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차 텔레마케터로 살았던 시간들
난 오늘도 새로운 고객들을 목소리로 만나고 왔다. 이제 나는 고객들의 첫인사만 접해도 어떤 통화목적인지파 악할 수 있다. 그래서인지 아웃바운드 업무로 영업성 업무를 하게 되는 일은 나 역시 피하고 싶다. 듣자마자 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해도 실망스럽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이니 신입 상담원들은 교육 중이라고 해도 점심시간이 되기 전에 '잠수형 퇴사'를 해 버린다. 그만큼 '아웃바운드 콜은 연결률이 낮고, 거절이 대다수'라서 성과를 내기 힘든 게 특징이기 때문에 교육기간이 짧은 만큼 일에 대한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을 만나기 어렵다. 물론 꾸준히 다니는 상담원들도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난 18년 넘게 이 일을 하고 있다 보니 몇 년 전부터는 고객들의 말에 크게 영향을 받아 그만두거나 스트레스를 크게 받지는 않는다. 그냥 역지사지라는 사자성어처럼 고객들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이해될 수 있는 일들의 반복이고, 나의 위치에서 처리할 수 있는 정도의 클레임이라 참을 수 있다. (무엇보다 해소할 수 있는 정도의 스트레스의 크기이고, 이젠 나만의 스트레스 해소법들을 알고 실행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만약 이 일을 시작할 생각이라면 무엇보다 어떤 업무를 하는 콜센터인지 파악하고 입사한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물론 나도 사직서를 서랍 속에 넣고 지냈던 신입상담원일 때가 있었다. 콜센터 업무를 2002년에 시작했으니까 긴 시간 힘들었던 일들 투성이었다. 그때는 고객들의 성희롱과 끝없는 욕설 그리고 말도 안 되는 클레임으로 상급자를 찾는 날들의 연속이라 당장 퇴사하고 싶었다. 그렇다고 그럴 때마다 퇴사할 수 없으니 20대에는 배우고 싶었던 일들과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과중되는 일로 쌓인 스트레스를 해소시켰다. 그렇게 퇴근 후의 시간과 주말을 보내고 나면 스트레스의 일부는 해소가 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스트레스가 전부 해소되기는 힘들었고, 괴로운 날의 연속이었던 날들은 알코올의 힘과 직장동료들과 고객들의 험담으로 시간을 많이 보내며 해소시켰다.
하지만 그래도 스트레스 해소가 안되어 폭발직전의 어느 날이었다. 옆에 있던 친한 동료가 나에게 말했다. ‘우리 일은 369야... 3개월 버티면 6개월 버틸 수 있고, 6개월 버티면 어느새 9개월째 일하고 있으며 이후 자연스럽게 퇴직금을 위해 1년을 다니고 있을 테니 우리 한번 버텨보자 ‘라는 그 말을 되새기며 자주 떠올리게 되었고, 당장 그만두겠다는 마음은 참을 수 있게 됐다. 그래서 00 홈쇼핑에서의 4년이 넘는 시간은 경력으로 남길 수 있었다. 그래서 가끔은 고객과의 시간들이 즐겁기도 했었고, 게시판에 나를 칭찬하는 글도 올라오는 날도 있었다. 그 외에도 인센티브를 받는 달도 자주 있어 퇴사생각을 안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놈의 인센티브를 위해 일하던 나는 몸을 망치게 하는 늪에 빠져 있다고 깨닫는 순간이 왔고, 병원에 가니 성대가 부어있으며 후두염이라고 하고 목을 쉬게 하라는 의사의 진단이 나왔다. 이럴 땐 의사 선생님 말씀을 잘 들었었다. 그래서 난 퇴사를 했었고, 퇴직금으로 쉬면서 첫 배낭여행을 가게 되었다. 그 여행은 정말
열심히 일했던 나에게 주는 선물이었고,
여전히 쌓여있는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한 방법 중 하나였다.
배낭여행을 다녀온 후 이번에 나는 내가 갑이 되는 업무로 뛰어들었다. 왠지 그 전의 일과는 다른 업무라 떨리기도 했지만 느낌이 괜찮았다. 그런데다 재취업은 수월했다. 이 업무를 하는 콜센터들은 대부분 추천 입사를 선호했기에 나는 간단한 면접 후 바로 입사하게 되었고, 처음 1년은 내가 생각한 느낌의 업무였다. 그래서 5년 넘게 아웃바운드로 채권업무를 하게 되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입이 굉장히 거칠었고,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듣지도 못했던 욕들을 하고 있다는 게 정말 뻔뻔하고, 언제나 당당한 그들의 대답에 매일 매 순간마다 어이가 없었다. 그래서 이때는 어떤 해소법도 통하지 않았다. 그저 힘들게 인센티브 30만 원을 타기 위해 모니터링 점수는 높이기 위해 애쓰기만 했다. 그러다 보니 매 콜마다 나는 고객들을 위한 시스템으로 '회사에선 욕받이로 쓰는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나에게 스트레스는 매일 가득 찼고, 아무리 삭제해도 남아있는 스트레스들은 남아있다 못해 부풀어 있었다. 그러던 어느 순간 '아무리 노력해도 그 어떠한 해소법도 없다는 걸 깨닫자' 난 또 도망치고 말았다.
