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생활버티기와 밥벌이지키기
서울에 대한 동경은 서울에 좋은 직장에 대한 갈망이였는지도 모른다.
사원증을 걸고 지하철을 타며 출근하던 사람들이 부러웠다. 서울을 먼저 올라올게 아니라 실력을 쌓았어야 했는데, 마음만 앞서서 서울에 올라와서 내 실력은 부족했고 좋은 회사들은 더 많은 걸 실력을 요구했다.마음이 조급했고 원서만 내기 바빴지 내실력은 나아지지 않았다.
그런것을 깨닫고 작은 회사에 입사를 했고 퇴사를 두번한 뒤, 부족하지만 진솔한 답변으로 건물이 크고 사원증이 멋진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큰 회사는 일이 많았다. 체계도 복잡했고 이메일은 더 복잡했다. 내가 맡은 업무를 알려줬을 때도 잘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지만 예상보다 큰 프로모션과 거래처들에 작아지는 느낌이였다. 내 그릇에 비해 내가 맡은 업무가 많고 복잡하다고 생각했다.
입사하고 1년이 되기 전까지 퇴사할까라는 말을 품고 살았던 것 같다. 그런데 월급날이면 그 마음을 넣어두었고, 출근할 때 높은 건물을 보며 위로를 받았다.
일은 많았고 복잡했지만, 큰회사 좋은 회사에는 일 잘하는 동료가 있었고 배울 것이 많았다. 마인드와 일하는 태도가 좋은 사람들이 있어서 버티고 싶었고 잘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일은 점점 더 많아지고 야근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말수는 줄어들고 점심시간에도 밥을 같이 먹을 여유도 수다를 떨 여유도 없었다.
일이 익숙해질때면 다른 업무가 더 주어졌고 힘겨웠다.
일을 능동적으로 하는게 아니라 수동적으로 끌려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며 난 진짜 부족한가보다 느끼고 있었다. 내 실력은 나아지고 있지 않은데 팀은 커졌고 한 사람에게 맡은 업무는 늘어났다. 알지도 못하는 일인데 내가 알아야 할 것 같은 일이 늘어났다. 너는 스스로 알아봐서 못하냐는 얘기도 듣게 되었다.
너무 억울했지만 오기가 생겼다.그래 내가 한번 해본다 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 이후 업무관련 시스템에 접근 하는 방법을 정리했고, 권한을 받았고 가이드를 보며 익숙할때까지 해보며 익혔다. 이렇게 하는 동안 야근은 당연한것이라고 생각하며 즐겼다.
내가 정리해가는 일이 많아질 수록 뿌듯했다. 누가 보기에는 왜 저런것 까지 다하냐고 했다.
그런데 내가 하는 것을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었고 방법을 알려줬다.
절차가 많고 큰 회사 일 수록 부서간의 요청한 건은 느리게 처리된다. 내일 프로모션을 해야하고 특가페이지를 내야 하는데 전날까지 안되어있다. 그래서 할 수 있게 권한 받는 법, 툴을 사용하는 법을 다 정리했다. 이렇게 하니 내가 하는 일은 일 처리가 빨랐고 이방법을 알려주면 동료들의 업무도 빨라졌다.
그래서 나의 업무가이드를 참고하는 사람이 많아졌고 나를 칭찬하는 말과 눈빛이 많아졌다.
그렇게 되기 까지 6개월이 걸렸다. 이렇게 되기까지 나의 마음가짐도 많이 변했다. 예전 같으면 저는 모르는데요라고 말했던 일들이 제가 도와드릴께요 말할 수 있는 일로 변하게 되었다.
일 할때 능력보다 더 중요한 건 태도라는 걸 많이 배웠떤 시기였다. 적극적인 태도였고 해볼께요라는 말을 했고 항상 남아있는 직원이였다. 일이 정리가 되었고 마음태도도 바뀌었으니 속도와 실력은 따라오게 되었다. 그 해 나는 우리팀에서 같이 일하고 싶은 동료 1위가 되었다.
밥벌이를 제대로 하기 위해 애쓰는 동안 서울의 야경한번 제대로 보러 가지 못했고, 자동으로 불꺼지는 시간까지 있는 날들이 많았다. 버티다 보면 되겠지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한가지에 집중하다보니 좋은 딸도 되지 못했고 좋은 연인이 되지도 못했다. 서울생활이 힘들면 고향에 내려가는 친구들도 많았는데 나는 서울생활 하면서 명절이외에 집에 잘 가지 못했다. 힘든 걸 말하고 싶지 않았고 서울에서 버티고 싶었고 내가 견뎌야 하는 몫이라고 생각했다.
견디기위해 많은 감정을 내려놨었지만 사람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 핍박과 고된 일 속에도 음료수를 갖다 주는 동료가 있었고, 응원해주는 연인과 부모님이 있었다. 고맙다는 말을 많이 못했지만 따뜻한 사람들이 많았다.
힘들었지만 차가웠지만 그래도 퇴근하는 지하철에 보이는 서울 야경의 위로를 받으며 서울살이 8년차가 되었다.
월세가 많이 들어서 지출이 많이 나가서 서울에서 버티기 못하겠다고 내려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에게도 그러고 싶었던 시기가 있었다. 그럼에도 너무나 살고싶었던 서울이였고 하고싶었던 일이 많았던 서울이여서 포기 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수많은 이유중에 서울이 좋았던 건 항상위로가 되었던 절친과 따뜻했던 연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어느 곳에 있어도 내가 사랑하는 것과 사람들이 있으면 살아 갈 수 있을 것 같다. 난 여전히 서울을 동경하며 서울의 야경을 보이는 지하철에 있는 순간이 행복하다.
누군가에게 지금 버티고 있는 서울이 익숙한 풍경이 되길 바래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