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비가 많이 내리긴 했지만 작년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작년 여름! 이사 와서 처음 맞은 여름이었다. 매일 억수같이 비가 쏟아졌다. 아예 하늘에 구멍이 난 듯 내리 퍼부었다.
남편은 잔디밭 배수구를 모두 열어놓고 덮개만 씌워 놓았다. 배수구로 빠져나가는 양보다 하늘에서 쏟아 붓는 비의 양이 훨씬 많다 보니 잔디 마당에는 발목까지 물이 차오르고, 집 앞 도로에는 산에서 콸콸 쏟아져 내려온 황톳물로 넘쳐났다. 급기야는 우리 집 텃밭으로 넘쳐 흘러들고 있었다. 이러다 우리 집이 물에 잠기는 게 아닐까 걱정스러운 눈으로 수시로 하늘을 올려다보았지만, 비는 그칠 생각이 없는지 더 굵은 빗방울을 맹렬히 퍼붓고 있었다. 노아의 홍수 때에도 이런 비가 내렸을까? 세상을 다 쓸어버릴 것 같았다.
전원생활 1년 차, 비옷 하나 변변히 준비하지 못 한 우리는 오래전에 여행 가서 입었던 얇은 1회용 비닐 옷을 꺼내 입었다. 잔디밭 배수구 덮개에 걸린 잡초를 걷어 내고, 도로 배수구에 쌓인 흙과 나뭇잎을 긁어내었다. 집을 짓느라 벌목하고 산을 깎아 내었으니 토사가 그대로 흘러내리는 건 당연지사. 인간이 파괴한 자연으로부터 고스란히 되돌려 받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했다. 산에서 내려오는 물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지 못하도록 집 옆 공터에 물길을 만들었다. 입으나 마나 한 비옷 탓에 머리와 옷이 흠뻑 젖어서 꼭 물에 빠진 생쥐 같았다. 그런 서로의 모습을 바라보니 그 와중에도 웃음이 나왔다.
남편은 수시로 나가 배수구 점검을 하고, 도로 위에 쌓인 흙을 퍼내고 막힌 물길을 뚫었다. 고생하고 들어온 남편에게 요깃거리를 주려다 전기가 나간 것을 알았다. 전등과 각 방의 전원은 이상이 없는데 부엌 전원만 나가서 냉장고와 김치냉장고, 냉동고가 작동되지 않았다. 그 안에 있는 온갖 음식 재료들이 상하고 또 녹아내릴 생각을 하니 아뜩했다.
잡기(雜技)에 능한 남편이 안전개폐기를 열고 아래로 내려온 스위치 하나를 위로 올렸다. 올리자마자 스위치가 아래로 내려갔다. 몇 번을 올려도 계속 아래로 떨어졌다. 지열발전 보일러실과 난방용 열 배분기도 살펴보았지만 뭐가 문제인지 알 수 없었다. 모든 콘센트와 보일러실, 열 배분기를 다시 꼼꼼히 살피던 남편이 뭔가 생각난 듯 집 뒤로 뛰어갔다.
그곳은 지하수용 컨트롤 박스가 들어있는 콘크리트 수조가 있는 곳이다. 뚜껑을 열자 수조 안에 물이 가득 차 있었다. 컨트롤 박스가 물에 닿는 바람에 안전개폐기 스위치가 저절로 내려가 전기가 차단되었던 것이다. 그제야 우리는 수조 안 컨트롤 박스와 부엌 쪽 전원이 직결되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사 온 지 1년 만에. 그것도 이렇게 세찬 비와 끊어진 전기를 통해서.
남편이 창고로 달려가 아주 기다란 전기 연결선을 가져왔다. 실내에 있는 콘센트에 꽂고 가정용 양수기를 연결해 수조 안의 물을 퍼내려 했으나 할 수 없었다. 연결선 길이가 턱없이 짧았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옆집 아저씨께 도움을 청했다. 그분은 우리 것보다 훨씬 긴 연결선을 가져와 도와주셨다. 양수기로 물을 퍼내고 난 뒤, 내려가 있던 안전개폐기의 스위치를 위로 올리니 전기가 들어왔다. 그분의 도움이 없었다면 빗속에서 쩔쩔매고 있었을 텐데 너무나 감사했다.
비는 내렸다가 그쳤다가를 반복하고 있었다. 물 퍼낸 지 채 두 시간도 되지 않았는데 또 전기가 나갔다. 그 이후로 남편은 수시로 뒤꼍으로 가 수조 뚜껑을 열고 물을 퍼냈다. 늦은 밤이 되자 비는 더 세차게 내렸다. 남편과 나는 비옷과 장화를 갖추고서 장우산 두 개를 펴들고 수조로 갔다. 장대비 속에서 번갈아 가며 랜턴을 켜들고 우산을 씌워주며 물 퍼내는 작업을 했다. 그렇게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비를 맞아본 건 생전 처음이었다. 그것도 칠흑같이 어두운 한밤중에. 그날 밤, 우리는 자연의 위력을 온몸으로 느끼며 뜬눈으로 밤을 새우다시피 했다.
다음날, 날이 밝자 빗방울이 가늘어지면서 비가 그쳤다. 집 앞 도로 배수구엔 흙과 나뭇잎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고 도로 옆에 서 있던 커다란 나무가 아래 논바닥 쪽으로 쓰러져 있었다. 이웃 두 집엔 바로 뒤 야트막한 산이 무너져, 흙더미가 건물 바로 뒤까지 쓸려 내려와 있었다. 조금만 더 내려왔더라면 잠자던 가족들이 다칠 뻔한 아찔한 상황이었다. 모두들 가슴을 쓸어내리며 그나마 다행이라고 입을 모았다.
엉망이 된 집과 도로를 치우면서 환경 파괴의 심각성과 이웃의 고마움, 전원생활의 고달픔을 절실히 느꼈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전원생활만 꿈꾸었는데....
꽃 피고 새 우는 전원생활의 낭만도 자연과 이웃과 더불어 살 때만 누릴 수 있다는 걸 깨닫게 해준 여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