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수영을 배웠던 시기는 20대 중후반, 허리 디스크로 통증에 시달릴 때였다. 그 당시 서울 이문동에 있는 한국외대 근처에서 동생과 자취를 하고 있었는데 걸어서 20분 정도만 가면 사설 수영장이 있었다. 근처 한의원도 다니며 꾸준히 치료는 받고 있었지만 일상에서도 매일 할 수 있는 운동요법도 필요하다고 하여 관절에 무리가 안 가는 수영을 선택했었다. 그 시절의 난 어떤 일을 하든 가장 열심히 해서 무리 중에서 가장 잘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 목표였던 사람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배운 지 얼마 되지 않아 나는 모든 영법을 착실히 소화해 내며 의도했던 대로 함께 배우는 그룹 맨 앞에서 출발하는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때 1년 정도 다니고 그만 둔지 25년이 다 된 지금 여러 사람들의 지속적인 권고로 고민 끝에 다시 수영을 운동 삼아 다니게 되었다. 사는 지역은 다르지만 그때처럼 20분 정도를 하천을 따라 열심히 걸으면 사설 수영장이 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처음 배우던 시절이 한겨울이었다면 지금은 폭염주의보가 한 달 넘게 연일 지속되고 있는 한여름인데 오고 가는 길이 땀에 흠뻑 젖어도 자차를 이용하지 않고 음악을 벗 삼아 걸어 다닌다. 오고 가는 길부터 운동이 되었으면 했기 때문이다. 운동의 운자도 싫어하던 내가 운동을 시작했다는 것만으로도 스스로 대견하여 되도록 빠지지 않고 출석해서 어떻게든 50분 수영 강습을 잘 따라서 마치는 것이 목표였다. 맨 뒷줄에 서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순간순간의 작은 도전들을 해내고 오는 것만으로 아주 뿌듯했고 상쾌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깊은 단잠을 잘 수 있는 선물까지 덤으로 얻었다.
무슨 변화가 내게 일어난 것일까? 누구보다 열심히 잘해서 다른 사람보다 돋보이고자 애쓰던 나는 어디로 간 것일까? 심지어 그럴 필요도 느끼지 않고 있다. (사실 그럴 힘이 이제는 내게 없다는 것이 더 정확할 것이다.) 그렇다고 열심히 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집중해서 그 시간을 즐기고 있고 배우고 있다. 원리는 아주 간단했다. 그냥 그 순간 나 자신에게 충실하면 되었다. 그런데도 나는 해내고 있었고 자유로웠고 만족해하고 있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집 안에서 바라던 대학에 합격하고 스무 살 이후 나는 인생의 참의미를 찾아 떠났었다. 알 수 없지만 무언가 다른 세계가 있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30년 가까이 알고자 열심히 파고들었었는데 계속 실망만 하고 돌아서게 되었다. 마치 달을 향해 떠났는데 달에는 닿지 않고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어떤지만 계속 열심히 알게 되는 꼴이었다. 더구나 참의미라 여겨지는 것들을 추구하면 할수록 나 자신과는 소외되었고 실패하고 좌절하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면서 나는 '나'라고 생각되는 것들이 부서지는 지각 변동을 심하게 여러 차례 겪었다. 즉, 양파껍질을 벗기듯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면들이 하나씩 벗겨지는 고통과 함께 벌거벗은 나 자신을 점점 마주 보는 진실의 시간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수많은 실패들은 나도 모르게 그동안 지향하고 있는 차원으로 나 자신을 인도하고 있었다. 워낙 추락만 계속하고 있는 것만 같아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긴 세월을 추락만 할 때는 계속 의구심이 들었다. 다른 세계가 있기나 한 것일까? 모든 것이 무로 느껴지고 그냥 사는 것이 전부다라는 결론을 내릴 즈음에 추락이 나를 데려다 놓은 곳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으나 깨닫지 못했던 곳, 곧 온 우주의 근원적인 생명이 흐르는 곳이었다.그곳은 지극히 평화로웠으며 따뜻한 사랑으로만 충만한 곳이었다. 생각조차 멈춘 곳이었다. 나는 그저 그 물에 편안히 몸을 맡기고 누워 자유롭게 둥둥 떠 있기만 해도 되는 곳이었다. 그 세계를 들어가게 되면서 난 보이는 형상을 열심히 추구하는행동(Doing)하는 사람에서 벌거벗은 채 현재 존재(Being)하는 것만으로 충분한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일이라 남에게 설명할 수도 없었고 이해받기도 어려웠다. 마음의 아픔과 상처들, 부조리함과 쓸모없음, 파괴와 죽음의 유혹들을 뚫고 끝을 알 수 없는 어둠 속을 계속해서 내려가 원래부터 내 안에 있었던 근원적인 생명에 가 닿기까지 수없이 많은 밤을 눈물과 고통으로 몸부림치며 답답함으로 미칠 것 같은 순간들을 홀로 버티어야 했다고 이제는 담담히 말할 수 있다.
태어나 자라면서 상실해 버린 무언가 알 수 없는 잊어버린 세계에 대한 마음의 향수를 안고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그리고 누구보다 열심히 살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고 있지만 채워지지 않는 마음을 다른 무언가로 대체하며 애써 괜찮은 듯 살아가고 있는 누군가에게 혹은 용기 있게 무언가를 찾아 길을 떠났지만 계속 헤매는 느낌만 들어 좌절감이 드는 누군가에게 앞으로의 나의 이야기들이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