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공학 전공자가 외식 대기업에 취직하기까지
학교 밖에서 나를 찾아가는 시간
고등학교 때부터 건강한 식품에 관심이 많아 대학 전공을 식품공학으로 선택한 것은 꽤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대부분의 식품공학과 졸업생들이 그렇듯, 대학원에 진학해 석사를 마치고 식품회사 연구원이 되는 길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연구원에겐 실험이 필수적이기에 주요 과목 중에 하나로 실험 수업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실험 수업을 들을 때마다 실험실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진행되는 집요하고 반복적인 실험이 당연하게 느껴지지 않았고 전공과목도 그다지 흥미롭지 않았다. 그래서 그것을 즐겁게 해내는 동기들이 부러웠다.
1학년을 끝내고 식품 공학 전공자들은 거의 선택하지 않는 어학연수를 다녀왔다. 혹시나 전공을 바꾸게 되면 무슨 길이든 영어가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전공을 유지하더라도, 이토록 평범한 나에게 기술 하나는 필요했다. 또 다른 이유는 완전히 다른 환경에서 어떻게 진로를 결정할지 고민하고 싶었다. 하지만 캐나다에서의 시간은 나의 미래를 결정해 주지 않았다. 환경이 변했어도 책상에만 앉아 골머리를 앓는 것만으로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없는 것이 당연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후에는 학교 안에서는 전공 공부에 최선을 다 한 것과는 별개로(학비가 아까우니까!) 학교 밖에서는 전공과는 거리가 먼 활동들로 시간을 채웠다. 그런 활동들이 나에게 무언가를 깨닫게 하리라 믿었다. 동기들이 방과 후 학회활동을 하고 방학에는 식품회사에서 인턴을 할 때 나는 여러 비영리단체들과 인디 영화제에서 기획과 스태프 활동을 하거나 아픈 아이들의 소원을 들어주는 Make a Wish 활동으로 시간을 보냈다. 대학원 진학 대신 취업을 선택한 것도 대외 활동을 통해 내 성향을 조금이나마 파악했기 때문이다.
식품연구소가 아닌 외식기업으로
취업 준비를 시작하면서 나의 중구난방처럼 보이는 대외 활동이 적힌 자소서를 보며 웃어버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교수님들은 지금이라도 대학원에 진학하기를 권유하셨다. 동기들 대부분 식품회사 연구원을 지원할 때(휴학을 하는 바람에 석사생인 동기들과 같이 졸업했다) 고민 끝에 대기업 C사의 외식 계열사 공채에 지원했다. 대외활동 중에 가장 보람찼던 일은 잘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세상에 드러내는 것이었다. 한식을 세계에 알리는 프로젝트에 특별히 마음이 끌렸던 것도 같은 이유였다. 4번의 면접 끝에 최종합격 소식을 들은 날, 무척 기뻤다. 그저 대기업에 합격했기 때문은 아니었다. 수년 동안 듣던 "이 길이 아니면 어렵다"는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고집했던 다양한 경험에서 배운 것들이 나를 성장시켰음을 확인했던 순간이었기 때문이다.
작은 배움과 성취들이 모여 길을 닦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