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복지사 자격증 취득 후 강사로.
사회복지사라면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 들어가 소통하며 해결해 주는 직업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경찰 못지않게 몸으로 뛰는 일들을 하는 곳이라고 상상했다. 막상 실습을 통해 사회복지사의 업무를 들여다보니 마음으로 세상을 위로하고 공감하며 도와주는 것이 다가 아니었다. 이외에 서류작성의 무한굴레가 그들을 힘에 부치게 하는 것을 보았다. 프로그램 제안, 기획, 목적 등 서술되어 있는 프로포절 작성은 모든 과정이 세부적으로 나누어 기술해야 했고 아주 구체적으로 작성되어야 했다.
" 세상에 쉬운 게 하나도 없구나."
따뜻한 마음과 선한 동기면 충분할 것 같았지만 뜨거운 열정과 차가운 머리, 진득한 엉덩이 힘이 사회복지사에겐 필요했다. 사무실에 진득하니 앉아 있는 것을 못 견뎌 총장실이며 사무실 조교 자리 박차고 나온 나에게 사회복지사 업무는 물음표를 던져주었다.
' 내가 원하던 일이 맞을까?'
하지만 실습과정 중 복지관 이용인들과 만나는 일은 설레고 즐거웠다.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있는 이용인들의 삶은 나에게 용기와 위로를 건넸다.
실습을 마치고 실습일지와 과제 떡제본을 완료해 서류와 증명사진을 협회로 발송했고 잊고 지내던 어느 날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이 도착했다. 보건복지부에서 발행한 우아한 금박 테두리를 두른 국가자격증이라니 은은한 미소를 띤 증명사진 속의 나는 사회복지사 그 잡체였다.
'이제 취업을 해봐야겠어. 과연 풀타임 근무를 견뎌낼 수 있을까?'
아직 자녀가 초등생이었으니 일 년에 한두 번씩은 전염병으로 인해 결석해야 하는 날들이 있었기에 그 점이 가장 마음에 걸렸다. 파트타임 일이 있다면 딱 좋을 텐데. 사회복지 쪽에 파트타임을 구하는 조건은 쉽지 않았다.
마흔에 내가 과연 먹힐 것인가? 풀타임이든 파트타임이든 일단 문을 두드려보기로 마음먹었다.
쟁쟁한 젊은이들을 제치고 한 번에 합격한 장애인복지관 실습이 대단한 경험이라도 된 듯 사회복지사 취업의 문이 그리 높아 보이진 않았다.
가만있어보자.. 젊은이들이 어떻게 자기소개를 했더라. 단체 면접의 기억을 되짚어 이력서를 정성껏 작성했고 포부를 갈아 넣어 자기소개를 완성했다. 마음이 중요한 거 아니겠어? 이쯤이면 무경력 아줌마일지라도 내 열정과 포부만큼은 통하리라 믿고 여러 사회복지재단 구인공고에 이력서를 접수했다.
어.. 이상하다. 내 연락처가 잘 못 기입된 건가? 왜 답신이 없지?
이력서를 제출 한 곳은 한두 군데가 아니었다. 내가 메일을 잘못 발송했나 싶어 메일주소를 다시 확인해 보아도 틀린 부분이 없었다. 설마 모두 서류 탈락인 건가? 면접 기회라도 있었다면 진심으로 열심히 일해보겠다고 눈을 반짝거리며 얘기할 준비가 되어 있었는데 서류에서 모두 탈락이었다.
40줄에 들어서 이제 막 싹을 틔우기 시작한 나의 자존감은 끝도 없이 곤두박질쳤다.
아이 어릴 때 만났던 친구 윤정이가 연락해 왔다.
아이들이 유아일 때부터 여기저기 다니며 부지런히 일하던 워킹맘 윤정이는 타지로 이사해도 새로운 일에 정착했다는 소식은 들었다.
