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우리나라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을 수상 해서 온 세상이 떠들썩하다. 나는 아직 한강 작가의 책을 읽어보지는 못했지만 노벨문학상까지 받았다고 하니 그 작품들이 궁금하다.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듯 한강 작가의 책이 벌써 100만 부 이상 팔렸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수많은 미디어 속에서 쏟아져 나오는 한강 작가 열풍
이 열풍은 단지 한강 작가로 끝이 아니다. 독서 열풍, 글쓰기 열풍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나 또한 쓰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아마 그 시절쯤이었던 것 같다. 바로 중학교 2학년 국어 시간의 일이다. 다른 국어 시간과 달랐던 특별했던 그 시간을 나는 잊지 못한다.
첫 수업 시간 선생님께서 아무 말씀 하지 않으시고 조용히 칠판에 무언가를 쓰기 시작하셨다.
초상 / 조병화
내가 맨 처음 그대를 보았을 땐
세상엔 아름다운 사람도 살고 있구나 생각하였지요
두 번째 그대를 보았을 땐
사랑하고 싶어 졌지요
번화한 거리에서 내가 다시 그대를 보았을 땐
남모르게 호사스런 고독을 느꼈지요
그리하여 마지막 내가 그대를 만났을 땐
아주 잊어 비리 자고 슬퍼하며
미친 듯이 바다 기슭을 달음질쳐 갔습니다.
바로 조병화 시인의 '초상'이란 시이다.
"이 시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야. 나중에 너희들이 결혼해서 명절에 시댁 가서 시어머니가 아가야 전 구워라 하시면 제일 비싸 보이는 생선 뒤적뒤적 굽다가 망가뜨려. 그러면 시어머니가 절대 일 안 시킨다. 어떻게 그리 잘 아냐고? 내가 바로 그 며느리거든"
선생님은 왜 그때 전을 굽는 대신 이 시 한 편을 읊조리라고 말씀하셨던 걸까? 더군다나 사랑을 노래한 시인데 이걸 시어머니 앞에서 읊조리라 하니 조금은 엉뚱하고 특이하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하지만 칠판에 채워져 담긴 길지 않은 시 한 편은 아직은 사랑을 잘 알지 못하는 나에게도 큰 울림을 주었다. 짝사랑하는 이를 바라만 보다 만나서 고백하고 이어 실연의 아픔으로까지 이어짐을 단계별로 표현한 짧은 한 편의 시. 당시 나에게도 그랬듯 나이 드신 시어머니께도 분명 시가 전하는 울림이 클 거라 여겨 그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는 이 시를 내밀었으리라. 사랑이라는 감정을 짫은 시 한 편으로 멋스럽게 표현할 수 있음에 나는 감동받아 그때부터 쓰기 시작했다.
그냥 무조건 썼다. 친구들과 수다를 떨며 재미있었던 내용을 기억해 두었다가 쓰기도 하고. 내 맘대로 운율만 겨우 맞춘 시 같지 않은 시도 쓰고, 잠들기 전, 하교 후 틈나는 대로 형식도 없이 생각나는 대로 손 가는 대로 그냥 썼다. 쓰다 보면 나도 뭔가가 나오겠지? 하는 마음으로 글을 썼다. 써 나가다 보니 나도 작가가 될 수 있겠다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기도 했다. 그러나 학업에 열중하다 보니 글을 쓸 시간적인 여유도 마음도 점차 사라져 갔던 것 같다. 돌이켜보면 핑계지만 말이다.
그 후로 나는 글을 쓰겠다는 생각을 딱히 한 적은 없다. 다만 대학교를 졸업하고 첫 직장에서의 힘든 일상을 나는 일기로 쓰기 시작했다. 일기 쓰기가 나의 글쓰기였다.
그리고 만나게 된 라디오. 먼 거리의 직장 탓에 운전을 시작하면서 출퇴근 시간에 듣게 된 라디오 방송에 보낸 편지글이 우연히 소개되면서 나는 라디오를 더 좋아하게 되었다. 나의 편지글이 라디오에 소개됐을 떼의 그 기쁨이란, 다시 무언가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도 나는 종종 라디오에 글쓰기를 이어나가고 있다. 스마트폰의 보급화로 문자나 어플로 아주 간단한 짧은 글쓰기를 해 나가고 있다.
