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꿈

태훈, 가브리엘 천사를 만나다

by 김정룡

"가브리엘!"


그의 이름을 부른다. 요즈음 밤만 되면 어김없이 가브리엘을 만난다. 그는 천사다. 이 초현실적인 상황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누구에게 물어봤다가는 미친놈 취급을 받겠지.. 아니, 내가 정말 미쳐가고 있는지 모른다.




얼마 전부터 이상한 꿈을 꾸었다. 너무나 또렷한 꿈이었다. 그 꿈속에서 가브리엘을 만났다. 지극히 평범하게 생긴 녀석은 자신이 천사라고 했다. 천사라고? 천사라면 날개라도 있어야 하지 않나?


나는 원래 천사니 악마니 하는 것에 관심이 없다. 영화 속에서 천사가 나타나, 누군가를 구하고 홀연히 사라지는 스토리는 들어본 적 있다. 그런데 내가 천사를 만나고 있다니.. 나도 믿기 어려웠다.


처음 며칠은 그저 헛꿈을 꾸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게 너무나 생생했다. 그의 음성도, 얼굴 표정도, 마치 고화질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의 의식은 명료했고, 내 몸은 중력이 없는 것처럼 공중에 떠 있었다.


'혹시 내가 정신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정신을 차려야 해.' 스스로 경계심을 높였지만, 그것과 상관없이 꿈은 계속되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꿈꾸는 동안 무섭거나 불편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가브리엘은 친절했고, 주로 나와 일상에 대해 물어봤고, 나는 대체로 성의 없이 대꾸했다. 가브리엘은 그런 나를 뭐라 하지 않았다.


사실 나는 최근에 백수 생활에 꽤나 재미를 붙이고 있었다. 오늘도 엊저녁 먹다 남은 배달 음식을 안주삼아 소주로 해장술을 했다. 오후에는 웹툰을 보거나 인터넷 게임으로 하루를 보냈다. 주변에서는 내 인생이 어떻니, 시간이 아깝지 않니 하는 어쭙잖은 조언을 하는 인간들이 있지만, 나는 가볍게 무시했다. 누구는 백수가 되고 싶어서 되었겠는가? 이왕 이렇게 된 거 좀 즐기자는 거다.


나도 한때는 잘 나갔다. 수도권 소재 대학교 컴퓨터학과를 졸업했고, 학교 때 배운 프로그래밍 실력으로 제대 후 안정적인 직장도 얻었다. 그런데 어쩌다 직장에서 퇴사를 당했고, 쉬기 시작한 지 1년. 이제는 실업급여도 끊겼고, 여자 친구와도 헤어졌다. 후론 어머니가 부쳐주는 월세와 용돈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다. 가끔 여유 있게 돈을 보내 주시면 술값으로 기분 좋게 탕진했다.


사실 나는 퇴사 후 몇 번의 취업실패를 겪었다. 전 직장에서 사고 치고 잘린 게 소문이 났는지, 어떤 곳도 나를 원치 않았다. 취업이 안되니 자신감도 떨어지고, 지금은 그저 집안에 틀어박혀 알량한 자존심을 지키며 지내는 게 일이었다.


오늘 꿈에 나타난 가브리엘은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썩 기분이 좋지는 않았다. 천사라면 무슨 신통력을 써서 직장이라도 찾아 주든가.. 값싼 동정은 필요 없다.


"가브리엘, 오늘은 또 무슨 얘기를 하고 싶은 거야?"


"태훈 님! 저는 당신을 만나는 것을 좋아합니다. 당신과의 대화도 즐겁습니다. 그런데, 태훈 님께서 금쪽같은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이 너무나 안타깝습니다."


"무슨 소리야? 왜 또.. 갑자기.. 내가 뭘 어쨌다고?"


"당신은 몇 주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만 틀어박혀 있습니다. 아르바이트도 알아보지 않고 어머니가 주신 용돈만 축내고 있습니다. 당신은 더 이상 직장을 찾지도, 찾을 의지도 없습니다. 더군다나 매일 마시는 술이 당신의 몸을 망가뜨리고 있습니다."


이 가브리엘이라는 놈은 오늘따라 잔소리가 많다. 그래서 뭘 어쩌란 말인가.. 나도 처음부터 이러지는 않았다. 부모님께는 좀 미안하지만, 이제는 백수 생활에 적응도 하고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가브리엘… 내 인생은 내가 알아서 해.. 왜 네가 내 걱정을 하는데? 그사이 말은 안 했지만, 내 인생에 끼어들고 싶어 하는지 모르겠어. 도대체 왜 그런 거야?"


가브리엘은 갑자기 생각에 잠겼다. 잠시 후 정색을 하며 말했다.


"태훈 님, 혹시 수호천사라고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제가 태훈 님의 수호천사라는 생각을 해보시지는 않았나요?"


이제껏 자기가 천사라고 뻥을 치더니, 이제는 그것도 모자라 나의 수호천사란다. 자다가 소가 웃을 일이다.


"가브리엘, 네가 천사라고 주장하는 것도 믿기 어려운데, 네가 나와 무슨 상관이 있다고 나의 수호천사라는 거야?"


