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아쉬움

by 촛불 맨드라미

우리 부부는 가톨릭 신자이다. 여행 다닐 때 주일 미사를 거르지 않기 위해 나름 노력하는 편이다. 여행지에 도착하면 성당의 위치와 미사 시간을 꼭 확인한다. 그 지역을 다녀간 분들의 블로그를 참고하면서 도움받기도 한다.


올해 3월 프랑스에 살고 있는 내 친구 집에서 2주간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녀 집에서 맞은 첫 토요일, 주일 미사 시간 확인 차 그녀와 함께 마을 성당을 찾았다. 화려하진 않지만 역사가 꽤 깊은 성당이었다. 문은 열려있었지만 신부님도 수녀님도, 교우도 전혀 보이지 않았다. 미사 시간을 알리는 공지문만 성당 출입문에 붙어 있었다. 이번 주일미사는 그 마을에서 차로 20분 정도 떨어진 성당에서, 다음 주일 미사는 이 성당에서 드린다는 내용이었다. 그녀가 사는 지방은 마을마다 오래된 성당이 있지만 신부님이 상주하지 않는단다. 신부님과 신자 수가 많지 않아 신부님이 그 지역의 여러 마을을 순회하면서 미사를 드린다고 한다.


다음날 다른 마을의 성당 미사에 참례했다. 참석한 신자 수는 200여 명, 젊은이는 아가씨 딱 한 명, 4살 정도의 여아 둘과 젊은 엄마, 그 외에는 모두 노인들이었다. 미사 해설자이자 독서자인 연세 드신 여자 분 혼자 성가를 선창하고 신자들은 따라 불렀다. 작년 니스 주교좌 대성당에서의 주일 미사도 이 시골마을 미사와 별반 다를 바 없었다. 나이 지긋한 여자 분이 미사 해설과 독서를 하고 파이프 오르간 소리에 맞춰 성가를 선창했다. 사제가 드리는 제단 부근의 화려한 성가대석이 무색했다. 니스에선 세계 각처에서 관광 온 신자들의 참례로 활기가 넘쳤지만 이곳 시골 성당에선 교인들이 한 주 동안의 소소한 일상을 서로 나누며 조용히 정담을 나누었다.


일주일 후, 동네 성당으로 주일미사를 보러 갔다. 100여 명의 신자들이 참례했고 역시 노인인 여자 분이 미사 해설과 독서를 했다. 다행히도 장궤석 제일 앞줄에서 5명의 신자가 평상복 차림으로 한 명의 지휘에 맞춰 성가를 합창했다. 지난주에 뵈었던 두 분의 신부님이 미사를 집전했고, 참석한 신자들 중 몇 분은 다른 마을 성당에서 보았던 분이었다. 다른 분들도 내가 알아보지 못할 뿐, 지난주에 보았던 신자들일 게다.


미사가 끝난 후 친구가 신부님께 우릴 소개했다. 멀리 한국에서 왔고 주일 미사를 지키려고 여기에 왔노라며. 순간 당황했지만 신부님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평소에 잘 알고 지내는 신부님이냐고 물었더니 전혀 아니란다. 말 한번 건네 보지 않은 신부님께 우릴 소개하는 그녀의 적극성과 용기가 놀랍고도 감탄스러웠다. 그녀는 신자도 아니면서 성당 분위기가 좋아 가끔 미사에 참례한단다. 미사 예절은 잘 모르지만 마음이 경건해지고 차분해지는 것이 참 좋다며.


작년 르와브르에서의 기억이 떠올랐다. 토요일에 우리가 머무는 숙소 주변의 성당을 검색했다. 몇 개의 성당이 있었지만 이미 다녀간 블로거의 조언에 따라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곳의 오전 미사에 참례하기로 했다. 다음날 찾아갔더니 문이 굳게 닫혀 있었다. 앞문과 뒷문을 오가며 문을 밀어 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신자들의 그림자도 보이지 않았고 성당 주변은 조용하기만 했다. 지나가는 주민에게 물었더니 그 성당은 학교 부속 건물로 팔렸고, 오늘은 휴일이라 학생들이 오지 않아 문을 열지 않았다고 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한 해 한 해 다르게 쇠락해가고 있는 교회의 모습을 보며 마음이 아프다. 개신교 교회나 성당 건물이 서점으로, 음식점이나 카페로, 기념품 가게로 팔려 사람들의 영혼의 안식처로서의 생을 마감하고 현실적인 삶의 터로 점차 변해가고 있다. 성직자나 수도자를 지원하는 사람이 줄어들고 신자도 젊은 층은 별로 없고 고령자만 가득한 교회가 되었다. 우리나라도 머지않아 이런 사태가 벌어질 것이라는 예감이 들면서 마음이 불편했다. 아닌 게 아니라 현재 우리나라도 수도회에 입회하는 수도자들이 급감(하고 있다고) 한다. 주일미사에서도 청년들을 찾아보기가 힘들다. 신심이 깊지 못한 평신도인 내가 봐도 무척 걱정스럽다. 이러다 교회가 사라지는 게 아닌지,,,,


학생 시절, 종교가 없었던 나는 나중에 종교를 갖는다면 꼭 가톨릭 신자가 되고 싶었다. 친구를 따라가 보았던 성당의 엄숙하고도 경건한 분위기도 좋았지만 서양 고전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일상생활 속에 스며든 믿음과 그 실천하는 모습들이 부러웠기 때문이다.


젊은 시절,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었다. 하지만 바쁜 일상과 여러 어려운 일들을 경험하면서 주일만 지키는 형식적인 신자가 되었다. 한때는 거듭되는 실패에 화가 나고 오기가 생겨 내 힘과 내 능력으로 헤쳐 나가겠다며 주님을 배척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살아오면서 사람의 힘으로 해결되지 않는 수많은 일들을 보고 겪으면서 점차 하느님 대전으로 다시 나오게 되었다. 그때 고집부리지 않고 주님께 귀 기울이며 믿음을 키워 나갔더라면 오히려 좀 더 나은 삶을 살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크다.


머언 먼 젊음의 뒤안길에서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이처럼 나도 이제는 먼 길을 돌아 주님 앞에 나아와 내게 주어진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 독서: 미사 때, 성경을 읽는 것

* 장궤: 미사를 볼 때 신자들이 몸을 세운 채 꿇어앉는 자세로 존경을 나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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