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름다운 관찰자 Oct 24. 2024

방비엥 코끼리 동굴에서

동굴 밖의 세계를 향해

 라오스의 방비엥에서 코끼리 동굴이란 곳을 가 보았다. 코끼리 형상의 돌이 있었서 지어진 이름이라고 가이드는 설명해 주었다. 나는 높은 곳도 싫어하지만 캄캄한 긴 동굴 속에 들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마치 물을 무서워하는 사람이 물속에 들어가 음~~~ 파 하고 처음 호흡하는 법을 배울 때 느끼는 숨 막히는 듯한 공포가 살짝 있기 때문이다. 한 번은 국내에서 아이들 어릴 때 석탄을 캤던 광산을 관광지로 가꾸어 놓은 곳을 다녀왔었는데 긴 땅속을 걸어 들어갔다가 그때 나는 질식할 것 같은 답답함으로 호흡까지 곤란해지는 듯한 경험을 한 적이 있었다. 폐쇄공포증 비슷한 것을 그때 느꼈던 것 같기도 했다. 어서 긴 터널이 끝나기만을 바랬으나 한 번 들어온 이상 출구를 찾아 무조건 앞으로 걷는 수밖에는 없었다. 마침내 서서히 맞이하게 된 밝은 빛은 무척이나 반가웠고, 밖의 신선한 공기를 들이마시는 순간 깊은 안도감이 찾아왔다. 길게 호흡하며 다시는 동굴 같은 곳은 일부러 찾아가지는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돈을 벌기 위해 석탄을 캐러 목숨을 걸고 어두운 땅 속 깊은 곳을 날마다 들어가야 했던 광부들의 절절한 혼이 묻어있는 곳을 감당할 자신도 없었다.


 동굴은 영원하지 않다. 끝이 있다. 그리고 잠깐이면 밖으로 나오게 된다. 코끼리 동굴 입구에서 이런 다짐 아닌 다짐을 하고 일행과 함께 코끼리 동굴에 들어섰다. 그런데 전에 경험했던 석탄을 캤던 동굴과는 차원이 달랐다. 신비로운 세계가 내 안으로 훅 치고 들어와 마치 가보지 못한 외계 세계에 온 느낌이었다. 지구 지표면에서만 생활을 했던 나에게 그리고 책에서만 살짝 보았던 이런 기이한 공간이 땅 밑에 실제로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했다. 천장부터 바닥까지 기괴한 모양의 돌들이 사방으로 둘러싸고 나를 휘감았고 나는 잠시 진공상태를 경험하기도 했던 것 같다. 하늘의 별들이 내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경험과는 또 다른 지엄한 자연이 주는 기괴한 경험에 나는 숙연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지속적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걸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이 세계가 아무리 신비스럽고 황홀함을 내게 가져다준다고 해도 얼마 안 있어 난 동굴 안의 어둡고  한정된 세계에 답답함을 느끼고 벗어나고 싶어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날마다 미친 듯이 찾아 나설 것이다. 나에겐 밝은 햇살과 신선한 공기가 있는 넓고 광대한 공간에서 살도록 지어진 본능이 내재되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머무를 수는 있지만 그곳에서 계속 살 수는 없다. 지금은 밖으로 나가는 통로를 따라 길이 만들어져 있고 곳곳에 불빛들이 동굴 안을 밝히고 있다. 또한 우리 일행을 앞 뒤로 보호하며 안내해 주는 가이드가 둘이나 있다. 그래서 그들만 따라가면 어느새 동굴은 끝나고 밖으로 나오게 되어 있다. 이 얼마나 쉬운가?      

 

 하지만 자기 자신의 내재된 무의식적 본능의 목소리를 따라 자신의 ‘본질’을 찾는 여정은 그리 만만치 않다. 이미 동굴 안의 세계가 전부라 여겨지는 곳에서 완전히 적응해서 살고 있을수록 동굴 밖의 세계가 있다고 생각조차 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것에 대해 말하는 사람도 많지 않다. 또 있다고 해도 동굴 밖의 세상에 대해서 듣기만 하고 밖이 있다고 가리키기만 한 사람들도 동굴 밖으로 나가는 여정에 오르게 되면 많이 만나게 된다. 그들은 마치 자기가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하지만 사실은 모르는 자들이다. 마치 동굴 밖에 있는 '리치'라는 과일의 존재를 소개하는 책을 열심히 읽고 공부하여 '리치'라는 과일을 소개하지만 정작 '리치'를 맛본 적도 없으면서 '리치'를 알고 있는 것처럼 가르치는 가이드들이 있고 그런 가이드 곁에서 또 열심히 배우는 작은 가이드들이 있다. "저는 리치에 대해 알만큼은 알았어요 그러니 이제는 리치를 직접 맛볼 수 있게 해 주세요."라고 그들에게 말하지만 그들은 리치에 대해서만 계속 설명할 뿐이다. 그래서 다시 그들을 떠나야 한다. 그리고 동굴을 나가는 길을 홀로 다시 찾아 나서야 한다.  실제로 동굴 밖의 세계에 속하여 말하고  있는 진짜 이정표와 같은 사람, 참 가이드를 만나기까지.  


 한동안 미로 찾기와 같은 답답함은 계속된다. 그런데 탐험을 계속하다 보면 진짜 이정표를 지닌 가이드를 알아보는 지혜와 분별력이 점점 조금씩 생긴다. 이것은 어쩔 수 없이 헤매고 계속 실패하는 과정에서 주어지는 열매와 같다. 그리고 결국에 참 가이드들을 만나게 되는데 그 과정이 오롯이 혼자 만의 힘이 아니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즉, 때를 따라 자신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는 많은 도움의 손길들이 순간순간 있었고, 동굴 밖의 세계로 나갈 수 있도록 우연하게 일어나는 연속적인 일련의 과정들이 적절하게 선물처럼 주어졌기 때문임을 알게 된다. 무엇보다 아이러니 하게도 동굴 밖으로 나가는 길은 외부의 목소리에 있지 않다는 것을 참 가이드는 알려 준다. 그 길은 이미 자신의 내부에 있음을 가리킨다. 단지 모든 생각과 감정과 이성을 떠나 조용하게 자기 내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따라 그냥 걸으라 한다. 그럴 때 점차 틈이 보이고 그 틈을 통해 들어오는 환한 빛을 감지하게 될 것이라 말한다. 나는 그 틈을 알아보았고 그 틈을 통해 들어오는 빛을 향해 조금씩 걷다 보니 어느 순간 밝고 환하고 따스한 빛으로 가득한 동굴 밖의 세계에 이르러 있었다. 그곳은 자유롭고 신선한 공기로 가득차 있었고 끝이 보이지 않는 넓은 공간이었다.

작가의 이전글 아버님의 소나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