"사실 저는 얼마 전 천사장 회의에서 당신의 수호천사로 임명받았습니다. 저의 자격과 태훈 님과의 관계 등을 면밀히 심사해서 이루어진 결정입니다. 가브리엘이란 이름도 제가 수호천사로 임명될 때 받은 천사 명입니다."


나의 꿈이 점점 더 이상해지고 있다. 꿈이 하도 생생해서 나름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가브리엘이 나의 수호천사라고 한다. 웃기는 소리다. 말도 안 되는 얘기로 나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다. 나는 가브리엘의 진짜 정체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천사인지 아닌지 시험해 보고 싶었다.


"그래, 가브리엘… 네가 진짜 천사고, 나의 수호천사라고 쳐. 그럼 너는 하늘나라에 있는 하느님도 좀 만나 봤겠네? 그 모든 걸 다 할 수 있는 전능한 하느님 말이야…"


"물론이죠…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은 아니지만, 하느님과 소통하고 있는 것은 맞습니다."


"그래? 그럼 하느님이 왜 쓸데없이 인간을 만들었는지 좀 물어봐 줄 수 있어? 하느님은 아쉬운 게 없으실 텐데, 왜 나 같은 백수를 만들고, 하루하루 먹고살기 힘들게 만들었느냐 말이야? 심심하셨나? 아니면 장난으로 만들었나?"


나는 평소의 불만을 담아 가브리엘에게 질문을 던졌다. 가브리엘도 놀랐을 것이다. 하느님이 진짜 있기나 한가? 나는 가브리엘이 뭐라고 대답할지 궁금했다.


내가 처음으로 하느님에 대한 얘기를 들은 건 중학교 채플시간이었다. 에게 채플 시간은 그저 부족한 잠을 메꾸는 시간이었다. 그나마 기억하는 것은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혜이고, 믿기만 하면 된다는 둥, 보이스 피싱보다도 더 황당한 목사님의 말뿐이었다. 그런 말로 학생들을 꼬셔서 전도하려 했다는 게 어이없게 느껴졌다.


성인이 되어 여자 친구 따라 나갔던 교회에서도 10년 전 중학교 때와 똑같은 설교를 들었다. 그런 메시지를 가지고 누구의 인생을 구원할 수 있단 말인가? 어떻게 불행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단 말인가?


가브리엘은 잠시 심각한 표정으로 눈을 감았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민하는 듯 보였다.


"태훈 님, 좋은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그런 질문은 신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됩니다. 신이 인간을 창조한 이유.. 물론 불만스러운 게 많겠지요.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말 근본적인 질문을 하셨습니다."


이 놈은 무슨 꿍꿍이를 부리는 건가.. 마치 나의 심리를 알고 있다는 듯한 태도도 마음에 안 든다.


"태훈 님, 하느님이 인간을 만드신 목적은 분명히 있습니다. 그냥 장난으로 만든 것은 아닙니다. 새로운 생명을 만드는 일을 어떻게 쉽게 결정하겠습니까? 하느님께도 절대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 일입니다. 그런데도 사람을 만들었습니다. 왜일까요?"


그게 지금 내가 너에게 물어보고 있는 말이다. 나에게 다시 되묻지 마라. 할 말 없으면 천사 체면 내려놓고, 잘 모르겠다고 해라.


"이 얘기부터 드리겠습니다. 하느님이 어떤 분인지를 아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라는 것입니다."


그래, 모든 신들은 무섭거나 자비롭거나 하다. 그게 어떤 특별한 의미를 주지는 않는다. 그래서 어쨌다는 거냐?


"이런 하느님이 사랑이시고, 그 사랑을 완성하기 위해서 꼭 필요한 게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인지 짐작하시겠습니까?"


'그만 물어보라니까..' 나는 속으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그건 바로 사랑을 부어 줄 대상입니다."


너무나 당연한 대답이다. 그렇긴 하지, 사랑엔 상대가 있어야 되니까. 근데 신이 사람처럼 사랑할 대상을 찾아다닐 필요가 있나?


"이해가 잘 안 되시지요? 그 사랑의 대상을 찾기 위해 고민하시다가, 결국 하느님의 형상을 따른 복제품을 만드시기로 결정하셨습니다. 그게 인간이고 그중 하나가 태훈 님입니다."


슬슬 궤변이 시작되는 게 보인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자기와 비슷한 걸 만들어서 사랑한다는 게 말도 안 된다. 요즘 시각으로 보면 변태스럽기까지 하다.


"가브리엘, 내가 하느님의 복제품이라고? 나처럼 생겼다고? 하하.. 말이 안 되는 건 너도 알지? 하느님이 나를 사랑하려고 만들었으면 내 처지도 잘 아시겠네.. 그럼 쌍둥이 동생에게 돈을 좀 부쳐주시든가.."


나는 빈정거리며 말했다. 가브리엘이 삐지면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를 안 들어도 될 것 같았다.


"태훈 님, 하느님이 태훈 님께 복제해 넣은 것은 모습이 아니라 하느님의 성품입니다. 하느님을 알 만한 지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감정과, 사랑을 지킬 수 있는 의지가 포함된 하느님의 성품입니다."


