언어였다. 내 생에 가장 맛있었던 감자채볶음을 씹으며 생각했다. 나보다 더 힘들어했을 그를 보며 다시금 힘을 내보자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무조건 덮는 게 능사는 아니라는 걸 이제는 알았다. 결국엔 직면해야 폭탄을 챙길지, 해체할지, 바깥으로 꺼낼지 등등의 취사선택을 할 수 있으니까! 우리 모두의 가슴속에는 알맹이가 있다. 아주 희미한 실체일지라도, 중심이 흔들릴지라도 계속 들여다보고 귀 기울여야 보이는 알맹이. 이젠 나의 두 손으로 직접 터지지 않게, 하지만 사회와 너무 동떨어지지 않게 잘 구워삶아 보고 싶다.
당신은 ‘나의 목소리’를 들으며 살고 있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