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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복현 시인 Oct 17. 2024

벌 받을 각오

벌 받을 각오     




어제는 우리 반 남자아이들이
희선이를 놀리는 바람에 희선이가 사라져

수업 시간이 되었는데도
교실로 돌아오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화가 잔뜩 나셔서
큰 소리로

“희선이 놀린 애들 다 나와!”

하시는 것이었다.
 

 나는 겁이 나서 망설이다가
 벌 받을 각오로 용기 내어
 제일 먼저 앞으로 나갔다.


 내가 먼저 나가자 민수와 창식이도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따라 나왔다.
 그런데 종혁이와 철환이도 나오지 않아
 친구지만 속으로 얄미웠다.
 
 하지만 벌을 받으면서도
 끝까지 종혁이와 철환이도 함께 했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나중에 종혁이와 철환이는 나를 만나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했다.
 
나는 괜찮다고 어깨를 툭툭 치자
그때서야 안심한 듯
빙긋이 웃으며 나를 얼싸안았다.






선풍기 바람    




멋모르고 지나가던 바람이

선풍기에 걸려들어  

한참이나 뺑뺑이를 돌고 있다.      


얼마나 어지러울까?      

일단 이단 삼단 사단

속도를 더하다가

송골송골 이마의 땀방울이

다 식고 나서야 선풍기를 끈다.      


기진맥진한 바람이 그제야

정신 겨우 차리고

한숨 길게 내쉬며 한마디 한다.       


“후유-

하마터면 죽을 뻔했네!”   






초승달   




누가 던져놓은 부메랑이  

하늘을 저렇게 떠돌고 있을까요?      


구름이 지나가다

싹둑싹둑 잘리고      


어린 별들은 잔뜩 겁을 먹고서

움츠린 채 눈만 꿈벅 꿈벅!     


말도 못 하고 슬금슬금

초승달 눈치만 보고 있어요.






간호사 누나는 거짓말쟁이




간호사 누나는 거짓말쟁이

커다란 주사기를 손에 들고

도망가려는 나를 붙들고

“하나도 안 아파, 누나가 책임질게”

하고서는 순식간에

내 팔뚝에 주삿바늘을 쿡!

찔러놓고 만다.      


아얏! 소리도 못 내고

아파도 이 악물고 참는 나에게

“어때, 안 아프지?”

빙그레 웃으며 약을 올린다      


간호사 누나는 거짓말쟁이지만  

환하게 웃는 간호사 누나가

나는 좋다






갈매기와 까까    




바닷가에 갈매기들 우르르 몰려와

머리 위를 맴돌며 까까까 까까

잠시도 쉬지 않고 울어댄다.      


사람들이 새우깡을 던져주면

재빠르게 낚아채 한입에 꿀꺽한 후

금세 다시 돌아와

말 서툰 우리 동생  과자 달라 손 내밀 듯

까까까 까까, 까까까 까까

쉬지 않고 울어댄다.   


갈매기는 정말

까까를 무척 좋아하나 봐!  






짝꿍    




오늘은 새 학기

옆자리 짝꿍을 바꾸는 날     


왠지 내가 좋아하는 이한준이

옆자리로 꼭 올 것만 같아

벌써부터 가슴이 콩닥콩닥      


누구에게도 내 맘을 말한 적 없는데

나 혼자서 괜히 홍당무처럼

얼굴이 빨개져서      


두근두근

콩닥콩닥






      




 평생을   말없이 눈으로만 가르치는 선생님


언제 어디서나 다가가 말 걸어도

단 한 번도 거절하지 않고

반갑게 맞아준다.      


책은 소중한 친구며 스승

모르는 게 많고 답답할 때

불평불만 투덜대도 말없이 다가와

가만히 내 곁에 있어 주는,

친절한 친구며 존경하는 선생님     


가까이 다가가 소곤소곤 말 걸면

하루 종일 배워도 모르는 것들을  복습할 수 있도록

열 번이고  백 번이고 또다시 보여주고 또 보여 주는

책은 참 귀하고 고마운 선생님이다. 






연못 거울    


           


보름달이 올 땐

마을 앞 작은 연못부터 찾아와요.


가만히 다가와 손거울처럼

요리조리 비춰 보고

방긋 웃어요     


하늘소, 풍뎅이, 사이좋게 노는 곳에

아기별들 멋모르고 뛰어들다가

물에 빠져 허푸 허푸 허우적댈 때면

물고기들이 우르르 몰려와

금빛 별을 미끼로 잘못 알고

덥석덥석 물어요.      


갑자기

고요하던 연못이 파드득!

깜짝 놀라 그려지는

파노라마, 파노라마  파노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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