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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현 시인 Oct 17. 2024

호랑이 선생님

몽당연필        




나는 몽당연필이에요


어느 날 가만히

친구들과 나란히 필통 속에 누웠는데

장대같이 키 큰 녀석이, 갑자기

내 옆으로 쑤욱 밀고 들어와서는

기다란 다리를 쭉 뻗어

비좁은 자리를 다 차지하며 뽐낸다.   

  

잘난 체 깔보며 으쓱대는 꼴이라니!

나도 이전에는 너보다 훨씬 컸지.      

오래도록 깎이고 깎이다 보면  

너도 언젠가는 나처럼

짜리 몽땅!

작은 키가 되고 말 거야     


우리 연필은 깎일수록 겸손해야 해

네가 크면 얼마나 크다고

벌서 거만하면 안 되지


네 친구는 아무도 없게 될 거야.     

앞으로 조심해!


그래도 끝까지 반성하지 않으면

너는 이 필통에서 당장 

쫓겨나게 될 거야!     






동물원 호랑이      


          


동물원 호랑이가 참 불쌍하다.

저렇게 좁은 우리  안에

꼼짝 못 하고 갇혀 있다는 게,     


호랑이는 얼마나 답답할까?

어느 초원에서 살다 왔을까?     


넓은 풀밭을 마음껏 내달리며

큰소리 뻥뻥 치며 살 수도 있었는데

하루종일 파리 쫓으며 낮잠이나 자고

수많은 구경꾼에게

사생활을 죄다 보여 주며

사육사가 가끔 던져 주는 먹이나

날름날름 한 덩이씩 받아먹고사는

호랑이 신세가 불쌍하다.      


위험하지만 않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풀어 주고 싶다.     

초원을 마음껏 누비며

산천이 떠나가도록

쩌렁쩌렁 소리 높여 외치고

신나게 뛰어놀 수 있도록,   






그림자    




귀찮아서 떼어놓고 가려고

살그머니 일어서서 조심조심 도망치면

그사이 어느새 알고

꽁무니를 따라나선 그림자     


그림자는 내 비밀을 다 알고 있어서

미워하고 멀리하면 내 비밀을 다

친구들에게 말해 버릴까 봐

함부로 화낼 수도 없는 얄미운 찰거머리     

아이고, 아이고 어쩌면 좋아!      


화장실까지 졸졸 따라와서

지켜보는 그림자    


정말 창피해서 죽겠네!   



                                                     



나누기와 더하기     




친구들은 왜 더하기를 좋아할까?     

모두에게 하나씩 골고루 나누는데     

하나 더, 하나만 더,  소리 높여 외친다.          


더하기는 욕심!

나누기는 사랑!          

작은 콩알 하나도 나누어 먹자

욕심부리는 사람은 되지 말자   


    



보름달과 조롱박   




공처럼 둥근 보름달

하늘 벌판을 데굴데굴 굴러와

시골 마을 초가지붕 위에

살짝 걸터앉는다.     


기다리던 조롱박이 다가가

기념사진 찍자고

살며시 어깨를 기댄다.     


찰칵!     

활짝 웃고 있는 두 친구  






라일락이 나에게




오늘은 엄마 생일

꽃을 선물하고 싶은데 용돈이 없어,


쓸쓸히 들길 걸어  집으로 오는데      

길가에 키 큰 라일락 꽃나무

수백 송이 꽃을 피워

활짝 웃으며 내게 하는 말      


“예쁜 소녀야, 가까이 오렴!

내가 너에게 선물을 주려고

기다리고 있었어.

보랏빛 꽃다발을 준비했단다.

자 여기, 받으렴!”     


나는 라일락 꽃다발을 받아 들고

너무 기뻐서 곧장 집으로 달려가

가쁜 숨을 헐떡거리며


“엄마! 여기”     

깜짝 놀란 엄마 품에 라일락 꽃다발을

한 아름 가득 안겨 드렸다.     


엄마도 활짝, 꽃다발도 활짝

나도 활짝 함께 웃었다.






호랑이 선생님




숙제가 많이 남았는데

졸음은 인정사정 하나 없다.     


숙제를 다 못하고 꼬박 잠이 들어

늦잠 자는 바람에 지각하고 말았다.      

허겁지겁 등교 시간

이거 참 큰 일 났다.


눈에 어른대는 호랑이 선생님      

생각할수록 탓할 것은 졸음밖에 없다      

졸음..너, 두고 보자

이다음엔 내가 꼭 너를 이기고야 말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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