내가 즐겨 듣던 라디오 프로그램 중 하나인
'아름다운 이 아침 김창완입니다'는 많은 사연과 에피소드로 방송이 되지만 나는 그중에서 아저씨가 이야기하는 오프닝 멘트를 참 좋아했다. 그날그날 아침 아저씨가 느낀 것, 생각한 것, 날씨 같은 다양한 소재로 아침을 여는 그 멘트는 나의 아침 기분에도 영향을 미칠 정도였다. 방송에서 그 오프닝 멘트를 아저씨가 직접 쓰신다고 했는데 어느 날은 귀찮아서 미리 작성해 놓기도 해서 반성한다고 하셨다. 짤막한 오프닝 멘트라고 해도 매일매일 글을 쓰는 일은 분명 쉽지 않은 일일 것이다. 그것도 20년을 꾸준히 준비해 오셨다는 게 존경스럽게
까지 느껴진다. 그만큼 작가가 되는 길은 어려운 것 같다. 글로써 다른 이들에게 울림을 주고 메시지를 전해 준다는 것. 대단한 노력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아저씨를 보며 나중에 내 글도 방송을 통해 소개되어 사람들에게 비타민 같은 존재로 다가갈 수 있다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게 방송작가로의 꿈을 꾼 적도 있다.
꼭 방송작가가 안되더라도 요즘은 작가가 되는 길은 다양하다 한다.
SNS나 유튜브, 브런치 어플 같은 다양한 경로로 누구나가 작가가 될 수 있는 시대이다. 그렇지만 나의 블로그는 개설한 지 15년째. 서로 이웃이 5명이다. SNS나 유튜브도 게시글이 없이 그저 구경꾼으로 살아왔기에 나의 작가 도전이 쉽지만은 않았다. 나도 쓸 수 있을까? 내 글에 단 한 명이라도 좋아요를 달아주고 공감해 주는 날이 오긴 할까? 이런 걱정부터 미리 앞선다. 가을이 깊어지면서 내 마음속 글쓰기 생각은 더 꿈틀거렸다. 하지만 어떻게 써야 하는지 뭘 써야 하는지 나는 아직도 잘 모르겠다. 글쓰기 작가라는 꿈은 그냥 이대로 내 마음속에 묻히고 포기해야만 하는 것일까?
그런 생각으로 일상에 묻혀 살던 어느 날
글쓰기 성인반 모집 소식을 접했다. 내 글쓰기에 등불이 되어줄 거라는 기대감이 생겨 반가웠다. 하지만 할 수 있을까? 하는 망설임과 두려움이 앞섰다. '이 나이에 감히'라는 내 마음속 외침에 고민하고 또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아들에게 슬쩍 물어보았다.
"엄마 글쓰기 수업받아 볼까?"
"해봐. 엄마도 잘할 것 같아."
할 수 있을 거라는 아들의 말에 나는 용기를 얻었다.
나의 글쓰기 수업은 새벽 6시에 시작된다. 기대감과 설렘. 약간의 긴장감으로 한 시간 일찍 5시에 눈을 떴다. 수업 첫날 아들도 아침 일찍 일어나 엄마의 글쓰기 수업을 기대하며 응원해 주었다. 하지만 수업 후 나는 곧바로 글을 쓰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고 글쓰기 숙제했냐는 아들의 말에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글을 쓰기 시작했다.
"엄마 다 쓰면 나 보여줘"
"엄마 부끄러운데"
괜찮아 나도 쓰잖아"
아들과 대화하며 글을 쓰고 아들에게 보여줬다.
"엄마 선생님께서 잘했다고 칭찬하시겠다. 엄마 열정이 대단해"
나의 첫 독자, 아들의 칭찬에 나는 절로 웃음이 나왔고 더 잘할 수 있다는 용기가 생겼다.
글을 쓰기 시작하고 글쓰기 수업을 하면서 글을 쓴다는 것이 때론 힘이 들고 어렵게도 느껴지지만 쉽지 않은 나의 노력이 한 장 한 장의 결과물로 채워져 가는 내 글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진다.
내 첫 작품음 아주 형편없는 작품은 아니라고 나는 감히 말하고 싶다.
왜냐하면 시작이 반이란 옛말처럼 나는 지금 글을 쓰고 있으니까. 이렇듯 차근차근 쓰다 보면 분명 내가 잘하는 분야를 발견하게 될 것이고 지금 나의 글쓰기 시작이 새로운 내 인생의 시작이고 도전이며 성장해 가는 계기가 될 것임을 나는 무한의 긍정적 사고로 믿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