나 자신에게 ‘출구가 보일 때 나가자’라고 말하며 말이다.
어느 날 문득 가까운 미래에는 '텔레마케터 이 일을 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래를 위해 또 다른 무기가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자 자격증을 따게 되었다. 2개의 자격증을 딴 이후의 난 든든해졌고, 뿌듯했으며 노후자금이라도 마련해 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어쩌면 이때만큼은 뿌듯함이 주는 작은 양의 스트레스라도 해소되는 것 같았다. 그래도 늘 하던 일은 계속해야 하는 직업이니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 ‘채권업무'에서 만나는 고객보다는 '고객센터'에서 만나는 고객들이 응대하기에는 더 편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일은 '스트레스가 기본인 감정노동자'이다. 그리고 정말 매일 만나는 민원고객들을 안 만날 수 없기에 퇴근 후 집에 도착하는 시간 내내 잊으려고 노력한다. 절대로 퇴근해서 집에 오는 시간까지 언급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그저 실패해도 잊을 수 있다고 생각하며 노력한다. 점점 노력하다 보면 어느새 그다음 날의 새로운 진상들을 견딜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고객들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고, 다른 일들에도 스트레스 없는 일은 없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러다 보니 어느 기업의 VIP고객들을 만나게 됐고, 성심 성의껏 응대를 하다 보니 '가수 혹은 보육교사들'이 생기는 걸리는 일도 생겼다.
어느 날 갑자기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그래서 센터장에게 보고를 했다. 첫마디는 괜찮냐는 말보다 "얘 어디로 보내지?!"였다. 사실 이런 센터장은 자주 만날 수 있어서 크게 놀랍지도 않다. 하지만 오랜만에 만나니 ‘진짜 기분 나쁜 사람이고,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고 그 사람의 말 한마디에 그만두면 내가 못난 사람이 되기 때문에 그냥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잠깐의 콜 업무를 하지 않는 부서에 있다 보니 텃세는 심했고, 더 이상 나아지지 않는 목 상태로 일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생각되어 잠시 쉬기로 했다. 그저 쉬면서 난 만약 ‘다시 일을 시작한다면 클레임에 대해서는 어떤 대안이 있을까’라는 생각을 들게 되었다. 하나는 호응어를 하지 않는 거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듣지 않는 방법이 가능해졌다. 한마디로 말해 집중해서 듣지 않는 거다. 그러다 보면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 지고, 왠지 복수하는 기분이 들었다.
또 다른 하나의 모기업의 고객센터에서는 위와 같이 해도 전체 콜이 모두 클레임이고, 회사가 잘못 처리했던 일에 대한 불만에 대해 두 달 동안 매콜마다 사과를 해야 하는 상황이다 보니 매 콜마다 사죄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 상황들이 어느새 두 달이 되어가니 어느 날부턴가 난 가슴이 답답하고, 숨이 잘 안 쉬어졌다. 그래서 병원에 가게 됐고, 다행히 의사는 공황장애는 아니지만 스트레스 때문이니 회사를 그만두고, 당분간 쉬라고 권했다. 이제 와서 얼마든지 그만두고 합격할 수 있지 않느냐는 말을 하는 지인들도 많아졌다.
하지만 ‘의사들의 진단은 항상 팔자 좋은 소리다.’라는 생각을 하며 연차를 내고, 혼자만의 여행을 다녀왔다. 이 여행은 타이밍이 너무 좋았던 시기에 다녀온 여행이었고, 스트레스도 완벽한 해소시킨 방법 중 하나였다. 다행히 연차는 아껴놨기에 아주 요긴하게 쓰이긴 했다. 그리고 스트레스는 어쩔 땐 피하는 게 약이니 쉬었다 다시 시작하는 것 또한 해소법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이젠 상담일부터 다른 업무까지 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일이 돼버렸지만 ‘텔레마케터’라는 직업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오랫동안 잘하기 힘든 업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첫 콜을 시작할 때 참고하면 좋을 듯하다. 또한 나만의 무기는 항상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다.
점점 이 일을 시작하는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진 요즘 사람들을 위해 해 줄 수 있는 말은 긴 세월을 잘하려고 한다면 꼭 몸이 상하게 된다. 그리고 아무리 AI시대라 텔레마케터가 줄어든다고 해도 100세 시대에 그럴 수 없다는 걸 생각하며 000에서 구직란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파견사를 잘 보고 선택하며 여러 가지 분야가 있으니 본인에게 맞는 곳에 빠른 시간 내 입사하시길 바란다. 절대 만만하게 시도하지 말고, 시작 싶다면 369 법을 생각하며 최대한 빨리 시작해서 잘 적응해 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