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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관찰자 Oct 19. 2024

아버님의 소나타

보이는 형상과의 이별

 시아버님은 오랜만에 뵙는 자리에서 오늘도 어김없이 자신의 자동차가 흠짓하나 없이 얼마나 잘 관리되어 있는지 그리고 청소를 열심히 해서 얼마나 깨끗한지를 자랑하셨다. 아버님의 차는 2004년식 검은색 뉴 EF 소나타인데 약 13년 정도 타시면서 본인의 성격대로 거의 완벽에 가까울 만큼 깔끔하게 유지해서 동네 사람들과 자동차 정비업자들로부터 새 차 같다는 말을 종종 들었을 정도였다. 한 번은 아버님이 자동차 관리하는 비결들 중 하나를 알려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비가 내리는 날에는 비가 그치길 기다렸다가 물기가 있을 때 바로 걸레로 전체적으로 닦아주면 세차장에 따로 갈 필요가 없다는 거였다. 솔깃한 마음에 그 뒤로 비가 오는 날이면 그치길 기다려 전체적으로 대충이라도 쓱 닦아 본 적이 몇 번 있었으나 이내 포기하고 말았다. 비가 그치는 타이밍을 맞출 정도로 한가하지도 않았고 대충이라 해도 자동차 전체 면적을 손으로 닦는 것이 생각보다 시간이 걸리고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완벽함’과 ‘부지런함’을 갖춘 아버님이시니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런데 그렇게 자랑이었던 아버님의 소나타는 여러 이유로 친인척이나 가족들 중 누군가에게 넘겨지거나 중고 자동차 시장에서도 거래가 되지 못하고 폐차장에서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되었다. 그동안 몇 번의 예고가 있었지만 실행되지 않고 있다가 팔순이 훌쩍 넘어 더 이상 자가용을 몰기 어려운 연세가 되시자 이만 작별을 했다고 어느 날 전화로 듣게 되었다. 전화를 끊고 나서 어차피 폐차될 자동차를 하루 전날까지도 깨끗하게 관리했을 아버님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올랐다. 아버님은 직접 차를 폐차장까지 몰고 가서 긴 세월 애지중지 함께 했던 소나타가 폐차장으로 들어가 부품들이 뜯겨 나가고 마지막에는 완전히 찌그러지는 것을 다 지켜보시고 쓸쓸히 버스를 타고 홀로 돌아오셨다고 한다. 어쩌면 허무하기까지 한 새 차처럼 반들반들 빛이 났던 아까운 소나타의 마지막이었고  아버님도 마음이 한동안 아팠다고 하셨다.   

뉴 EF 소나타

 

 솔직히 말하면 전에는 아버님이 폐차를 앞둔 자동차 관리에 과도히 돈과 시간을 쓰는 것이 이해가 되지는 않았었다. 물려줄 수도 팔 수도 없었기에 소나타가 결국은 폐차될 운명이라는 것을 아버님도 이미 아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닦고 광을 내시고 조금이라도 문제가 있으면 비싸더라도 부품을 교체해서 새것처럼 유지하셨던 것은 아버님의 성격이자 기본적으로 주어진 삶에 대한 아버님의 자세이기도 하지만 자동차라는 형상과 아버님과의 관계가 그만큼 깊었고 아버님 자신과도 동일시하고 있었음을 이제는 알 수 있다.  


 나에게도 아버님의 소나타와 같은 물건들이 있고 어쩌면 그 애착의 정도가 아버님이 소나타에 들인 정성만큼은 아니더래도 비슷할 수도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커플 반지, 결혼반지, 목걸이, 귀걸이, 가방 등은 어느 여자들처럼 애착이 있는 기본적인 아이템들이지만 나는 결혼할 때 가져온 작고 파란 꽃무늬 자수가 잔잔히 들어가 있는 하얀색 봄, 가을용 이불에 가장 마음을 두고 있었음을 최근에 깨닫게 되었다. 작은 딸도 그 이불의 감촉을 좋아해서 때가 되면 항상 찾는다. 그런데 올해 봄부터 꺼내 쓰다가 새로 입양한 새끼 고양이의 발톱으로 인해 이불 중간이 한 줄로 길게 뜯어져 가운데 구멍이 뻥 뚫려 솜이 다 삐져나와 버렸다. 그래도 버리지 못하고 계속 남편 모르게 쓰고 있다가 남편한테 결국 발견되어 한 소리 들었다. 하지만 남편은 세탁소에서도 수선하기를 거절당한 이불을 투덜거리면서도 아내와 딸을 위해 함께 꿰매어 주었다. 다 큰 성인의 이불에 대한 애착을 이해하지 못하고 이제 그만 수선하고 포기하고 버리라는 말까지 세탁소에서 듣고 나왔을 때에는 무척이나 화가 나고 모욕감까지 느꼈다. 속으로 씩씩거리며 수선을 못 하면 그냥 안 해주면 될 것이지 필요 이상의 냉정한 말이 무례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이것을 통해 난 애착 정도의 수준을 넘어 그동안 나도 모르게 이불과 무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얼마나 동일시하고 있었는지 극명히 알 수 있었다.


  자신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며 의미를 부여하고 애정으로 대하던 형상과의 이별은 그 형상이 물건이든, 사람이든, 동물이든, 크고 작은 그 어떤 것이든 매우 슬프고 고통스럽기까지 하다. 더구나 그 대상에 집착하고 자신과 동일시하고 있었을 때는 나처럼 화가 나거나 그 정도에 따라 광기 어린 분노에도 휩싸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도 곧 아버님처럼 나의 이불과 작별해야 하는 순간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고마웠다고. 결혼할 때부터 나와 함께 하며 낡아서 너덜너덜해지도록 이불의 소명을 다해주어 고마웠다고 인사하며 보낼 것이다. 그런데 난 아직 나의 이불과 이별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그리고 아직은 이불의 온기가 남아 있다. 그 이불의 온기가 다하게 되면 고이 싸서 이 세상의 모든 물건들이 버려지는 곳으로 담담히 보낼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이불은 이불일 뿐 나 자신이 아니기 때문이다. 소유물과 나 자신의 본질과는 전혀 별개임에도 동일시하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난 다시 평화를 찾게 되었다. 세탁소 아주머니의 말로 인해 느꼈던 화도 사라지고 이불과의 이별도 준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리고 언제가 폐차될 운명이 정해져 있는 자동차처럼 우리에게도 이 세상에서의 삶이 다하는 순간이 필연적으로 온다. 자동차의 형상이 사라지는 것처럼 나의 형상도 사라지는 순간이 오는 것이다. 나는 내가 언제 어떻게 어떤 식으로 죽음을 맞이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이것 하나만은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즉, 이제는 언제 어떤 모습으로 죽더라도 나는 내게 주어진 생명을 충분히 다 하고 가노라, 그리고 나는 온 우주의 사랑과 은총을 넘치도록 받았고 함께 나누고 가노라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뭔가 남들에게 보여 줄 근사한 프로필이 있어서 그런 것도 아니고 외모가 멋진 사람은 더더욱 아니다. 프로필에 적혀 있듯이 난 지극히 평범한 주부이다. 그럼에도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게 된 것은 바로 보이는 모든 형상들과 독립해서 존재하고 있는 생명 자체로 충분한 나, 온 우주의 사랑을 받고 있는 나 자신의 본질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내 안에 살아 숨 쉬는 생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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