" 요즘 어떻게 지내? 나는 오전에는 NGO 단체 시민교육강사로 활동하고 있고 오후에는 초등학교에 협력강사로 나가고 있어~ 너는 일할 필요 없잖아, 그치? 잘 지내고 있는 거지?"
자기는 경북, 지방에서 자랐고 나는 서울에서 자랐다는 이유만으로 '서울사람은 부자'라는 프레임으로 나를 당황시켰던 윤정이는 여전히 나를 부잣집 마나님으로 대우한다.
" 잘 지내고 있어. 사회복지사 2급을 얼마 전에 따서 이력서를 넣고 있는데 취업이 쉽지가 않네. 나도 일 시작해보려고 하고 있어."
" 그래? 네가 일을 한다고? 그럼 너 관심 있으면 내가 하는 일이 참 괜찮거든~ 소개해 줄 테니 시민교육 해볼래? 너라면 잘할 수 있을 거야. 내가 우리 지부 간사님께 말씀드려 볼게. 좋은 사람이 있다고. 너 진짜 잘 어울리고 잘할 거야 "
그렇게 윤정이의 소개로 내가 살고 있는 NGO 단체에 이력서를 발송했고 면접일정을 거쳐 시민교육강사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이번에는 개별 면접이었다. 면접 과정에서 느꼈던 것은 장애우봉사를 오랜 시간 지속해오고 있던 것과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던 것이 플러스 요인이 된 것 같다.
교육을 받고 시연강의를 거쳐 초등학교에 세계시민교육 강사로 일하게 되었다.
세계시민교육 강사 일은 주로 거주 지역 초등학교에 파견 나가 어린이들을 교육하는 일이다.
초등학교에서 본사로 수업 의뢰가 들어오면 간사님이 강사들의 스케줄에 맞게 일정을 배정해 주는 식이었다.
풀타임 근무가 부담스러웠던 나에겐 적당한 일자리였고 아이들과 만나는 일이라 무척 보람되고 즐거웠다.
수업에 관한 모든 자료는 본사에서 제공되었는데 전문가들의 수고와 노력이 더해져 퀄리티 좋은 강의자료들이었다. 강의 내용까지 모두 준비해야 하는 부담을 덜 수 있어 처음 시작하는 강사에게 좋은 기회였다.
나는 그저 강의 내용을 그 내용을 잘 숙지하고 나의 경험들과 함께 녹여내면 40분을 꽉 채운 알찬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사는 지역의 거의 모든 초등학교에 가봤을 정도로 다양한 학생을 만나볼 수 있다는 점, 학교마다 학년마다의 특성, 담임교사에 따라 다른 반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도 흥미로웠다.
'사회복지사라도 따두면 나중에라도 쓸 수 있겠지?'로 시작했던 자격증 취득은 나를 강사의 길로 인도해 줬고 꼬리에 꼬리를 물고 연결되어 열리는 새로운 세계는 상상해 본 적 없던 일들이었다.
40대, 무수히 많은 아이 친구 엄마들을 거쳐 나도 중학생 엄마가 되었다.
직장맘, 전업맘, 직장맘에서 전업맘이 된 엄마, 전업이었다가 직장맘이 된 맘, 일을 하고 싶지만 용기가 없어 망설이는 맘. 아이가 중학생쯤 되어보니 전업만을 추구하는 엄마들의 수가 점점 줄어들었다.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보자며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는 엄마들이 늘어났다. 그러나 아이가 자란 만큼 엄마도 늙어 이제는 40대 중반의 나이. 생산직이라도 나가보겠다며 원서를 넣어보지만 그것도 마음대로 되지 않을 나이였다. 엄마들을 불러주는 곳이 별로 없어 설 자리가 없다.
내 계획대로 생각대로 되지 않는 일들이 훨씬 많다는 것을 아이들 키우며 알게 되었다.
때로는 계획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있을 때 생각지도 못한 다른 길이 열리기도 한다.
눈앞에 보이는 기회가 있다면 한번 도전해 보자.
그 기회가 나를 생각지 못한 곳으로 데려다줄 수도 있을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