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너~무 예쁘다!”
“그림 같다!”
그녀들은 환성을 지르며 차에서 내렸다.
어제 경미, 영선, 송이 샘이 다녀갔다. 차에서 내리자마자 그녀들은 연신 환호했다. 무겁지도 않은지 가방과 선물을 든 채 집을 둘러보았다. 잔디를 밟으며 집 앞의 탁 트인 전경, 빨강, 노랑 예쁜 꽃들과 나무, 텃밭의 각종 채소 등 집 주변의 모든 것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보겠다는 듯 샅샅이 살펴보았다. 내친김에 난 뒤꼍 나무에 걸려 있는 커다란 장수말벌집도 안내했다. 목공방에 들어가서는 나무 냄새가 너무 좋다며 코를 킁킁거렸다.
집 밖을 다 둘러보고서 이제는 집안을 볼 차례란다. 아래층 손님용 침실과 서재 방, 거실, 부엌 등을 살펴보면서 각자 훈수를 두었다. 이층으로 올라가면서 갤러리에 온 느낌이라며 벽에 걸린 아버님의 수채화와 유화들을 감상했다.
“눈을 뜨자마자 탁 트인 전경과 저 멀리 산을 바라볼 수 있으니 얼마나 여유롭고 행복할까?”
“나도 이런 곳에서 살고 싶다.”
이층 침실 앞 전망을 바라보며 그녀들이 너스레를 떨었다. 침실 앞 테라스에 놓여 있는 화분들을 보면서 모두 잔디 마당으로 내려놓으란다. 이 테라스에선 아름다운 전경을 바라보면서 차를 마셔야 한다며. 50대 중반의 그녀들은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 재기 발랄했다.
그녀들을 픽업해오자마자 바비큐 그릴에 고기를 굽기 시작했던 남편이 빨리 와서 먹으라고 성화다. 그녀들은 불 맛이 가미된 고기가 엄청나게 맛있다며 또 호들갑이다. 하하 호호 수다를 떨면서 먹고선 너무 배부르다며 아일랜드 식탁에 엉거주춤 기대어 서서 또 수다! 정말 오랜만에 왕 수다를 떨면서 즐겁고 유쾌한 시간을 보냈다.
30년 전, 새로이 발령받아 간 학교에서 우리는 동 학년 교사로 만났다. 경미, 송이 샘은 임용고사에서 우수한 성적으로 합격해 우리 학교로 초임 발령받은 영재 교사들이었다. 영선 샘과 나는 다른 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전근 갔다. 우린 수업이 끝나면 각자 맡은 업무를 해결하는 틈틈이 모여 어떻게 하면 아이들이 좀 더 쉽게,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을지 수업 지도 방안을 의논했다. 사춘기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아이들의 고민과 친구관계, 가족 관계 속에서의 갈등 등을 어떻게 도와줄 것인지도 머리를 맞대고 고민했다.
퇴근 후엔 학교 가까이에 있는 우리 집에 자주 모여 저녁 식사도 같이 만들어 먹었다. 다양한 얘기를 주고받다가도 마지막엔 항상 각자 학급에 있는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이 녀석은 이렇고 저 녀석은 저런데 어떻게 도와주는 게 좋을지 중지를 모았다. 그땐 모두 경력이 짧고 열정으로 똘똘 뭉쳐있었던 터라 자나 깨나 아이들에 대한 생각으로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면서 각자의 길로 헤어져 한동안 만나지 못했다. 경미 샘과 영선 샘과는 아주 가끔씩 안부를 주고받았지만 송이 샘은 연락이 끊어졌다.
십여 년 전, 아이들을 데리고 민속 박물관에 갔다. 가을철이라 박물관 안은 여러 학교에서 체험학습 온 아이들로 북적거렸다. 우리 반 아이들이 장난치지 않고 집중해서 듣도록 지도하면서 박물관 안내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있었다, 그때 많이 들어본 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쪽을 바라보니 바로 송이 샘이었다. 너무나 반가워 빠른 걸음으로 송이 샘에게 갔다. 송이 샘도 반색을 하면서 내게로 왔다. 우리는 서로 얼싸안고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우리 반 아이들 바로 뒤에서 송이 샘 반 아이들이 관람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기네들 담임교사가 ‘언니, 언니’ 부르며 얼싸안고 펄쩍펄쩍 뛰는 것을 보고는 아이들이 물개 박수를 쳤다. 첫 발령받았을 때, 아주 친하게 지냈던 선배 선생님이라는 송이 샘의 설명을 뒤로 한 채 난 우리 반 아이들에게로 갔다.
그 뒤로 우린 가끔씩 안부를 전하면서 매년 겨울 방학에 만났다. 그러다 코로나로, 각종 연수로 바쁜 영재 선생님들 탓에 몇 년 동안 보지 못했다. 드디어 올해 초, 겨울 방학 때 만나고 이번에 우리 집을 방문한 것이었다. 우린 옛날 학급 아이들 얘기, 선후배 교사들의 근황, 각자 자녀들의 근황 등을 주고받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들이 돌아간 뒤, 그렇게 수다를 떠는 내 모습을 처음 보았다며 남편이 놀라워했다. 내가 생각해도 그랬던 것 같다. 과묵한 편인 내가 그야말로 완전 무장 해제되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떨어져 있었지만 너무나 편안하고 허물없는 옛 친구들이다. 내 젊은 날과, 아이들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 찼던 그 시절과 그때의 우리 반 아이들의 모습이 아련히 떠올랐다. 다들 어엿한 어른이 되어 잘 살고 있겠지?
30년 전의 즐거웠던 추억을 소환해 준 그녀들이 고맙고 사랑스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