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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이니이 Oct 27. 2024

동경하던 나의 도시, 서울 생활 버티기

서울생활 정착기

친오빠와 함께 살기위해 서울상경부터 고단했다.


오빠가 올라오기 전날 아무것도 없는 집에가서 다음날 이삿짐을 받아야 했다.

그래서 이것저것 짐을 싸는데 트렁크2개가 되어버렸다.아버지 한테는 대충 서울에 간다고 얘기했다. 안내려올꺼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근데 그냥 놀러가겠다는 딸이 트렁크 2개를 들고 가는걸 보고 아버지는 이 딸이 안내려오겠구나라고 생각하셨단다.

그렇게 첫날 부터 고단했던 나의 서울생활이 시작되었다. 아무것도 없는 원룸에 대충 옷을 덮고 잤다.

다음날 이삿짐이 왔는데 ,패셔니스타마냥 이삿짐에 오빠의 옷이 반이상을 차지했다.

그 옷들을 다 정리를 하고 치우니 오빠가 도착했다.

바쁘니 그럴수 있겠다고 생각은 했다. 그런데 원룸에서 두명이 산다는 건 피곤하고 좁았다.

생활패턴도 맞지 않았고, 밥도 제대로 해먹을수 없었다.오빠가 짜증이 난 날이면 자전거를 타고 운동을 하러 나갔고 눈치보며 이것저것 해보며 몇달이 흘렀다.


어느날 갑자기   오빠가 중고차를 샀다. 원룸계약 당시 주차한다는 말을 한게 아니기때문에 오빠의중고차는 주차하기가 힘들었다. 오빠는 집주인에게 중고차 여분키를 맡겨야 했다. 깔끔하고 까딸스러운 오빠는 자신의차키가 집주인한테 가는 것도 싫고 원룸이 생각보다 좁아서 이사를 해야겠다고 했다.

권리를 주장할 수 없는 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래서 오빠 직장 바로앞에 아파트를 월세로 계약을 했다. 그래서 문앞에 나의 방이 생겼고 청소할 공간이 늘어났다.


서울 생활을 버티기 위해 직업학교를 다니면서 디자인관련 자격증을 따며 공부를했다.


그 와중에 남자친구가 생겼고 나의 팍팍하던 서울 생활은 조금 더 재밌어 졌다.

그 당시 나의 생활은 단조로웠다. 학원을 갔다온 후 집청소를 하고 오빠가 사온 치킨을 먹거나 저녁을 각자 먹었다. 생각해보니 오빠에게 밥을 해준적이 크게 많지는 않다. 전기밥솥에 밥이 있고, 냉장고에 엄마가 준 반찬이 있는 정도였다.


생각보다 직업학교의 교육은 길었고,서울에서 1년을 버티며 겨울이 찾아왔다. 학원 교육도 마무리 되어가고 실력도 늘어갈때쯤 위기가 찾아왔다.


갑자기 친오빠가 군대에 간다는 것이다. 그 말은 지금 집에 살수가 없으며, 나는 집을 구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오빠가 군대가는 것이 나랑 상의할 일은 아니지만 갑작스러웠다. 그래서 집 구하는거 봐주겠다고 집을 같이 보러 다니기도 했는데 위로가 되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새로운 집에 이사를 하게 되었고, 남자친구와 집이 멀어졌다. 남자친구는 집이 왜 그렇게 멀리 구했냐면서 같이 살자고 하긴 했었다. 경상도의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나에게 동거를 제안한 것이다.

아버지가 노발대발 할 일을 만들지 않기 위해 과감히 거절했다.

남자친구집과 내가 구한 집이 멀어진 이유는 그냥 돈 때문이다. 보증금도 많이 없었고 월세를 낼 돈도 여유롭지 않았다. 이사할때 돈도 많이 들었다.

돈이 왜 없냐는 엄마의 말이 나를 슬프게 했다.

생각해보면 돈이 없으니깐 없지 라고 할 수 있었다.

나는 취업을 하지 않았고 갑작스레 집을 구했기 때문에 돈이 없는 상황이다.


대학교 졸업 1년전부터 월세 외에 부모님께 돈을 받은 적도 없다. 조금 뛰어났던 친오빠의 대학원 학비를 위해 나에게 제공되는 생활비는 없었다.

그래서 나는 돈을 모을 수 있는 상황이 없었다.


나는 혼자 살며 알바를 했고, 중소기업에 취직을 하게 되었다. 직원이 11명 정도되는 중소기업이였다. 작은 회사는 일의 경계가 없어서 할 수 있는게 있으면 이런저런일을 다 시켰다. 업무를 하며 실력을 쌓아야 하는데 이것저것 일을 시키니 하나의 일도 잘 마무리 되지 않고 다른일을 하게 되었다. 실력을 쌓고 싶었는데 무슨일을 하는건지 모르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고 여러가지 이유로 퇴사를 하게 되었다.


퇴사를 하며 뭐하면서 살아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는 사직서만이 답이라고 생각했다.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남자친구의 지지와 응원이 많은 위로가 되었고 취준생의 생활이 다시 시작되었다.


첫직장에 대한 타격감 때문인지 면접에 자신이 없었고 취준생의 생활은 길어졌다. 뭔가 중심을 잡고 목표를 정했어야 했는데 그냥 취직이라는 목표만을 위해 하루를 보냈다.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가고싶은 직군에 대해 고민을 하고 계속 면접을 보게 되니 면접스킬이 늘었다. 그러던중 면접의 기회가 찾아 왔다.이번에는 꼭 붙어야지라는 다짐으로 면접장소에 도착했다. 면접관은 늦는다는 연락을 받고 면접지원을 해주시는 분과 말을 나누며 면접스킬을 얻을 수 있었다.

면접만 보면 긴장을 많이 해서 떨고 나오는데 그날도 엄청 떨었다. 그런데 준비한것도 있고 할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해서 떨리지만 진솔하게 말을 했다.

그리고 망했다고 생각했던 면접을 합격했다.


그리고 야근과 수많은 업무속에 빌딩속 서울풍경만 보던 나의 치열한 회사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회사생활이 지금까지 나의 서울생활 멘탈을 다잡게 해주었다. 나의 서울생활 버티기는 회사생활 버티기가 되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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