가브리엘의 이야기가 지루해지기 시작했다. 천사라는 게 원래 하느님의 비서쯤 되다 보니, 하느님이 좋다는 얘기를 수백 번 하고 싶었을 것이다.


"가브리엘, 좋은 뜻으로 나를, 아니 인간을 만들었다고 쳐. 그래 봤자. 인간은 잠깐 지구상에 살다 가는 건데.. 잠깐 가지고 놀 장난감을 만드는 것과 뭐가 달라?"


이번에는 가브리엘이 답변하기 어려운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가브리엘은 갑자기 진지해졌다. 그러나 당황하거나 기분 나빠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태훈 님, 하느님의 의도는 태훈 님을 잠깐 쓰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태훈 님도 저희 천사들과 같이 한번 만들어지면 영원히 불멸하는 존재가 됩니다."


이건 뭔 소리인가? 몇 년 살다 땅에 묻힐 존재인데, 영원불멸이라니?


"가브리엘, 이게 꿈속이라고 아무 말이나 하면 안 되지.. 어떻게 인간이 영원불멸이 될 수 있어?"


"믿기 어렵겠지만, 태훈 님의 영혼은 영원합니다. 저는 지금 꿈속에서 태훈 님의 영혼과 대화하고 있습니다. 태훈 님도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선명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으십니까? 태훈 님의 영혼이 천계(天界)와 지상계(地上界)가 소통할 수 있는 영계(靈界)에 초대되었습니다. 지금 저를 만나고 있는 것은 태훈 님의 영혼입니다. 믿기 어렵겠지만, 태훈 님은 지금 유체이탈 상태로 저를 만나고 계십니다."


충격이었다. 나는 내가 미쳐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아니면 확실한 개꿈일 것이다. 요즘 스트레스가 커지다 보니 엉뚱한 꿈을 꾸다 정신 이상이 되는 게 아닌가 걱정됐다. 그러나 모든 것을 부정하기에는 감각들이 너무나 또렷했다.


"태훈 님,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그러나 태훈 님께 진실을 알려드리는 것이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어차피 태훈 님도 시간이 지나면 알게 될 일입니다. 태훈 님의 영혼이 지금 저와 대화하듯이, 사후에도 태훈 님의 영혼은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니까, 태훈 님을 임시로 만든 게 아닙니다. 처음부터 저희 천사들과 같이 영원히 살아갈 존재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모든 인생은 소중하고 무한한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다."


나는 잠시 먹먹했다. 당연히 믿기지는 않았지만, 죽지 않는다고 하니, 아주 조금은 믿고 싶었다.


"가브리엘! 내가 하나만 더 물어볼게.. 영혼 어쩌고 하는데, 몸이 늙어 땅에 묻히면 인생이고 뭐고 다 없어지는데, 영혼만 살아남는 걸 가지고 영원불멸이라고 할 수 있어? 안 그래?"


가브리엘은 아까보다도 더 비장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얘기했다.


"태훈 님, 제 얘기를 잘 들으세요. 태훈 님의 몸은 영계와 천계에 이르러서도 계속됩니다. 물론 그곳은 지구와 다른 곳이라서 몸의 형태가 바뀌긴 하지만요. 지금 인간의 용어로는 설명이 어렵습니다. 물리학에서 얘기하는 5차원의 세계 [주석: 시간을 초월하는 4차원의 공간이 무수히 겹쳐있는, 가시(可視) 우주에서는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훨씬 넘어서는 신비한 곳으로 이동할 수 있는 몸입니다.


신비한 곳이라 지칭하는 것도 충분치 않습니다. 거기는 시간과 공간을 포함한 모든 물리적 현상을 초월하는 곳이니까요. 이런 세계에서 살 수 있는 새로운 영체 (靈體)로 변신하게 됩니다. 이해가 어려우시겠지요? 믿기 어렵다는 것도 이해합니다. 제가 이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어 너무 안타깝습니다."


가브리엘의 눈빛이 너무 진지했다. 가브리엘이 오늘따라 수호천사임을 밝히고, 하느님에 대한 내 질문에 대해 매우 열정적으로 대답하고 있다. 나는 오늘따라 황당한 얘기를 늘어놓는 가브리엘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약간 고민이 되었다.


사실 빈정거리며 가브리엘을 당황시키는 게 내게 득이 될 것은 없었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이 천사놀이를 통해 내가 뭐라도 얻어 나는 게 더 현실적으로 더 중요했다. 만일 가브리엘이 나를 영혼의 세계로 불러내는 초능력 같은 게 있다면, 그 신통력을 이용해서 무언가 얻어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게 기회가 될 수도 있어. 나의 답답한 현실을 바꿔줄지도 몰라! 그렇다면, 가브리엘이 수호천사라는 걸 굳이 부인할 필요는 없어.'


내가 생각에 잠겨있는 동안, 가브리엘은 가벼운 눈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순식간에 피곤이 몰려왔다.


나는 꿈 없는 잠에 빠져들었다.


이상한 꿈이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꿔놓을 것을 상상도 하지 못한 채,



- 1화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