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케리스 Oct 26. 2024

식품의 진보를 전하는 일

숨은 디테일을 확인하는 작업들

인생은 우리가 계획한 대로 흘러가지 않을 때가 많다. 기대에 부풀어 입사했던 회사가 어느 순간 내가 기대한 모습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고 있음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퇴사를 결정했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떠나는 것은 두려웠지만, 그곳에서 일어나게 될 일을 가만히 기다리는 것이 더 두려웠다. 다행이라고 해야할지 아쉽다고 해야할지 그 염려는 결국 현실이 되었다.


가진 돈을 모두 털어, 생애 처음으로 그리스로 한 달간 배낭여행을 떠났다. 그곳에서 35살에 퇴사하고 몇 달째 여행 중인 분, 40대에 직무를 바꾸기 전 산토리니에서 한 달 살기를 하고 있는 분 등을 만나게 되었다. 그들의 감사한 이야기들 덕분에 마음의 위로를 받고, 다시 한 번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자고 10인실 도미토리에 앉아 다짐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여러 곳을 기웃거리던 중 식품 원료 산업에 대해 알게 되었다. 전공 과목 중 기능성 식품소재를 다루는 기능성 식품학을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이 있었고, 여전히 유익한 정보를 공유하는 데 열정을 쏟는 나에게 좋은 원료를 삶에 밀접한 식품에 적용한다는 것이 흥미롭게 느껴졌다. 그렇게 10년이 훌쩍 지났다.



두번째 직장이었던 유럽계 식품원료 무역회사, 그리고 건강기능식품 브랜드 회사 등에서 근무하며 식품 원료, 특히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기준이 적용되는 건강기능식품과 아기분유, 성인영양식 원료를 핸들링하게 되었다. 나의 일은 최신의 식품 트렌드를 스터디하고 그에 맞는 가장 진보한 원료를 찾는 것이었다. 식품 기술이 가장 발전한 곳은 일반적으로 유럽의 선진국들이다. 그들과 커뮤니케이션 하면서 까다롭게 원료들을 고른다. 원료의 기술과 품질을 판단하기 위해 논문과 자체 실험 데이터, 안전성 데이터 등을 검토한다. 이렇게 1차적으로 고른 원료들의 마케팅 자료를 만들어 식품 회사 연구원들에게 소개한다. 수십 차례 연구원들과의 미팅을 통해 제품에 적용하기 위한 방향성 등을 글로벌 제조사와 조율하며 제품에 적용한다. 


아기분유의 경우 원료 하나를 적용하기 위해서는 기능성을 검증하는 작업 이외에도 약 20가지의 검증 서류가 필요하고 건강기능식품 원료도 마찬가지로 국내의 까다로운 법률에 맞추는 과정이 필요하다. 아기분유, 성인영양식, 건강기능식품과 같은 까다로운 카테고리의 원료를 오래 핸들링하다보니 그 기준들을 자연스레 습득하게 되고 고품질의 영양 식품과 영양제에 대한 기준을 세울 수 있었다. IT기술이 발전하듯 식품산업의 원료도 끊임없이 진보한다. 전 세계적으로 많은 비용을 투자하여 더 높은 순도, 더 높은 흡수율, 더 효율적인 기전, 더 높은 안전성 혹은 안정성을 가진 원료들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식품의 진보를 구현하는 것은 원료의 일이기 때문에 매년 스위스, 프랑스 혹은 독일에서 열리는 식품 원료 박람회에는 전세계의 식품회사 종사자들이 방문한다. 

 

식품을 다루는 일은 늘 긴장해야 하는 예민함이 수반되는 일이다. 하지만 삶에 가장 밀접하고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식품의 기본 중 하나인 원료가 제품에 적용되어 사람들의 건강에 기여하는 것을 보며 많은 보람을 느꼈다. 그 보람이 10년 넘게 이 일을 하게 한 원동력이었다. 앞으로도 진보의 가장 근거리에서 이를 전하고 싶다.




작가의 이전글 고집스럽게 나를 찾아가는 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