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증이라도 준비하자.
남편의 논문심사가 통과되어 학위를 취득할 수 있었고 타지 생활도 2년 반 만에 마침표를 찍었다.
지금의 도시로 이사를 했을 때는 아이 둘 다 초등생이었고 원주에서 일하느라 못 누렸던 학부모 반모임에도 나가고 동네 엄마들과도 교류하며 부지런히 전업맘의 대열에 합류했다. 우린 아이들을 등교시키고 옷 대충 걸쳐 입고 슬리퍼를 끌며 집 앞 카페로 옆집 엄마네로 부지런히도 커피타임을 열었고 전날의 한숨과 고충을 토하는 성토의 시간을 가졌다.
전업맘이니 집에서 애들 공부시키며 잘 키워보자 결심했다.
한 두해 지나 둘째도 어느덧 3학년이 되었고 슬슬 삶에 무료함이 느껴졌다.
아르바이트라도 해볼까 싶어 기웃거려 보지만 재취업의 세계는 만만치 않았다.
결혼 후 꾸준히 했던 거라면 교회에서 사랑부(장애우부서) 교사를 10년 정도하고 있다는 거 하나였다.
혹시 사회복지사를 따면 장애우 관련 일을 할 수 있으려나? 사회복지가 앞으로는 괜찮다고 들은 거 같은데..
과정이 어떻게 되나 알아나 보자 싶어 사이버대학에 전화를 걸었다.
“ 네?? 오늘 까지라고요? ”
오늘은 11월 마지막날.
다음 달부터는 법이 바뀌어 이수해야 하는 학점이 늘어난단다.
“ 아니, 오빠! 지금 통화돼? 그거 있잖아, 아니 오늘이 마지막 날 이래.
" 뭐가? 알아들을 수 있도록 말을 해야지"
" 사회복지사 2급 과정 말이야.
오빠 나중에 퇴직하고 뭐 할 거야? 이거라도 있으면 뭐라도 하지 않겠어?
지금 결정 안 하면 내일부터는 이수 과목이 늘어나서 비용도 오르고, 시간도 오래 걸리고, 뭐더라 그거..
아, 맞다. 실습시간도 늘어난대~ 그래~~ 오늘 빨리 결정해야 해, 어어, 알았어. 같이 등록할게!”
자존감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혼자는 시작할 엄두가 나지 않았다.
남편을 설득해 1년이 좀 넘는 기간 동안 남편과 함께 동지애로 수업과, 과제, 시험을 무난한 게 마무리할 수 있었고 실습만 마치면 사회복지사 2급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실습처는 개인이 구해야 한다고 했다.
남편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기에 실습을 미뤄놓기로 했다.
나는 우선 동네에 있는 실습기관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실습생을 뽑는 기관이 있는지 확인했다.
내가 살고 있는 시에는 큰 사회복지 시설이 두 군데 있었는데 코로나 기간이라 실습생 인원을 반으로 줄여 뽑았고 실습 시간도 반으로 줄었고 나머지 실습시간은 과제로 대체되었다.
우선 두 군데 원서를 넣었고 장애인복지관에 서류가 통과되어 면접 일정이 잡혔다.
이 얼마 만에 면접인가. 검정 슬랙스에 검정 재킷을 입고 면접장소에 도착했다.
20대 앳된 얼굴을 한 면접자가 예닐곱 명, 나보다 나이 많으신 한분 이렇게 면접자리에 앉아 8명 단체면접이 시작되었다. 처음 겪는 단체 압박 면접에 긴장감은 고조되었다.
제일 끝에 앉은 청년부터 지원동기를 말하는데 줄줄 외워온 본인의 소개와 지원동기는 완벽했다.
'아, 요즘 면접준비는 저렇게 하는 거였구나.
저렇게 패기 넘치는 젊은 애들하고 나하고 한자리에 있다니, 난 어렵겠네.'
네 번째 내 순서가 돌아왔고 청년들이 줄줄 늘어놓은 이야기들을 참고해 어떤 식으로 말해야 하는지 파악했다. 40을 앞둔 아줌마가 20대 청년들보다 조금 나은 점이란 뻔뻔함을 탑재했다는 것.
준비했다는 듯 청년들의 스토리처럼 번지르르 포장해 뻔뻔스럽게 내 이야기를 해나갔다.
면접관님들의 개인 질문 시간이 있었고 나에게는 교회에서 오랜 시간 봉사했던 경험에 대해 질문하셨다.
사회복지사 채용도 아닌 2주 실습할 실습생 채용 면접이 이렇게도 힘들고 힘들다니..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면접을 마치고 교육원수료자와 4년제 사회복지과 졸업예정자와의 간극이 느껴져 허탈감이 몰려왔다. 그리고 며칠 뒤 4명의 실습 합격자 중에 내 이름이 있었다.
2주간의 힘든 실습을 마무리하며 마지막날 개인 프로그램 발표 시간에 발표를 마치자 면접관이자 사무국장님께서 말씀하셨다.
" 교육원 출신은 제가 있으면서 처음 뽑아봤어요.
우리는 지금까지는 사회복지과 출신만 실습을 받았었어요.
그런데 교회에서 10년간 장애우 부서에서 봉사했다는 이력 때문에 뽑아본 거였고
실습 잘 마무리하셔서 저도 기뻐요. 이제 교육원 출신도 뽑아봐도 되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
2주 실습을 하면서 봤던 사무국장님의 빛나는 열정과 장애우를 향한 애정은 나로 하여금 많이 반성하고 돌아보게 하는 값진 시간이었다. 사회복지사님들이 이용인들을 바라보는 시선과 언어에는 존중이 깃들어 있었다.
그런 선한 마음들이 모여 이용인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시 세상에 나아갈 용기는 얻는 것 같았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마음을 다하면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반짝 빛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