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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름다운 관찰자 Oct 27. 2024

버스 기사님의 꽃자랑

나의 본질에 대하여

 가끔씩 세컨 하우스처럼 쓰고 있는 시골집을 오가려면 곡성 시외버스터미널을 거쳐야 한다. 그날도 나는 여느 때처럼 시골집에서 홀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다시 집으로 가고자 버스터미널에서 막 내려 곡성 기차역으로 향하려던 참이었다. 그런데 버스 기사님으로 보이는 남자분이 갑자기 다가와 내게 말을 걸었다. 불쑥 손에 쥔 이름 모를 꽃다발을 내밀며 정말 예쁘지 않냐고 환하게 웃으며  물었다. 약간은 투박하지만 부드러운 목소리였다. 아침에 피는 나팔꽃과 비슷한 모양으로 파스텔톤의 핑크색 꽃이었다. 들판에 잘 없는 꽃인데 우연히 지나가는 길에 발견했다며 자기 집 담벼락 밑에 심어 놓을 거라고 기쁨에 겨워 약간은 흥분한 어조로 말씀하셨다. '아니, 세상에 이런 분을 다 만나네!' 하고 나는 속으로 좀 놀랐다.


 꽃을 좋아하는 여자들은 종종 만나도 이렇게 꽃을 좋아해서 모르는 사람에게 다가와 자랑까지 하는 남자는 처음 보았다. 꽃의 아름다움을 느끼고 즐거워하는 순수한 그분의 모습이 더 아름다웠고 나에게는 묘한 감동까지 주었다. 그렇지만 기차 시간이 다 되었기에 그 분과 더 이상 길게 얘기를 나누지는 못 하고 인사드리고 돌아섰다. 올라오는 기차 안에서 난 갑자기 가슴이 뭉클해졌다. 나를 바라보는 절대자의 온화한 시선이 그분을 통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너도 바로 그 꽃과 같은 존재야, 내가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존재야 '라고 속삭여 주는 듯했다. 내 안의 깊은 곳에서 생명의 에너지가  불현듯 솟구쳐 올랐다. 그리고 깊은 평화와 기쁨과 고요함이 밀물처럼 몰려왔다.


 닉 부이치치... 그는 오랫동안 나에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와 같았다. 나는 사지가 멀쩡한데도 나 자신을 좋아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의 책을 여러 번 읽어 보았지만, 신앙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살을 여러 번 시도했던 그가 어떻게 자신과 다른 이들의 아름다움을 보며 사랑을 전하고 다니게 되었는지는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또한 나는 받아들이지 못했었다. 사람이 꽃과 같이 아름답다는 말을. 거의 평생을 보이는 형상을 따라서만 나 자신과 타인을 보았기에 유명한 아이돌처럼 예쁘지 않으면 다 사실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사람들 듣기 좋으라고 하는 말 같았다. 하지만 닉 부이치치는 팔과 다리가 없는데도 존재 자체로 빛이 났고 아름다웠으며 많은 이들에게 위로와 감동을 주었다.

 아마도 닉은 자신의 생명의 본질이 외부적인 조건에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 같다.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닉도 어느 날 눈을 떠서 자신의 본질이 보이지 않는 생명 자체에 있음을 경험하게 된 것 같다.  이제는  나도 내게 주어진 생명이 너무나 좋다. 못 견디게 좋다. 보는 시각이 보이는 형상에 매여 있어서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것뿐이었다. 지금이라도 눈을 뜨게 된 것이 얼마나 감사한지!


  나는 꽃처럼 순수하고 하늘처럼 맑다.  나는 나무같이 듬직하고 새와 같이 자유롭다. 나는 돌과 같이 평화롭고 물과 같이 순응하며 모든 것을 포용하며 흐른다. 그리고 나는 바다다. 은 날마다 크고 작은 파도가 치지만  깊은 곳에는 심해의 고요함이 내 안에 있다. 나는 온 우주와 맞닿아 있고 우주와 하나 되어 함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나를 알게 되니 자신감이 생긴다. 난 귀하고 소중한 생명 자체이고 현존하는 의식이며 온 우주의 사랑과 호의를 받는 자이다. 나는 풍요로운 자이며 그 풍요를 나누는 자이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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