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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금 날개를 가진 새

브런치를 통해 이루고 싶은 작가의 꿈

by 김정룡

나의 첫 작품은 “황금 날개를 가진 새”라는 동화였다. 중학교 3학년 때였다. 나는 그 글을 고등학생인 친누나에게 보여줬다. 누나가 좋아하면 부모님께도 보여드리고 싶었다. 글을 읽고 누나는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았다. 그 어색했던 몇 초간의 순간. 좋지도 싫지도 않은 알 수 없는 표정. 무슨 말을 할지 몰라 당황했을까? 부정적인 말보다 침묵을 택했을까? 나는 실망했고, 더 이상 글을 쓰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되어 국어 시간에 강제로 글 쓸 일이 생겼다. 광복절이나 현충일이면 애국심을 고취하는 글을 써야 했다. 정부가 지정한 자유 교양서적을 읽고 독후감을 제출하기도 했다. 원고지에 또박또박 줄 맞춰가며 썼던 글들은 제법 괜찮은 상을 탔었다. 그게 내 인생의 마지막 글쓰기였다. 고3이 되어 입시에 시달리고, 대학생이 되어서는 5.18을 겪었다. 여유시간에는 통기타에 빠졌다. 문학에 대한 관심은 내 인생에서 사라졌다. 그렇게 40여 년이 흘렀다.


글쓰기에 대한 잠재적 욕망이 있었을까? 누가 강요한 바는 없지만 왠지 글을 놓지 못했다. 일기가 주기가 되고, 월기가 되어도 나는 계속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유치한 낙서 같은 노트가 여러 권 쌓였다. 그러나 제대로 글쓰기와는 거리가 멀었다.


30년 교직 생활을 마치고 은퇴를 앞둔 몇 년 동안, 무엇을 할까 고민했다. 내가 죽을 때까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일까? 짧지 않은 인생을 살다 보니, 새로운 것도, 호기심을 자극하는 것도 없었다. 늦은 나이에 애써 더 이루고 싶은 꿈도 없었다. 그저 은퇴 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내가 무엇을 잘할 수 있을까? 몇 년 전부터, 글을 쓰면 나도 모르게 순식간에 몰입해 시간을 잊는 일이 잦아졌다. 논문이나 딱딱한 제안서를 쓸 때도 마찬가지였다. 직업의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그것 때문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안에 글과 연결된 무엇이 있을까? 이게 인생의 마지막 열정을 쏟을 일일까? 그때까지도 확신이 없었다.


우연한 기회에 딸의 권고로 ‘창작의 날씨’에 습작을 게재하기 시작했다. 가능성을 탐색했다. 올린 글은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가 ‘창작의 날씨’가 갑자기 문을 닫았다. 잠시 방황했지만, 우연히 브런치 스토리를 알게 되었고, 작가 신청을 했다. 처음에는 탈락했다. 두 번째는 신청 요강을 꼼꼼히 읽고, 글을 다듬어 재신청을 했다. 다행히 브런치 작가로 초대를 받았다. 너무 기뻤다.


브런치 작가가 된 것은 은퇴 후 가장 의미 있는 일이었다. 중학교 시절, 누나에게 못 받았던 인정을 한꺼번에 받은 것 같았다. 수십 년 만에 다시 본격적인 글쓰기를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열심히 글을 썼다. 일 년 반이 지나지 않아, 시도 수필도 소설도 브런치 북으로 만들었다. 나는 마치 글이 고팠던 사람처럼 글을 썼다. 그러나, 쓰면 쓸수록 필력의 부족함을 느꼈다. 재능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수없이 다. 일단 3년 동안 열심히 써보기로 했다. 짧은 시간이지만, 내가 어떤 글쓰기를 좋아하는지, 잘 쓸 수 있는지 알아가게 되기를 바랐다.


요즈음 나는 거의 매일 글을 쓴다. 글과 노는 시간이 좋아서 쓴다. 내 삶과 생각의 일부가 시로 수필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 신기해서 쓴다. 나의 이력서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나를 기술하는 재미도 있다. 운 좋은 날이면, 나만 아는 비밀스러운 여행길에서 보석같이 아름다운 광경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 기쁨을 글로 쓴다. 공유되고 공감되면 그 기쁨은 배가 된다.


나는 최근 명함을 바꿨다. 직함에 작가라는 명칭을 더했다. 명함을 처음 받은 사람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불러준다. 글 쓰는 선배들에게 죄송하고, 필력에 비해 사치한 명칭이다. 그 명칭이 부끄럽지 않도록 열심히 글을 쓸 것이다. “황금 날개를 가진 새”의 저자가 습작가에서 출간 작가가 되는 순간, 그 동화를 다시 쓸 것이다. 황금 깃털을 가진 주변의 추앙을 받던 새가, 친구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깃털을 하나씩 내어주는, 결국은 죽음을 맞이하는 눈물겹게 아름다운 이야기를 써 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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