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같이 죽고 싶어...
모든 힘을 다 써서 일반고로 아이를 보낸 뒤론 나는 진이 빠져 더 이상 아이를 돌볼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아이가 학교에서 좋은 담임 선생님과 상담 선생님을 만난 듯했기에 당분간 학교 선생님들께 아이를 맡기는 심정으로 아이를 보내고 쉬었지만 뭔가 지친 마음과 헛헛한 감정은 쉬 사라지지 않았다. 아픈 자식 품에 안고 정성으로 보살펴 다시 학교에 보냈지만 기쁜 마음보다는 갑자기 집이 텅 빈 느낌이 들었다. 오랜만의 휴식이건만 휴식 같지가 않고 마음에 큰 구멍이 뚫린 듯 일이 손에 안 잡혔다. 빈 둥지 증후군이라도 찾아온 것일까? 이 지독한 허무함의 정체는 무엇일까?
엄마로서의 나의 한계를 경험하면서 엄마라는 역할과 정체성이 주는 만족감도 끝이 났고 사랑과 믿음을 좇아 살아왔지만 아픈 아이로 인해 신앙인이라는 역할과 정체성도 흔들렸다. 나는 정직하게 나 자신을 돌아보았다. 나는 고상하고 행복한 삶을 원했기에 오랜 시간 동안 믿음과 사랑을 추구했을 뿐 도달하기도 어려운 이상적인 '사랑의 실천'을 원했던 것은 아닌 것 같았다. 신은 이런 밑바닥에 숨어 있던 나의 진정한 동기도 이미 아셨으리라.
온 마음과 믿음으로 아이가 완전히 나아 학교를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기를 간구했던 나의 기도도 결국 응답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나는 다시 더 깊은 고통 가운데로 들어가야 했고 인내의 시간들을 또 버티어야 했다. 나의 이런 상황에서 아이가 전보다 더 아픈 증상-자살 충동과 행동을 보이지 시작하자 깊은 무기력함 속에 더 이상 대응할 힘이 전혀 나질 않았고 차라리 아이랑 함께 죽고만 싶어졌다. 죽으면 고통받는 모든 상황이 끝나고 편해질 것 같았다. 아이도 나도 같은 마음이었다.
대학원에서 상담을 전공하고 전문적인 상담사로 일하고 있던 친구가 나의 이런 상태를 만나서 듣고 보더니 당장 상담받아야 한다고 긴급히 말했다. 솔직히 나는 비용을 들이면서까지 나도 잘 알고 있는 나 자신을 파헤치고 과거 어린 시절의 경험들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시 들먹이는 상담 따위는 정말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런 상담에 대한 나의 저항감을 알고 있는 친구는 "무료면 받을 거야?"라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 아픈 아이에게 완전히 지쳐버린 나를 살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상담을 주선하였다. '나도 전에 상담받아봐서 알아... 나도 이제는 나를 잘 성찰하고 기도하고 있어... 그런데도 이렇게 죽고만 싶고 헛헛한데 무엇이 더 바뀌겠어...’ 이런 마음으로 지금의 나의 상담 선생님을 어느 카페에서 처음 만났다. 사실 난 친구의 제안을 거절할 힘도 없었고 거절하기도 귀찮아서 나간 것과 다름없었다.
상담을 받으면서 나는 '공감'과 '좋은 엄마'란 이름으로 딸과 정신적으로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픈 딸과 엉겨있는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인식의 칼'을 들어 딸과 나를 분리하는 작업을 거쳐야 했다. 딸의 마음은 딸의 마음이고 나의 마음은 나의 마음이었다. 나의 마음에도 비록 죽음이 그림자처럼 드리워져 있긴 하지만 나는 살고 싶고 그것도 잘 살고 싶은 마음이 가득한 사람임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아이를 도와주려면 먼저 나 자신과 아이를 명확히 구분하여 '건강한 경계선'을 세워야 했다. 그래서 아이와 같이 휩쓸리지 않고 대신 아이가 끝까지 신뢰할 수 있는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어야 했다. 아픈 아이의 감정은 인정해 주되 그 감정들까지 나의 것으로 끌어안지는 말고 때로 필요하다면 단호한 태도로 아픈 아이에게도 말할 수 있어야 했다.
나는 공감 어린 사랑을 받으며 자라지 못해 '공감 결핍감'이 마음 한 구석에 있다. 그래서 누구든 힘들어하면 내가 받고 싶었던 공감을 해 주면 그 사람이 사랑을 느끼고 좋아질 줄 알았다. 그것이 나의 사랑 방식이었다. 그런데 난 공감을 잘 못 해주고 있었다. 내가 하는 공감은 서로 감정의 경계선이 있는 '건강한 공감'이 아니었다. 건강하지 못한 공감은 다음과 같은 절차로 진행된다. 처음에는 상대방의 감정들을 내 것인 양 다 받아들이고 해결하려 애를 쓴다. 그리고 나도 상대방의 부정적인 감정들에 전이되어 힘들어진다. 결국 마지막에는 상대방이 부담스러워지고 상대방을 멀리하게 된다. 딸은 가족이기에 떠날 수도 없고 어떻게든 함께 잘 살아가야 하는 귀한 생명이다. 그러려면 엄마인 내가 딸이 어떤 모습을 보이든 영향을 받지 않고 건강하게 마음의 중심을 잘 잡고 있어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개개인의 감정들은 모두 그들의 것이고 결국 그들 스스로가 해결해 가야 한다는 냉정한 인식과 심리적인 경계선이 나에겐 필요했다. 그리고 정서적으로 아이의 감정을 '인정'해 주는 것만으로도 나는 충분히 공감을 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아이의 부정적인 감정들을 내 것인 양 다 받아들이고 책임지려 하는 태도만 내려놓아도 나는 한결 숨을 쉴 수 있었다. 상담의 과정이 결국 어린 시절 부모의 고생과 한숨들을 모두 책임지려 하였던 무의식적인 어린 나를 내려놓는 과정이었다. 자신의 원부모와의 관계가 어떠했느냐가 평생 무의식에 남아 현실에서도 작용하기에 상담을 하는 데 있어 자신의 어린 시절과 부모와의 관계를 다루는 것은 필수적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