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 불면 찾아오는 겨울조각들.
지난주에 내린 비에 이어, 이번엔 강풍이다.
비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손에 든 우산이 종이인형처럼 자꾸 꺾이고 뒤집어지고 내 손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
아직 단풍놀이도 못 가 봤는데 그 마저 붉게 물들기도 전에 잎들이 다 짙은 아스팔트 길 위에 염료 방울처럼 떨어졌다.
편의점에 가 보니, 달큼한 군고구마가 맥반석 위에서 구워지고 있다.
돌 위에서 나지막이 구워지고 있는 군고구마를 보고 있자니, 연기도 나지 않고 가게 안을 샛노란 냄새로 가득 채우는 매력만점의 고구마를 한 입 베어 물고 싶어졌다.
방금 나 밥 먹었는데, 분명.
가을은 계절 소매 끝자락에 대롱대롱 매달려 겨울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있었다.
고구마 맞은편 진열대에는 어렸을 때 500원 주고 사 먹었던 삼립 호빵이 보였다.
가수 김도향 씨가 불렀던, CM송을 기억하는가.
“찬바람이 싸늘하게~ 두 뺨을 스치면, 따스하던 삼립호빵 ~ 몹시도 그리웁구나.”가 텔레비전에서 흘러나오던 그 노래, 지금 이 글을 읽으며 흥얼거리고 계신다면 당신은 적어도 잘파 세대는 아니다.
민초(민트초코)도 한풀 꺾인 이 퓨전의 시대에, 동시에 MZ세대다 잘파세대다 자꾸만 새로운 이름을 붙여가며 분류하고 서로 섞이길 거부하는 이 시대에, 피자호빵, 고구마 호빵, 단팥 호빵, 야채 호빵이 형형색색으로 1층에서 2층, 2층에서 3층에 각자의 포즈를 잡았다. 뮤지컬 ‘그레이트 코멧’의 움직이는 무대와 종횡무진 악기를 연주하며 연기하는 뮤지컬 배우들처럼 빨간 우체통처럼 생긴 찜통 안에서 뜨거워도 우아한 그들만의 런웨이 쇼를 하고 있었다.
원조 하얀 단팥호빵에 밀리지 않는 비주얼을 뽐내면서 말이다.
시장 입구에 들어서니 가스값도 안 나온다며 툴툴 거리며 여름 내내 문 닫았던 붕어빵 아줌마가 어묵꼬치를 부지런히 끼우고 계신다.
“겨울 장사 다시 시작하시는 거예요?”
“그렇지, 뭐.”
“이제 조그만 있으면 금세 저 버스 정류장 앞까지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설 테니, 가스값 걱정은 안 하고 신나게 붕어 없는 붕어빵을 구우시겠네요?”
아주머니와 넉살 좋은 인사를 나누고 오른쪽 골목으로 몸을 돌렸다.
아, 다이소만큼 시장에 한 두어 개는 꼭 있는 잡화점이 눈에 띈다. 벌써 가짜 크리스마스트리를 매장에 들여다 놓고 손님을 기다린다.
순간, 집에 있는 미니 촛불이 생각났다. 창고 어딘가에 거의 8개월을 묻어 놨었지.
겨울이 다가오면 거의 매일 밤 자기 전에는 촛불을 침대 머리맡에 켜 두고 불멍을 하곤 했다.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유약한 불꽃에 내 마음은 소공녀와 성냥팔이 소녀의 그것처럼 말랑말랑해졌다.
손으로 만진 것도 아닌데, 방을 데울 만큼 큰 불꽃도 아닌데, 내 방이 없어 거실에서 지내던 지난 날들 그 주황불꽃은 나의 마음의 난로이자 조명이었다.
겨울이 다가오고 있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눈길이 가는 곳마다, 동네 한 바퀴를 돌면서 겨울 조각들을 모아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