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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쉴만한 물가 Nov 01. 2024

경단녀, 재취업의 그길

지방대 공대 여자사람입니다 1 

경단녀 라면 결혼과 출산으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을 일컫는 말이지만 애초에 경력이랄 것도 없었다.

부모님은 딸의 학창 시절 성적을 알고 계시니 큰 기대는 없으셨다. 전문대 나와서 적당한 회사에 취업하기를 바라셨다.

나는 조용히 제 갈 길 가는 은근히 뒤통수 때리는 스타일.

4년제에 대한 환상에 빠져 전문대학에는 원서도 넣지 않았다.

 캠퍼스의 낭만이 숨 쉬는 4년제 대학이 가고 싶었다. 

모의고사 점수에서 영역별로 10점씩만 오르면 인서울이 가능했기에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시험장에 들어갔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일은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 대충 성적에 맞춰 캠퍼스가 넓은 충남권 대학에 입학했다.

낭만을 꿈꾸며 입학한 대학은 기숙사 생활과 함께 시작되었다.

학점을 관리한 덕에 좋은 성적으로 장학금을 받았고, 학교 도서관에서 모집하는 근로장학생을 신청해 틈틈이 도서관에서 근로도 했다. 거기에 착실해 보이는 인상이 한몫했던지 기숙사 사감님의 신뢰도 얻을 수 있었다.


 ‘인상’ 하면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캠퍼스를 오가며 마주쳤던 훈훈한 외모의 복학생 오빠. 같은 과는 아니라 그의 나이나 이름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그가 풍기는 분위기에서 제대 한지 얼마 안 된 복학생이란 걸 알 수 있었다. 공대만 모여 있는 캠퍼스라 그럴 테지. 하나같이 순박한 동네 삼촌 같은 느낌의 사람들이 우굴거리는 곳에서 그는 단연 돋보였다. 길지도 짧지도 않은 단정한 상고머리에 면바지와 셔츠를 즐겨 입었던 그는 교회오빠 같은 선한 인상을 가져 오며가며 마주칠 때마다 흘끔거리며 곁눈질하게 만들었다.  



미션스쿨이었던 캠퍼스 안에는 교회가 있었다. 교회의 외관은 유럽의 오래된 성당을 축소시켜 놓은 듯 정갈하고 근사했다. 교회에 잠시 들렀던 그날, 들어가기 위해 교회 입구의 커다란 나무문을 밀었을 때 반대쪽에 문을 당기는 사람이 있었는데 바로 그 사람이었다. 우린 단둘이 정면으로 마주했다. 너무 가까웠던 그와 나 사이의 거리에 당황한 나는 속마음을 들킬세라 뒤로 물러섰고 그도 뒤로 물러서 나에게 길을 내주었다. 후훗. 그는 배려가 몸에 밴 사람이었다.  고개를 살짝 숙여 감사를 표하고 재빨리 그 문을 빠져나왔다. 

휴... 갑작스러운 긴장감이 지나고 한숨이 저절로 내쉬어졌다. 

뒤에서 누가 부른다.  

    

“저기요.” 

“네, 저요?”     

“혹시...  

 97학번이세요?”

“아닌데요”  

   

난 00학번이다. 내가 3학년 때였으니 여학생이 휴학을 몇 차례 하지 않는 이상 97학번은 학교에서 보기 힘든 학번이었다. 아, 대학원생 조교 언니들이라면 가능했겠지. 

보통 모르는 남자가 말을 걸면, ‘ 남자친구 있으세요?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뭐 이런 거 아니었던가. 아니, 내가 97학번이었으면 어쩌려고 그랬니. 


여하튼, 나는 조숙해 보이는 인상 좋은 학생이었다.    



  

기숙사 생활을 하는 많은 학생들은 과제를 핑계로 저녁 외출을 시도했었다. 하지만 사감님은 기숙사 사감이라는 캐릭터에 걸맞게 호락호락하지 않으셨다. 그러나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나였다. 왜 그리 관대하셨을까? 외출 요청을 드리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다녀오라며 의심 없이 믿어주셨다.

  사실 내가 저녁마다 외출한 이유는 따로 있었는데 바로 동기 남자애들의 술대적 요청 때문이었다. 대학에 와서 뜻밖의 자아발견이라면, 술이 꽤나 잘 받는 몸이란 걸 알게 된 일. 학교 앞 닭볶음탕집이 우리의 아지트였는데 주로 참이슬을 마셨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않았던 시절, 2차로 편의점에서 구입한 카스 병맥주를 각 1병씩 들고 캠퍼스 잔디광장으로 가 입가심을 했다. 나가떨어진 동기 남자애들을 자취방에 들여보내고 새벽에 떨어지는 별똥별 바라보며 얌전히 기숙사 방에 들어가기를 일삼던 시절. 밤낮으로 이중생활을 하던 중 사감님으로부터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우리 학교 총장실에서 아르바이트할 4학년 학생을 뽑는데 기숙사에서 행실이 바른 학생을 추천 달라고 연락이 왔단다. 성적도 좋고 믿을만한 학생에 나를 추천한다는 거였다.      


“ 감사합니다, 사감님. 저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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