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밖의 무기력한 동물들
지난 토요일 오후, 상암 방면 강변북로를 지나면서 마포/서강대교 위이 끝없는 사람들의 행렬을 보게 되었다. 2Km가 넘는 다리 위를 까맣게 채운 사람들은 오후에 예정된 윤석열 대통력 탄핵소추 2차 표결에 대한 집회 참석자들의 행렬이었다. 행렬은 여의도를 향하고 있었다.
순간,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 이떠올랐다.
소설 <동물농장>은 소련 공산주의 정권의 독재 및 부패과정을 돼지들을 통해서 우화로 풀어냈지만, 60년이 지난, 현재 민주주의체제의 한국 정치상황과 상당히 유사하다.
소설 <동물농장> '장원농장(Manor Farm)'에 살던 동물들이 권력자인 농장주인 사람을 몰아내고, 모든 동물들이 평등한 농장을 꿈꾸며 '동물농장(Animal Farm)'을 운영하게 된다. 이때, 새로운 농장을 주도하는 세력은 돼지다. 그중 지적능력이 있는 돼지인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농장운영에 핵심 역할을 하게 된다. 어느 날, 나폴레옹은 자신들이 키운 개들로 스노볼을 공격해서 농장에서 몰아내고 최고 권력자로 등극하게 된다. 이후, 권력을 잡은 나폴레옹을 포함한 권력집단의 부조리는 점점 심해진다. 동물농장의 운영 원칙인 계명을 변경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어떤 동물들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로,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는 '네 발도 좋고 두 발은 더 좋다.'로 바뀐다. 결국, 권력층 돼지들은 인간이 사용하던 집에서 거주하며 두 발로 걷기도 한다. 농장 이름도 주변 농장 주인들과의 거래를 위해 다시 '장원농장'으로 변경한다.
실제, 2016년 12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가결된 후, 윤석열 검사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장을 맡으며 스타가 된다. 그 결과, 자신이 탄핵시킨 대통령과 같은 당으로 2022년 대통령이 되었다. 그리고, 정확히 8년 후 대통령 탄핵 소추안 가결이라는 같은 사건이 발생했다.
표결 결과가 발표된 후, 집으로 다시 돌아오는 길에 여의도를 빠져나오는 행렬을 보면 나는 또 생각했다.
잘 모르겠다. 나는 <동물농장>의 마지막 장면에 묘사되는 창 밖의 동물이 된 것 같았다.
<동물농장>의 마지막은 권력자 돼지인 나폴레옹이 주변 농장의 사람들을 모아 연회를 즐기는 장면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의 농장은 더 이상 <동물농장>이 아닌 <장원농장> 임을 선포하고 다 함께 건배도 하며 술을 마신다. 하지만, 카드를 치며 술을 마시던 권력층 돼지들과 사람 간의 다툼이 벌어지고 이 상황을 다른 동물들이 창밖에서 지켜보는 장면이다.
사실, 나는 창 밖에서 지켜보는 동물들처럼 누가 돼지고 누가 인간인지 분간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동물농장이 아닌, 장원농장이 계속되는 것은 창 밖에서 지켜보는 무기력한 동물들의 책임이기도 하다.
이제부터는 '정치에 관심 없어'가 아닌, 현존하고 있는 문제들에 대한 비판적 사고와 미래의 삶에 대한 높은 안목을 갖는 연습을 해야겠다.
추가) 최근 롯데리아 테러는 대중을 지배하는 것을 즐기는 권력층이 가장 좋아하는 행동이다.
이럴 거면, 차라리... 무기력해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